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 , 마티유 블라지 그리고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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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16

2024-12-26 오전 10: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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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 Images Courtesy of Carmine Romano for The New York Times



지난 12일, 세계 최대 럭셔리 패션 하우스 중 한 곳이자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브랜드로 손꼽히는 샤넬 의 패션 부문 사장 브루노 파블로프스키(Bruno Pavlovsky)는 보테가 베네타의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프랑스-벨기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가 2025년부터 샤넬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패션계에서 일종의 '왕좌의 게임'이 된 이번 임명은 샤넬이 칼 라거펠트를 이어 브랜드의 수장으로 임명했던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와 결별한 이후, 비로소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둘러싼 무성한 추측은 마침표를 찍었다.


'이 자리에 누가 올 것인가?’라는 질문은 호사가들과 소식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난무했다. 얼마 전 셀린느를 그만둔 에디 슬리먼(Hedi Slimane)부터 더 로우(The Row)의 애슐리 올슨(Ashley Olsen)과 메리케이트 올슨(Mary-Kate Olsen) 자매, 알라이아(Alaia)의 피터 뮬리에(Pieter Mulier)와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까지 다양한 인물이 거론되었다.


일부는 에디 슬리먼을 유력하게 바라보았으나, 그가 거친 모든 브랜드는 정확히 ‘에디 슬리먼화'된다는 점에서 나는 샤넬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다시 유력 후보로 거론된 마티유 블라지가 대두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뉴욕 타임스>의 전언에 따르면, 무수한 추측과 달리 샤넬이 진지하게 고민한 후보는 단 세 명이었고, 마티유 블라지와 면접을 한 이후로 흔들리지 않을 수준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급 기성복의 존재 이유 같은 것을 이해하고, 또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종류의 '디자이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보테가 베네타는 다른 럭셔리 하우스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브랜드다. 1990년대, 이 브랜드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쇠퇴했지만, 2001년 구찌 그룹(현 케어링 그룹)이 인수한 이래 ‘장인정신’과 ‘최소주의 (미니멀리즘)’라는 정체성을 다시 강조하는 방향으로 리뉴얼에 성공하며 다시 도약기를 맞이했다.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다니엘 리가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이 된 2018년까지 장기 집권한-토마스 마이어 (Tomas Maier)는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이 된 ‘인트레치아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제품 라인을 확장하며 브랜드를 다시 성공 궤도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2010년대 들어 보테가 베네타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고급 가죽 제품에서 의류, 신발, 주얼리, 가구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를 시도했다.


2018년, 토마스 마이어의 뒤를 이어 다니엘 리(Daniel Lee)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며, 보테가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했다. 다니엘 리는 브랜드의 전통적인 코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강조하며 인트레치아토를 더욱 대담하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보테가 베네타는 단단한 고객층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다니엘 리는 이 브랜드에 일종의 동시대적인 ‘쿨함’을 불어 넣었다. 쨍하고 진한 ‘보테가 그린’은 브랜드의 새로운 시각적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고,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계속 이어질 것 같던 다니엘 리의 시대는 패션계가 충격이라고 회자할 만큼 짧았다. 그의 디자인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고객이나 평론가는 (내 기억에) 없었으나, 회사 내부 문제가 시발점이었다. 그가 지휘한 시기에 수많은 장인과 디자인 팀이 혹사당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공식적으로 그의 구체적인 사임 이유가 공개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갈등과 근무 환경에 불만을 품어 조직이 흔들렸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마티유 블라지의 시간이 왔다. 당시 그는 다니엘 리의 보좌 역할을 하며 실제 디자인 팀을 이끄는 보테가 베네타의 디자인 디렉터였다.


마티유 블라지가 처음으로 (일부) 패션 관계자들에게 두각을 드러낸 시점은 메종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에서 아티자날(Artisanal) 라인을 이끌던 때였다. 마르지엘라는 언제나 혁신적이고 개념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브랜드였지만, 그의 손길이 닿은 아티자날 컬렉션은 특히 섬세함과 창조적 파괴라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당시 그는 단순히 실험적인 의상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패션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움직임’이라는 디자인적 철학을 옷 속에 녹여냈다. 그가 만들어낸 의상은 단지 입기 위한 옷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예컨대, 해체와 재구성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업물은 옷의 물성을 넘어 대중에게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마르지엘라 시절의 컬렉션은 패션계 내부에서는 물론,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고, 그의 이름은 비로소 메종의 가면 뒤에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디자이너로서의 위상을 구축한 것은 셀린느 (Celine)과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에서의 경험이었다. 특히 셀린 시절,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와의 협업은 그의 디자인 언어에 정교함을 더했고, 이후 캘빈 클라인에서 라프 시몬스 (Raf Simons)와의 작업은 그가 가진 독창성과 협업 능력을 동시에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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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EGA VENETA A/W 2022 Campaign (Matthieu Blazy’s Debut Collection)ⓒ Images Courtesy of BOTTEGA VENETA



