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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개점한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이 개점 29년 만인 지난 3월 9일 영업을 종료했다. |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웠던 지난 3월 9일, 나는 마지막 영업을 앞둔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으로 향했다. 29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이곳이 오늘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흔히 ‘백화점’ 하면 화려한 쇼핑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사람의 온기’를 파는 공간이다. 물건을 사러 오는 고객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어 간다. 매장 직원과 대화, 익숙한 공간에서 느끼는 안정감, 함께 하는 미소. 그랜드백화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한 건물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따뜻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중가 브랜드의 패셔너블한 시니어 브랜드 ‘몬테밀라노’를 진행하고 있다. 8년 동안 근무한 매니저에게 ‘그동안 고마웠다’ 인사차 방문했다. 매장에 들어선 나는 매니저의 붉어진 눈을 보았다. 그녀 앞에는 한 고객이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었다.
“너무 아쉬워요.”
짧은 대화 속에 수많은 감정이 녹아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판매자’와 ‘고객’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관계, 서로를 챙기고 위로했던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다.
온라인 쇼핑이 편리한 것은 맞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물건이 집 앞까지 배달되니 말이다. 하지만 온라인에는 느낄 수 없는 것도 있다. ‘어떤 옷이 나에게 잘 어울릴까?’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도, ‘오늘 기분이 어때요?’ 먼저 물어봐 주는 사람도 없다.
옷을 산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다. 피팅룸에서 직접 입어 보고, 거울 앞에서 고민하고, 직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있기에 ‘구매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지역 백화점은 특별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그랜드백화점 같은 곳은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 여성이 자주 찾았다. 쇼핑 외에도 그들은 매장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신상품을 구경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매장에 나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다. 어떤 고객은 “집에만 있으면 너무 우울해요. 그런데 여기 오면 매니저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몇 마디 주고받으면 기분이 좋아져요”라고 말했다.
그랜드백화점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공간’이었다. 직원은 고객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을 선호하는지, 심지어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관계 형성이다. 화면 속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은 내가 좋아할 만한 옷을 골라줄 수는 있지만, 나의 표정과 기분을 읽지는 못한다.
우리는 점점 편리함을 좇고 있다. 빠르게, 간편하게,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랜드백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또 하나의 ‘사람 내음 나는 공간’이 사라진다. 매장 직원과 고객이 함께 웃고, 고민을 나누던 시간도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장을 나서며 뒤돌아보았다. 여전히 눈가가 젖은 채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매니저가 보였다. 오늘 이후로 그랜드백화점은 사라진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갔던 따뜻한 말과 손길, 그리고 사람들의 정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사람 온기를 나누고, 행복을 파는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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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서희(Sylvia Oh)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브랜드 레오나드(LEONARD PARIS) 바잉팀장을 거쳐 2001년 몬테밀라노를 창업했다. |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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