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패션사에 기록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프랑스 패션 하우스 디올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9년간 재직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5월 29일 공식적으로 퇴임을 발표했다. 이 소식은 그녀의 고향 로마에서 알바니 토르로니아 빌라의 화려한 배경에서 열린 크루즈 쇼 직후에 전해졌다. 고향에 대한 진심 어린 헌사와 우아한 마지막 인사였던 이 패션 쇼는 그녀의 재직 기간을 완벽히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파리 기반 브랜드에서 활동한 동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당당히 내세우고 장인 정신의 예술성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디올에서 보낸 7년을 정리하는 의미로 '디올의 창조적 시대'를 정의한 네 개의 런웨이 쇼를 되돌아본다.
2018 봄/여름 오뜨 꾸뛰르 컬렉션
초현실주의는 패션 하우스와 디자이너들에게 오랜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이 운동의 경계를 넘어서는 미학과 만 레이(Man Ray), 달리(Dali), 미로(Miro), 마그리트(Magritte), 탄닝(Tanning) 등과 같은 상징적인 예술가들은 오늘날 창의적인 표현과 해방의 풍경을 열어주었다. 이 컬렉션에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작가인 레오노르 피니(Leonor Fini)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블랙과 골드의 직사각형 마스크는 눈만 드러내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상징적인 모티프를 연상시켰다. 도미노 프린트가 체크무늬 드레스에 뒤틀리고 왜곡되며, 허리선에서 깃털이 터져 나온다. 드레스는 모래시계나 새장 모양으로 디자인되었으며, 반투명한 드레스에 흰색 프레임이 드러나는 디자인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아이콘적인 새장을 연상시켰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투명한 레이어와 단색 팔레트를 통해 움직임과 인식을 탐구했다. 검은색 깃털 나비가 흰색 나비와 겹쳐져 검은색 드레스에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2019 가을/겨울 컬렉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1950년대 테디 걸스(Teddy Girls)를 조명하며 그 시대에 경의를 표했다. 테디 걸스는 록앤롤에 영향을 받은 젊은 영국 여성들의 서브컬처다. 남성 동료들로부터 청소년 범죄자로 무시당했던 테디 걸스는 전후 영국에서 독립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처음으로 구현한 그룹 중 하나였다. 전쟁 중 배급과 절약의 시대를 살아온 그들은 귀족적인 의상과 에지 있는 헤어스타일, 록앤롤에서 영감받은 액세서리를 조합한 대담한 패션으로 주목받았다.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는 구조적인 재킷과 코트, 과도한 칼라, 검은 베일로 감싸인 비닐 버킷 모자, 다양한 길이의 튤과 타탄 스커트를 포함한 89개의 룩을 선보였다. 허리를 강조한 벨트와 진주 목걸이가 대비를 이뤘다. 많은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테디 걸들이 입던 단정함을 벗어난 댄디 스타일의 실루엣을 반영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다시 한 번 티셔츠를 페미니스트 메시지의 플랫폼으로 활용했으며, 이번에는 'Sisterhood is global'이라는 슬로건이 프린트되었다.
2022 가을/겨울 컬렉션
1950년대 영국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같은 시대의 프랑스 스타일 유산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50년부터 1959년까지는 디올 브랜드가 창립 후 성장한 중요한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보인 디올의 상징인 '뉴 룩'을 재해석했다. 허리 부분에 타이트하게 조여지고 힙 부분에서 퍼지는 아이콘 바 재킷은 유동적인 블랙 스커트와 매치되었다. 소박한 셔츠 칼라 드레스와 투명한 꽃무늬 레이스 탑은 일렉트릭 블루, 엘로, 오렌지, 그린의 하이테크 모터사이클 장비와 대비를 이뤘다. 가슴 부분에 에어백이 착용되었고, 팔꿈치 위까지 연장된 장갑, 어깨와 몸통을 감싸는 보호 장비가 특징이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프렌치 엘레강스의 아이콘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패션 쇼가 진행되는 동안 흘러나왔고, 그녀의 정신은 어두운 블랙 벨벳 드레스에 담겨졌다. 크리스찬 디올 본인의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라즈베리 핑크와 레드베리 그린 꽃무늬 프린트가 등장했다. 줄리엣 그레코의 안드로지너스 스타일도 쇼에 영감을 주었으며, 롱 스커트, 트위드와 캐시미어로 제작된 터틀넥, 오버사이즈 재킷이 런웨이를 장식했다.
2025 가을/겨울 컬렉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비전 있는 미국의 연극 연출가 겸 시각 예술가인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협업해 마지막 패션 쇼를 선보였다. 이 컬렉션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오렌도>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의 뮤즈인 영국의 시인 겸 소설가 비타 사클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에게 바친 레브레터였다. 소설의 성별을 초월한 주인공의 삶이 작품에 반영되었다. 5개의 꿈같은 무대로 나뉘어진 패션 쇼는 암흑의 어둠 속에서 펼쳐졌다.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무대에서 살아났다. 익룡이 런웨이 위를 날아다니고, 빙하가 바닥에서 솟아올랐으며, 불꽃이 쇼를 열어젖혔다.
소설 <오렌도>의 시간과 성별을 넘나드는 유동적인 여정을 반영해,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페미닌실루엣(코르셋), 머스큘린 테일러링(구조적인 블레이저), 앤드로지너스 디자인(스커트와 팬츠)을 결합했다. 소설의 시대를 초월한 서사를 반영해, 의상에는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참조가 담겼다. 19세기 스타일의 코트는 혁신적인 소재로 재해석되었으며, 화려한 바로크 장식과 모던한 요소가 조화를 이뤘다. 어민 퍼는 블랙 가죽과 프린트 탑과 함께 휘날렸고, 레이스, 러프, 자수, 플레어 소매가 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일부 룩에서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버지니아 울프의 인용문을 직조해 디올 하우스에 대한 마지막 창의적 헌사를 선사했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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