마티유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보인 첫 데뷔 컬렉션은 단순한 시작 그 이상이었다. 2022년 가을/겨울 시즌에 공개된 컬렉션에서 그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해 냈다. 그때를 돌아보면, 이미 전임자가 해놓은 혁신이 강렬한 수준인데 ‘여기서 더 나은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쇼맨십과 엔터테인먼트로 동시대의 패션을 바라보는 디렉터가 아니라, 옷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하고 그 가치를 연결하는 일종의 장인형 디자이너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보테가 베네타라는 이름을 단지 ‘고급 가죽’으로 축약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와 동시에 브랜드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공예 기술과 미니멀리즘을 다시금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그의 ‘데뷔’ 런웨이에는 특별히 튀는 장치가 없었다. 대신, 그가 선보인 옷은 매우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듯했다. 우리가 ‘보테가’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재탄생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마티유 블라지는 ‘옷은 움직임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했다.


모델들은 옷을 입고 걸어가면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가벼운 실크 셔츠와 레더 팬츠, 편안한 니트웨어는 모두 그의 디자인 철학, 즉 ‘움직임 속의 아름다움’을 반영했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레더로 만든 플란넬 셔츠로, 가죽이라는 소재의 경직된 이미지를 벗어나 유연하고 생동감 있는 텍스처로 변모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보테가 베네타의 전통적 장인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극도로 현대적이고 유용한 형태로 재구성했다.


무엇보다 컬렉션에서 독창성이 돋보였던 또 다른 부분은 소위 ‘평범한 것’들에 담긴 우아함이었다. 그는 일상적인 옷차림처럼 보이는 코트, 팬츠, 셔츠의 라인들을 최소화하고, 그 속에 세밀한 디테일을 숨겨 놓았다. 이런 방식은 보테가 베네타를 단지 화려한 디자인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매일의 삶 속에 진정한 럭셔리를 경험하게 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데뷔가 일으킨 조용한 파문이 최근 패션계를 지배하는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패션쇼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작금의 패션쇼는 단순히 옷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브랜드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만들고, 관객에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는 공연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화려한 무대 연출과 대중성을 겨냥한 ‘쇼 비즈니스’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패션쇼는 이제 브랜드의 시각적 서사와 감각적 오락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하나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연이다. 그러나 마티유 블라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의 데뷔 컬렉션은 대규모 세트나 드라마틱한 연출 없이, 의도적으로 절제된 형식과 미니멀한 표현 속에서 브랜드의 본질에 집중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런웨이 자체를 하나의 공연장으로 만드는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옷의 소재와 움직임, 그리고 디테일에 집중하게 했다. 이는 그가 디자이너로서 ‘가시적인 화려함’보다는 ‘내재한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가령, 현재 루이비통 (Louis Vuitton)의 런웨이나 구찌 (Gucci)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나 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가 이끌던 메종 마르지엘라 컬렉션,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듣는 칼 라거펠트 시대부터 이어진 샤넬 컬렉션의 극적인 서사 구조는 패션쇼를 일종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드는 장치로서, 대중과 미디어를 끌어들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마티유 블라지는 이러한 접근을 과감히 배제하고, 패션의 경험은 옷 그 자체에서 시작되고 끝난다는 철학을 내세운다. 그의 쇼는 흥행을 위한 이벤트가 아닌, 옷이 지닌 정체성과 그것이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이 차이는 단지 연출 방식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종종 대중적 화제성과 바이럴 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이때 런웨어 컬렉션이란 하나의 ‘디지털 콘텐츠’로 간주된다. 반면 블라지는 디지털 시대의 경쟁적 환경 속에서도 패션이 여전히 ‘손으로 느껴지는 경험’임을 강조한다. 그의 옷은 사진으로 담기거나 소셜 미디어에서 회자하기보다, 직접 입고 움직이며 느껴질 때 진가를 발휘하도록 설계되었다.


