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장이 큰 사장에게 인생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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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의 K패션, 세계를 입히다 05

2025-04-10 오후 2: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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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임시정부의 수석 고문 Dr. 무하마드 유누스와 함께한 한국 사절단



이달 초, 나는 한 패션 브랜드의 대표로서 ‘방글라데시 인베스트먼트 서밋’에 참가하게 되었다. 제약, 건설, 물류, 병원, 패션 등 다양한 산업군의 리더 36명이 모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산업 시찰 이상의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 발을 디딘 치타공에서부터 나는 산업이 아닌 사람을, 숫자가 아닌 진심을, 전략이 아닌 인생을 볼 수 있었다.


공장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여정의 첫 일정은 영원무역의 현지 공장 방문이었다. 수많은 산업 시찰을 다녀본 입장에서, 나는 그저 ‘잘 정비된 생산라인’을 예상했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였다.


공장 안에서는 수많은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일하고 있었고, 관리자와 직원 사이의 벽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창립 초창기 멤버로 보이는 이들이 회장님께 거리낌 없이 의견을 전하고, 회장님은 그것을 하나하나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명령과 복종의 조직이 아닌 공감과 존중이 흐르는 리더십. 그것이 이 조직을 40년 넘게 단단하게 만든 힘이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 이렇게 긴 시간 버텨낸 기업엔 반드시 ‘사람’이 있구나.’


고난의 시간에도 꺾이지 않는 신뢰


40년의 세월. 그동안 위기는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무역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은 지금도 생기로 가득했다. 회장님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엔 애정과 존경이 스며 있었다. 그건 연출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진심으로만 쌓이는 시간의 무게였다.


이 공간에서는 ‘트렌드’가 아닌 ‘지속가능성’이, ‘스타일’이 아닌 ‘관계’가 중심이었다. 정치적 혼란, 경제 위기, 천재지변,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영원무역이 걸어온 40년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여전히 ‘함께’ 있다는 사실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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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가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열린 인베스트먼트 서밋에서 질문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사랑하십니까?”


공장 방문 후 기자회견장에서 나는 영원무역의 성기학 회장에게 질문했다. “회장님, 방글라데시를 사랑하십니까?” 아니, 나는 그보다 한 발 더 들어가 이렇게 물었다. “얼마나 ‘많이’ 사랑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말이 아닌 아이처럼 벌린 두 팔이었다. 마치 “This much(디스 머치)!”라고 외치는 듯한 그 순간적인 몸짓에는 수십 년의 시간과 감정이 함축되어 있었다. 수백 개의 단어보다 강렬했던 그 제스처는 패션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옷을 만드는가?”


노벨상 수상자와 패션 CEO의 만남


다카에서는 방글라데시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를 만났다. 그는 마이크로크레딧을 창안하여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꾼 인물이다.


서밋 개막식에서 그는 담담하게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연설은 서밋을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야기의 공간’으로 바꿨다. 방글라데시가 걸어온 험난한 여정을, 그 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땀과 눈물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그것은 누군가를 감동시키려는 눈물이 아니라, 자기 삶을 꺼내어 보여주는 진심의 표현이었다.


이날, 성기학 회장님은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았다. 단상 위로 올라선 그의 눈가 역시 촉촉해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이 땅에서 함께 땀 흘린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영예였고, 그 어떤 찬사보다 묵직했던 순간이었다.


유누스 박사의 요청으로 36명의 한국 대표단이 모두 일어섰을 때,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객석에서 터져 나온 박수는 진심으로 이 땅을 사랑하고 헌신해온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고,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이 순간은 나에게 또 하나의 물음을 남겼다. “나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일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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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무역 방글라데시 공장 투어



진심은 결국 길이 된다


나는 이번 여정을 통해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인생의 길을 큰 사람들에게 물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성기학 회장과 유누스 박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왔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다. 그 앞에서 나는 겸허하게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앞선 이의 진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박수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진심은 국경을 넘고 세대를 넘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진심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준다.’ 우리가 만드는 옷 한 벌, 디자인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패션이 아닐까?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내가 작은 사장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다만 나도 누군가에게 길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 하나는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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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Sylvia Oh)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브랜드 레오나드(LEONARD PARIS) 바잉팀장을 거쳐 2001년 몬테밀라노를 창업했다.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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