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의 리더십 변화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가 디올을 떠난다. 크리스찬 디올 꾸뛰르는 지난 29일(현지시각)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여성 꾸뛰르, 레디 투 웨어, 액세서리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음을 알린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 소식은 디올의 최신 런웨이 쇼가 로마에서 열린 지 하루 만에 전해졌으며, 그녀의 퇴임 계획에 대한 수개월간의 추측을 종결지었다.
디올 회장 겸 CEO 델핀 아르노(Delphine Arnault)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녀는 디올에 합류한 후, 페미니스트의 관점과 탁월한 창의성으로 놀라운 성과를 냈다. 무슈 디올의 정신이 깃든 그녀의 디자인은 모두가 열망하는 컬렉션을 만들어냈다. 디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동시에 브랜드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으며, 여성 컬렉션을 이끈 최초의 여성이다”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지난 2016년 7월부터 디올의 여성 레디투웨어, 오뜨 꾸뛰르, 액세서리 라인을 이끌어 왔다. 페미니스트적 시각으로 유명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LVMH 그룹의 플래그십 브랜드인 디올을 재활성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그녀의 주도 하에 디올의 매출은 4배로 증가했다.
9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내게 신뢰를 보내주신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님과 델핀의 지원에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나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께해준 팀과 아틀리에의 재능과 전문성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덕분에 여성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세대를 잇는 여성 패션에 대한 제 비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의미 있는 한 챕터를 써 내려갔으며, 함께해온 모든 여정이 정말 자랑스럽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발표는 디올이 지난 1월 영국 출신 디자이너 킴존스의 퇴임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킴존스는 7년간 디올 남성복 컬렉션을 이끌었다. LVMH 그룹의 또 다른 브랜드인 로에베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이 지난 4월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올해 초에는 아일랜드 출신 디자이너가 디올 여성 라인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이 돌았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다음 행보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녀는 이전에 펜디 여성복 컬렉션을 이끌기 위한 논의가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현재 그 논의는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봉사였던 어머니가 작은 아틀리에를 운영하던 가정에서 태어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어릴 적부터 패션에 매료되었다. 올해 61세인 그녀는 유럽 최대 디자인 대학인 이탈리아 IED(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공부했으며, 1989년 LVMH 브랜드인 펜디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가방 디자인에 집중했으며, 1990년대 대표적 '잇 백' 중 하나인 바게트(Baguette)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경력은 오랜 협력자 디자이너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최근 발렌시아가 CD로 임명됨)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급부상했다. 두 사람은 창립자인 시조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주목을 받으며 1999년 발렌티노의 액세서리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2007년 투자사 페르미라( Permira)가 브랜드를 인수하고 창립자가 은퇴한 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액세서리 부문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2008년 말에는 발렌티노의 모든 패션 컬렉션을 총괄하는 직위로 승진했다. 그들의 재임 기간 동안 '락스터드 가죽 펌프스'가 글로벌 히트작으로 떠오르며 브랜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들의 리더십 하에 발렌티노는 새로운 활력을 얻으며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언론과 평론가들로 부터 찬사를 받았다. 2012년 카타르 투자사 메이훌라(Mayhoola)가 브랜드를 인수한 후에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하우스의 현대화를 계속했다. 2015년까지 발렌티노는 연간 매출 10억 유로(약 1조 6천억 원)에 근접했다.
2016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디올의 첫 여성 아트스틱 디렉터로 임명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녀는 디올 데뷔부터 패션을 페미니스트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녀의 런웨이 쇼에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와 “자매애는 힘이다”와 같은 강렬한 슬로건이 자주 등장했다.
디올의 풍부한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브랜드에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어 젊은 세대와 공감하는 세련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첫 데뷔 쇼 이후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세상에 귀를 기울이고 오늘날의 여성들을 반영하는 패션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를 통해 여성들을 지지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패션이 바로 그 목표였다.
펜싱에서 영감을 받은 데뷔 쇼인 2017 봄/여름 디올 컬렉션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티셔츠로 주목을 받았다. 이는 여성의 권한 강화를 꾸준히 언급했던 그녀의 전체 임기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되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보그 런웨이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진정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 에바 조스팽(Eva Jospin), 미칼린 토머스(Mickalene Thomas) 등 여러 여성 아티스트와 협업해 패션쇼 무대를 꾸몄다. 2025 봄/여름 컬렉션에는 이탈리아 아티스트이자 궁수인 사그 나폴리(Sagg Napoli)가 직접 활을 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쇼에 생동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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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지난 1월 마지막 디올 오뜨 꾸뛰르 쇼에서 피날레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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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설립자 크리스챤 디올뿐 아니라 아카이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레퍼런스를 활용했다. 2018년 CEO 피에트로 베카리와 함께 존 갈리아노 시절의 시그니처 백인 새들 백을 부활시켰고, 2024 가을/겨울 컬렉션을 통해 마르크 보앙이 론칭한 ‘미스 디올’의 레디 투 웨어 라인과 꾸뛰르 고객에게 기성복을 제공했던 미스 디올의 부티크 매장에 경의를 표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9년 동안 디올 여성복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재임하며 레디 투 웨어, 꾸뛰르, 크루즈, 프리폴 컬렉션 등 수많은 쇼를 연출해 모두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디올 2026 크루즈 쇼는 그녀의 고향 로마를 테마로 한 ‘올 화이트에 가까운 감성적인 쇼’였으며, 그 무대가 그녀의 마지막 디올 컬렉션이 되었다.
지난 2019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이는 그녀의 영향력 있는 패션 경력을 상징하는 수많은 수상 중 하나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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