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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명동 거리 |
2020년, 명동은 조용했다. 오랜 시간 서울 패션 1번지로 군림하던 거리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사라졌고, 점포들은 셔터를 내렸다. 팬데믹은 명동의 심장박동을 잠시 멈춰 세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한국 최고의 상권으로 불렸던 그곳에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매장들은 속속 문을 닫았고, 빈 점포들로 가득한 거리는 ‘유령 상권’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그랬던 명동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다. 오히려 팬데믹 이전보다 더 역동적이고, 더 세련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 글로벌 소비자와 MZ세대가 함께 이끄는 ‘명동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전의 명동이 관광객 중심의 화장품과 저가 의류 상권이었다면, 지금의 명동은 글로벌 트렌드와 한국 문화의 조화가 이루어진 복합 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 텅 빈 거리에서 ‘핫플’로
‘플래그십 스토어’는 지금의 명동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코로나 이전 명동이 화장품 로드샵이 즐비했던 거리였다면, 지금은 무신사 스탠다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마뗑킴 등 국내외 인기 브랜드들이 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열며 상권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러한 매장들은 브랜드 정체성과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경험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자, 전 세계 소비자를 향한 글로벌 안테나샵의 역할을 한다.
2023년부터 명동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면면은 상권의 급속한 변화를 보여준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주로 청담동과 가로수길에 집중되어 있지만, 명동은 젊고 트렌디한 브랜드들의 격전지가 되었다.
브랜드들의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 명동에 입점했던 내셔널 브랜드들이 철수하고 적자를 감수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더 치밀한 전략으로 명동에 재입점하고 있다. 더 이상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에이랜드, 스파오, 아더에러, 디스커버리 등 국내 브랜드들은 명동 매장을 거점으로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 ‘외국인 관광객 월 100만 명’…소비 패턴도 진화 중
명동의 변화는 숫자부터 갈아치웠다. 2024년 들어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월평균 100만 명을 넘어서며, 명동 상권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외국인 카드 매출 비중은 무려 45%, 이는 국내 어떤 상권보다 높은 수치다. 그야말로 명동은 글로벌 소비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일본, 중국, 동남아 관광객의 방문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한국 관광이 아닌 ‘명동’을 콕 찍어 찾아왔다. 면세점 위주의 쇼핑 패턴은 사라지고 K-패션, K-뷰티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맛보고 즐긴다.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방한 외국인의 82%가 명동을 방문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들은 평균 체류 시간 3시간 동안 1인당 약 50만원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대비 30% 증가한 수치다.
국적별로는 일본 관광객이 25%, 중국 관광객이 22%,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 관광객의 소비 패턴 변화다. 과거 단체 관광객 중심에서 개별 관광객(FIT) 비중이 70%로 증가했으며, 이들은 더 이상 면세점에서의 대량 구매보다 브랜드 경험과 문화 체험을 중시하는 소비 형태를 보인다.

◇ 브랜드 쇼룸이 된 명동 거리
외국인 관광객만큼 중요한 존재가 있다. 바로 MZ세대다. 명동은 계속해서 2030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실험 무대로 재편되고 있다. 커버낫, 이미스, 블루엘리펀트 등 M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들은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차별화된 공간과 경험을 제공하고, 소비자와의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매장들은 판매 공간을 넘어 SNS 인증 욕구를 자극하는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기도 하다. 브랜드마다 VM(비주얼 머천다이징)을 강화하고, 한정판 제품, 체험형 콘텐츠, 라이브 커머스 방송 등으로 젊은 세대의 감각을 정조준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MZ세대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브랜드들은 명동 매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매장 디자인은 3개월마다 리뉴얼되고, 제품 진열 방식은 월 단위로 변경된다.
지금의 명동은 브랜드의 ‘쇼룸’이자 ‘전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브랜드의 감성과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다국어 안내, 글로벌 쇼핑 플랫폼 연동, 한류 스타와의 협업 콘텐츠, SNS 인증 욕구를 자극하는 매장 구성까지 모든 요소가 ‘체험’ 중심이다.
◇ MZ세대와 외국인을 동시에 잡는 ‘브랜드 믹스’
명동의 근간은 바로 다양성과 믹스 전략이다. K-패션, 스트리트, SPA, 스포츠, 뷰티까지 다양한 업종이 골목골목 어우러져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힌다. 이는 브랜드 입점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서로 다른 콘셉트의 브랜드들이 한데 어우러져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명동 한 바퀴면 트렌드 한 바퀴”라는 말이 충분히 나올 법하다.
명동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업종별 비율은 패션 45%, 뷰티 20%, F&B 15%, 엔터테인먼트·문화 10%, 기타 10%로 과거 뷰티와 SPA 브랜드 위주였던 것과 비교해 훨씬 다양화되었다.
특히 명동에서만 볼 수 있는 각 브랜드의 ‘명동 한정판’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이러한 전략은 온라인 쇼핑이 일반화된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다.

◇ 골목길도 살아났다…전환율 44%, 이면도로의 반격
명동은 대로변만 살아난 것이 아니다. 이면도로, 즉 명동4길, 9길, 10길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거리 상권도 활력을 되찾고 있다. 오히려 이면도로의 활발함이 명동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보세의류, 잡화, 슈즈 브랜드, 카페, 퓨전 음식점들이 즐비하며, 명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점포의 전환율이 44%에 달하며 빠르게 브랜드들이 교체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이는 상권이 빠르게 트렌드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 왜 여전히 비쌀까?
명동의 임대료는 여전히 국내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브랜드들은 이곳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명동에 입점하는 것 자체가 브랜드의 격을 말해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명동에 플래그십 매장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신뢰와 위상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동은 실제로 ‘잘 팔리는’ 상권이다. 일부 매장의 경우 월 매출이 10~20억 원에 달하고, 외국인 소비 비중이 80~90%에 이르기도 한다. 브랜드에게 명동은 마케팅과 실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다.

◇ 명동의 미래는?
앞으로 명동은 글로벌 K-컬처 복합 특구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패션, 뷰티, 문화, 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체험 중심의 소비 플랫폼으로서 명동은 그 첫 발을 내디뎠고, 관광객과 MZ세대라는 든든한 소비 기반이 있다. 하지만 과제도 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맞춘 지속적인 리뉴얼, 공공 인프라 개선, 브랜드 간 협력적 마케팅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동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과거처럼 로드샵 천국이 되기보다는, 지금처럼 다양성과 차별화가 살아 있는 도시형 쇼룸이 되어야 한다.
◇ 명동은 여전히 대한민국 패션의 심장
명동은 다시 살아났다. 회복을 넘어 ‘재창조’의 단계로까지 진입했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다시 모이고,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이 거리를 걷고, 트렌드의 맥박이 이곳에서 뛰고 있다.
패션 산업 관계자들은 “한국 패션이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명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명동은 대한민국 패션의 심장이다. 그리고 그 박동은 지금, 아주 강하게 뛰고 있다.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딛고 일어선 명동의 변화는 한국 패션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자 글로벌 패션 플랫폼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상징적 공간이 되고 있다.
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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