점점 더 대형화, 대중화하는 럭셔리 시장의 변화에도 마티유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에서 선보인 컬렉션들은 대중과 평론가 모두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이는 과감한 실험보다, 디자이너로서의 철학과 브랜드 정체성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보테가는 처음부터 ‘럭셔리란 실용성 속에서도 빛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현대 패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했다. 결국, 마티유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를 이끌며 보여주는 차별성은 그의 작업이 단지 ‘보여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패션의 본질적 가치-착용감, 실용성, 그리고 정서적 연결-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는 패션을 거대한 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일상으로 스며드는 예술로 바라보며, 이 시대 패션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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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EGA VENETA Winter 2024 Campaign ⓒ Images Courtesy of BOTTEGA VENETA



이렇듯 마티유 블라지의 여정은 겸손하고도 강렬했다. 그는 때로는 뒤에서, 때로는 앞에서 옷을 통해 ‘스타일’을 전했다.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철학은 결국 보테가 베네타에서 빛을 발하며 그를 단숨에 현대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샤넬의 시간’이 다가온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적, 문화적, 그리고 패션계에서의 역할과 기대치 측면에서 두 브랜드의 수장 자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둘 다 럭셔리 패션계의 중심에 있지만, 규모와 역사, 소비자와의 관계는 각기 다른 도전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보테가 베네타는 글로벌 럭셔리 그룹 케어링 (Kering) 소속으로, 그룹 내에서 상업적 성공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디자인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 특히 판매량과 매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 마티유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라는 트렌드를 앞서 읽고, 전임자 다니엘 리가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로고 없이도 고급스러움을 전달하는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모든 과정은 경제적 성과에 직접 연결된다. 케어링 그룹 내 다른 브랜드들과 경쟁하며,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반대로 샤넬은 독립된 가족 소유 기업이다. 게다가 이미 럭셔리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은 (매출도 물론 중요하나) 브랜드의 장기적 가치와 상징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샤넬에서 마티유 블라지는 단기적인 경제적 성과보다는 브랜드의 유산을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샤넬이 다음 세대에도 ‘궁극의 럭셔리’로 남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보테가 베네타는 ‘로고리스 럭셔리’로 대표되는 브랜드로, 특정 소비자층-흔히 유행을 따르기보다 개인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호하는 럭셔리 고객-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마티유 블라지는 이러한 고객층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며, 브랜드를 ‘소비하기 위한 럭셔리’에서 ‘경험하고 공유하는 럭셔리’로 진화시켰다. 그가 ‘운동성과 유연함’을 중시하며 새로운 소재와 형태를 탐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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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EGA VENETA Pre-Spring 2025 컬렉션 ⓒ Images Courtesy of BOTTEGA VENETA



◇ 샤넬의 새로운 수장


반면, 샤넬은 이미 대중문화의 상징이다. 트위드 슈트, 퀼팅 백, 그리고 넘버 5(No. 5) 향수는 패션을 넘어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이 브랜드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단순히 특정 고객층과의 연결을 넘어, 샤넬의 이름이 가진 상징적 가치를 확장해야 한다.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에서 전통과 현대를 균형 있게 아우르며, 대중문화와 럭셔리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는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앞두고 있다. 공식적으로 마티유 블라지는 2025년 4월에 샤넬에 합류하고, 10월에 데뷔 컬렉션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모든 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겠지만, 눈앞에 당면한 ‘샤넬’이라는 과제는 혁신과 정체성의 조화라는 더 복잡한 문제를 마주한다.


샤넬은 이미 말했듯이 패션계의 최정상에 있는 브랜드이다. 정체성을 변경하거나 흔드는 것은 브랜드 자체의 유산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혁신은 기존의 코드와 상징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샤넬의 전통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대와의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진화를 시도해야 하는 작업이란 뜻이다.


특히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는 다른 어떤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동일한 역할과도 결을 달리한다. 이는 단지 옷을 디자인하고 컬렉션을 기획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상징성과 유산을 전 세계적으로 유지하고 퍼트리는 비전의 제시자임을 뜻한다.


