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 공유가 중요
웰니스 협회장이 패션 얘기를 한다고?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패션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면 웰니스와 패션의 조합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패스트패션은 옷을 일회용품으로 만들었고, 패션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지향하는 ‘웰니스(Wellness)’와 가장 먼 산업이 돼버렸다.
최근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키는 커뮤니티 중심 마케팅으로 회복세를 탔고, 룰루레몬은 2024년 매출이 전년 대비 19% 성장한 102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H&M,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논란 속에 성장률 둔화를 겪고 있다.
더 극적인 대비도 있다. 쉬인은 1500억 달러 규모의 기업가치를 찍었지만 환경 파괴와 노동 착취로 규제를 받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매출이 10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창립자가 회사를 통째로 기후변화 대응에 기부하며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어느 쪽이 진짜 승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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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은 자기 돌봄의 방식이자 관계를 확인하는 장이며 지구와의 공존을 선언하는 행위다. |
◇ 웰빙의 실패, 웰니스의 귀환
2000년대 초반 ‘웰빙’ 열풍을 기억하는가? 웰빙 아파트, 웰빙 식품, 웰빙 화장품 등등. 전부 비싼 걸 팔려는 마케팅 언어였다. 필자도 대기업 광고 회사에서 수많은 웰빙 캠페인을 기획했지만, 고급화 마케팅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본질은 사라지고 포장만 잠시 바꾼 셈이다. ‘잘 산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은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웰니스는 그 때의 웰빙 개념과는 다르다. 건강뿐 아니라 일, 관계, 환경을 모두 아우르는 ‘홀리스틱 웰빙(holistic wellbeing)’ 철학으로 진화했다. 글로벌 웰니스 시장은 2028년 9조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79%가 웰니스를 전체적인 삶의 접근법으로 본다. 42%는 “제품 구매 시 브랜드의 가치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 패션이 놓친 것들
지금 패션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 경쟁이다. 자라는 2주, 쉬인은 1주, 어떤 중국 브랜드는 3일 만에 신상을 쏟아낸다. ‘울트라 패스트패션’ 시대, 옷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웰니스 철학을 품은 브랜드들은 정반대로 간다. 파타고니아는 수선 서비스와 중고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며 “덜 사고 더 오래 입으세요”라고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외침은 브랜드 충성도를 높여준다. 파타고니아의 고객 재구매율 89%는 업계 평균 27%의 3배가 넘는다.
룰루레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요가복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 챙김과 웰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매장에서 무료 요가 클래스를 열고, 지역 커뮤니티와 깊이 연결된다. 그 결과 고객생애가치는 일반 패션 브랜드의 3~4배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코오롱스포츠는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했다. K2는 ‘액티브 웰니스’로 운동이 정신 건강과 연결된다는 걸 강조한다. 래코드는 폐플라스틱 원단과 제로 웨이스트 패키징을 고집한다.
웰니스가 불완전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라면, 패션은 그 태도를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드러내는 방식이다. 패션이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때, 옷은 단지 유행의 속도를 재현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품는 매체가 될 것이다.

◇ ‘나다움’에서 ‘모두다움’까지 3단계 로드맵
필자가 31년간 브랜드 마케팅을 하며 배운 건, 성공하는 브랜드엔 명확한 단계별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 1단계 : 나다움을 선언하라
나다움은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라 제품·디자인·커뮤니케이션에 스며드는 존재 이유다. 에르메스는 180년간 장인정신을, 유니클로는 ‘라이프웨어’라는 정체성으로 시장을 석권했다. 진정한 나다움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시작된다. 소재 선택, 디자인 철학, 생산 방식, 유통 채널, 고객 서비스까지 모든 접점에서 일관된 가치관이 드러나야 한다.
△ 2단계: 우리다움으로 확장하라
나이키 런 클럽, 아디다스 크리에이터스 클럽처럼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진정성이다.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외치는 게 아니라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시키게 하는 것이다.
△ 3단계: 모두다움으로 완성하라
스텔라 맥카트니는 모피와 가죽을 쓰지 않는 비건 패션을 실천하며 생분해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모두다움은 단순한 CSR이 아니다. 자연과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이 세 단계가 순차적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 Z세대는 속지 않는다
오늘의 소비자는 다르다. 특히 Z세대와 알파세대에게 패션은 자기 돌봄의 방식이고, 관계를 확인하는 장이며, 지구와의 공존을 선언하는 행위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브랜드의 진정성을 빠르게 간파하지만, 그린워싱이나 피상적 마케팅엔 냉소적이다. SNS로 브랜드의 뒷이야기까지 추적하며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브랜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이같은 변화는 한국 패션에 기회다. K뷰티가 문화적 감수성과 기술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었듯, K패션도 ‘K웰니스 패션’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한국의 ‘정(情)’ 문화는 개인의 웰빙을 공동체의 웰빙과 연결시킨다. ‘손맛’으로 대표되는 장인정신과 ‘한(恨)’의 정서가 깃든 미학은 대량생산 패션과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다.
다만 말이 아닌 실행이 필요하다. 제품 설계, 소재 선정, 공급망 관리, 리테일 경험까지 실제로 재편해야 의미가 생긴다. 단순히 한국적 디자인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 웰니스 철학을 바탕으로 한 총체적 브랜드 경험을 창조해야 한다.

◇ K웰니스 패션의 가능성
필자는 31년차 마케터로서 웰니스 트렌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AI 시대를 맞은 우리 삶의 방향성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AI가 인간의 많은 업무를 대체하게 될 미래에, 인간다움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그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매체다.
이를 위해 ‘나다움’ 구현 단계에서는 브랜드 고유의 웰니스 가치관을 명확히 정의하고 모든 접점에 일관되게 반영해야 한다. 이어 ‘우리다움’ 확장 단계에서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웰니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모두다움’ 완성 단계에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희망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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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회장
dorr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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