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 취향도 달라진 소비자
내국인 중심 마케팅에서 다문화 감각으로 전환할 때
“한국 인구가 5천만이라지만, 그 숫자의 의미는 매 순간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 서울 마리오 아울렛 가산점을 찾았을 때였다. 자사 브랜드 행사 매장을 직접 운영하며 마주친 고객들의 얼굴은 내가 예상한 것과 사뭇 달랐다. 평일인데도 인파는 북적였고, 그 속엔 한국인도 있었지만 더욱 눈에 띈 건 언어가 다른 고객들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다수였다. 그리고 그들의 구매력은 단순한 ‘눈요기 관광’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여행객이 아니었다. 한국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외국인들이었다. 특히 중국계 고객들이 많았는데, 조선족 특유의 억양이 아닌 표준 중국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본토 출신이거나 최근에 정착한 뉴커머(newcomer)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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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유통 기획자와 마케터가 여전히 전체 인구 숫자에만 주목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인구가 누구냐”라는 것이다. |
숫자가 아닌 ‘구성’이 바뀌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현재 내국인, 즉 대한민국 국적자는 약 4,900만 명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반면 외국인 등록 인구는 25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수는 계속 증가 중이다. 특히 수도권과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결혼이주민, 자영업자 등이 급속히 늘고 있다.
즉, 지금 우리가 말하는 ‘5천만 인구’는 과거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구성의 변화는 시장의 판을 바꾼다. 언론이 반복해 말하는 인구 감소는, 사실상 ‘내국인 중심 소비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많은 유통 기획자와 마케터가 여전히 전체 인구 숫자에만 주목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인구가 누구냐”라는 것이다.
아울렛에서 만난 ‘변화된 고객’
가산 마리오 아울렛에서 나는 중요한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그 현장은 지금의 소비자 구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과거엔 외국인 고객이 있어도 기본은 한국어였다. 하지만 가산동은 달랐다. 매장 안에서 중국어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렸고, 구매 행태도 확연히 달랐다. 가격이나 흥정보다는 디자인, 소재, 기능을 꼼꼼히 살피는 신중한 모습과 함께 제품만 좋다면 가격은 상관없다는 선택 기준, 그리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읽어내는 예리한 시선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의 ‘구매력’이었다. 이들은 더 이상 주변 소비자가 아니다. 이미 한국 의류 유통시장의 핵심 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한국의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먼저 이 문제에 직면했다. 2000년대 후반,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내수가 위축되자 지방 쇼핑센터는 외국인 근로자와 이주민을 핵심 고객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전역의 유통매장에서 다국어 안내문과 외국어 POP는 일상이 되었다.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LA,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는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가 쇼핑센터와 광고 캠페인의 핵심 언어가 되었다. 대형 백화점뿐 아니라 편집숍과 중소 브랜드들까지 ‘문화적 유연성’을 필수 전략으로 삼았다.
이건 단지 언어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가 스스로를 구성하는 방식, 즉 ‘문화로서의 브랜드 전략’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 서울을 중심으로 한 복합쇼핑몰, 아울렛, 전통시장, 이커머스 플랫폼은 다문화 소비자와 브랜드가 만나는 ‘실험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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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런 흐름 속에서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고객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
브랜드의 안내문, 가격표, 고객 응대 언어부터 점검하자. 대부분의 매장은 여전히 한국어 일변도지만 고객은 이미 달라졌다. 중국어, 베트남어, 러시아어, 우즈베크어, 태국어 등 주요 유입국 언어를 고려한 다국어 서비스가 필요하다. 직원이 모든 언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다. 표지판, 매뉴얼, 간단한 안내문부터 시작할 수 있다.
둘째, 상품 구성에 다문화 감각을 반영하자.
외국 고객은 ‘한국화된 스타일’을 무조건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국에서 익숙한 실루엣이나 컬러, 디테일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취향을 그대로 모방하라는 뜻은 아니다.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혼합된 감각’을 개발할 때, 브랜드는 더 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마케팅 전략을 다국적으로 재편하자.
유튜브 영상에 영어 자막 하나만 넣어도 조회수가 달라진다. 글로벌 해시태그만으로도 외국 유저 유입률이 확 올라간다. SNS와 콘텐츠는 이미 다국적 플랫폼이 된 지 오래다. 외국어 리뷰어를 활용하거나 해외 인플루언서를 공식 홍보대사로 세우는 전략도 효과적이다.
넷째, 오프라인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다.
온라인에선 알기 어려운 ‘미묘한 취향의 차이’는 현장에서만 포착된다. 나는 마리오 아울렛 현장에서, 온라인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감각의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구매자의 시선이 머무는 제품들과 스쳐지나가는 제품, 시착 후의 표정 변화, 색상 선택의 기준 등 모두가 브랜드 전략의 단서다.
브랜드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몬테 밀라노’ 역시 외국인 고객을 위한 별도 전략을 마련 중이다. 이민자,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오늘의 한국에서 브랜드는 ‘공통 언어’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같은 티셔츠를 입더라도 브랜드가 전하는 문화에 따라 소비자의 공감도는 달라진다.
미래는 이미 현장에 와 있다. 고객의 얼굴은 바뀌었다. 한국인만 고객이라는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브랜드는 살아남는다. 진짜 변화를 읽는 브랜드만이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 그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K패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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