지금의 샤넬은 단순한 패션 브랜드 그 이상이다. 이 자리에 선다는 것은 가브리엘 샤넬 (Gabrielle Chanel)의 시대를 초월한 비전과 스타일, 그리고 하우스의 깊이 있는 역사와 직결된다. 버지니 비아르가 취임할 당시,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칼 라거펠트 (Karl Lagerfeld)의 충실한 오른팔로서 브랜드의 진화 과정을 곁에서 만든 디자인 책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항상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 또한 증명하였다. 따라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단순한 총괄 디자이너가 아니라, 브랜드의 상징적인 요소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진화시키는 ‘문화적 관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는 그 책임감과 기대치 또한 독보적이다. 샤넬은 매출이나 글로벌 시장 점유율 면에서 이미 패션계 최정상에 있다. 단순히 상업적 성과를 뛰어넘어, 브랜드의 전통을 존중하며 미래의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고전적인 트위드 수트와 퀼팅 백, 까멜리아 (Camellia) 같은 샤넬의 상징적인 코드는 여전히 현대 패션의 중심에서 사랑받고 있지만, 그것이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으로 계속 존재하?존?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또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하우스의 모든 라인을 총괄한다. 이는 브랜드의 전통과 혁신을 상징하는 오트 쿠튀르부터 레디 투 웨어, 주얼리, 뷰티, 액세서리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역할은 단순히 뛰어난 창조적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을 이해하고, 고객과 창작자의 관점에서 문화적인 변화와 소비자 심리를 섬세하게 파악하며, 그 안에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의 차원에서 균형 잡힌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단지 패션계 내부만이 아니라 대중의 문화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칼 라거펠트 시대 이후, 샤넬은 단지 고급스러운 옷을 만드는 하우스를 넘어 전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역할을 맡은 디렉터는 단지 브랜드의 판매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샤넬이 대중문화에서 가지는 상징적 위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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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 Images Courtesy of SANDER MUYLAERT | BOTTEGA VENETA



결국,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는 단순히 패션을 만드는 역할을 넘어선다. 전 세계의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경제적 풍경 속에서 샤넬의 전통과 현대를 이어가는 조정자이자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마티유 블라지가 직면할 기회이자 도전이다.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지금, 패션계는 그의 손에서 재탄생할 샤넬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추측으로 분주하다. 그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보여준 조용한 혁신과 섬세한 해석으로 단순히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설계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마티유 블라지가 가장 먼저 직면할 과제는 샤넬의 헤리티지와 현대성 사이의 균형이다. 샤넬의 시그니처 요소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이러한 코드가 시대와 함께 진화하지 않으면 정체된 아이콘으로 머물 위험이 있다. 블라지는 이 상징적 요소들을 단순히 반복하거나 과하게 재창조하지 않고,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샤넬의 고유함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의 보테가 베네타 시절 작업을 돌아보면, 전통과 기술에 대한 깊은 존중이 눈에 띈다. 샤넬에서도 그는 공방 (atelier)의 장인정신을 더욱 부각하는 한편, 최신 기술과 소재를 활용하여 과거의 클래식을 현대적 맥락으로 끌어오는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가령 트위드라는 전통적 소재에 디지털 직조 기법을 접목하거나, 기존 실루엣에 기능성을 강화한 디자인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블라지의 철학에서 중요한 ‘움직임과 유연성’은 샤넬의 레디 투 웨어 컬렉션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보테가에서 보여준 대로, 착용자를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의상을 통해, 샤넬의 럭셔리가 단순히 ‘드러내고 보이는 것’에서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문화적 상징성을 확장하려는 노력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블라지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조용하지만 트렌디한 ‘쿨함’을 만들어냈지만, 샤넬에서는 단기적인 화제성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적 정체성’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그는 샤넬을 단순히 럭셔리 패션의 정점으로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세대와 문화를 포용하는 브랜드로 더욱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마치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 남성복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은 단순히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시도하기보다, 이미 견고한 전통 위에 새로운 균형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의 샤넬은 과거와 현대, 정교함과 실용성, 그리고 상징성과 개성을 모두 아우르는 브랜드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지금 이 브랜드의 견고한 팬들은 물론, 마티유 블라지가 선보인 작업을 지지했던 꽤 많은 이가 그의 인사이트를 통해 샤넬의 미래를 엿볼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홍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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