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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인은 프랑스 라파예트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영국에 약 30여 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다. |
온라인 제국의 배신
중국의 패션 공룡 쉬인(SHEIN)이 오프라인 매장을 연다는 소식에, 업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쉬인이?" 맞다. 온라인으로만 연매출 40조 원을 넘기며 전 세계 Z세대의 옷장을 점령했던 바로 그 쉬인이다.
프랑스 라파예트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영국에는 약 30여 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며, 일본 도쿄에는 2025년 11월 두 층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연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팝업 형태의 실험이 한창이다.
이건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다. 패션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클릭 한 번에 지친 세대
쉬인의 오프라인 진출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겪고 있는 '디지털 피로'를 들여다봐야 한다.
2020년대 초반, 우리는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쇼핑은 물론이고 업무, 수업, 심지어 연애까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편리함이 극에 달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찾기 시작했다. LP판 매출이 늘고, 필름 카메라가 다시 인기를 얻고, 서점과 독립 서점이 부활하는 현상.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아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날로그'를 찾는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귓가에 스치는 바이닐의 지직거림, 그리고 옷장 앞에서 직접 옷을 걸쳐보며 거울을 보는 그 순간의 설렘. 화면 속 이미지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감각의 영역이 있다.
쉬인은 이걸 간파했다. 아무리 AI가 취향을 분석하고 알고리즘이 완벽한 추천을 해도 사람의 마음은 '만지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자. 우리는 여전히 '만드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봉제 기술, 빠른 납기, 합리적인 가격. 이 모든 것을 갖췄지만 정작 '왜 이 옷을 만드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말을 잃는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은 분명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리는 남의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데 익숙하지, 우리 브랜드를 세우는 데는 서툴다.
왜 그럴까? 브랜드는 단순히 로고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철학이고 이야기이며 약속이다. "이 브랜드를 입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브랜드다.
한국에도 물론 좋은 브랜드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소수다. 그리고 그 브랜드들조차 글로벌 무대에서는 인지도 싸움에서 밀린다. 기술은 있는데 이야기가 약하다. 품질은 좋은데 감정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행복을 팔아야 한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감정과 연결되는 비즈니스다. 옷을 파는 게 아니라, 그 옷을 입었을 때 느껴지는 자신감, 설렘, 소속감, 위로를 판다. 파타고니아는 옷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책임을 팔고, 에르메스는 가방이 아니라 장인정신과 시간을 판다.
한국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우리 옷은 품질이 좋습니다"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브랜드를 만나면 당신은 이런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고객이 브랜드 안에서 참여하고 공감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일방적으로 주는 행복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이어야 한다.
느림 속의 따뜻함, 그것이 진짜 경쟁력
쉬인이 오프라인으로 간다고 해서, 우리가 쉬인처럼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쉬인의 강점은 '빠름'이다. 일주일에 수천 개의 신상품을 쏟아내는 속도전. 하지만 그 속도 때문에 환경 문제, 품질 논란, 노동 착취 의혹 같은 그림자도 짙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다르다. 우리는 '느림 속의 따뜻함'을 팔아야 한다. 빠르게 만들어 빠르게 버리는 옷이 아니라, 오래 입고 싶은 옷, 입을 때마다 기분 좋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단지 옷의 품질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브랜드의 태도, 고객과의 소통, 사회적 책임, 환경에 대한 고민 모두가 따뜻함의 일부다.
쉬인의 오프라인 진출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시대의 신호다. 디지털이 극한까지 발전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인간적인 것, 감각적인 것, 따뜻한 것을 찾는다. 한국의 패션 산업도 이제 전환점에 서 있다. 더 이상 '빠르고 싸게 만드는' 경쟁에 매달릴 게 아니라, '왜 만드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브랜드는 결국 행복을 파는 일이다. 그 행복이 진정성 있고, 따뜻하고, 지속 가능할 때, 비로소 세계는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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