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샤쓰 조각’이라 부르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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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글로벌 트렌드 20

2024-08-14 오후 2: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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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전 세계 티셔츠 총매출액은 미화 723억 1천만 달러(우리 돈 약 99조 4천억 원)에 이르고 글로벌 티셔츠 산업은 오는 2030년까지 계속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2018년 ⓒFashion and Textile Museum)



티셔츠는 입는 자의 생각과 감정 상태를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 보드 겸 개인 표현의 무대다. 작년에는 보기에는 심플하지만 가격은 고가인 ‘조용한 럭셔리(quite luxury)’가 유행하더니, 올해는 판도가 달라졌다. 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슬로건 티셔츠’가 여름철을 거쳐 가을까지 여간해서 열기가 식지 않을 모양새다.


지금부터 약 70년 전, 영국의 문필가 조지 오웰은 미래 인류는 정치와 개인 정체성을 하나로 여기고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아마추어 정치가가 될 것이라 예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날 전 세계 인류는 모바일 스마트 디바이스와 SNS 플랫폼을 통해서 셀카를 비롯해 인생의 각종 순간을 담은 인증샷, 개인의 정치적·사회적 신조가 담긴 다양한 이미지들을 타인들과 공유하며 정치 사회적 신호를 선언하고 표출하면서 자아를 다져 나간다.


티셔츠 유행은 대략 20년마다 돌아오는 모습을 보인다. 1960년대 정치 운동을 패션과 접목시킨 슬로건 티셔츠의 창시자 캐서린 햄넷(Katharine Hamnett)과 사회 참여적 패션에 몸담았던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 Westwood)의 발자국을 따라, 1980년대에는 뉴욕과 런던클럽 가를 배회하던 전위 예술가들이 정치적 신조가 적힌 티셔츠를 옷에 걸치는 정치적 제스처를 일삼았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탄생하기 전인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른바 ‘Y2K’ 공포와 불완전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불안감이 도처에 흥건했다. 당시 인류는 가슴에 담고 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티셔츠로 옮겨 분출했다.


패션 트렌드와 유행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이 늘 그러했듯 2000년대 초, 선풍적 인기를 끈 슬로건 티셔츠 유행은 패리스 힐튼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연예인들이 주도했고, 여성 소비자들은 슬로건 셔츠를 따라 입으며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했다. 슬로건 티셔츠에 적힌 메시지는 주로 짧게 반박하는 조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각에서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가리켜 ‘클랩백 티셔츠(clap back t-shirt, 모욕을 맞받아치는 맞대응의 말)’라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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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Alive, 캐서린 햄넷



◇ 2024년 티셔츠에는 어떤 변화가


올해 다시 한번 티셔츠는 현대인의 신체를 화폭 삼아 몸 위의 게시판 혹은 광고판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올 7월 초 독일 베를린 패션 위크(Berlin Fashion Week) 2025년 SS 캣워크 패션쇼에서 도발적인 클럽 웨어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브랜드 나밀리아(Namilia)는 삐쩍 마른 모델들에게 ‘I♥Ozempic(나는 오젬픽을 사랑해)’라고 인쇄된 흰 티셔츠를 입혀 소개했다가 체중 감량 약품을 공공연하게 광고했다며 저급하고 혐오스럽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나밀리아는 날씬한 몸매 유지를 위해 값비싼 체중 감량 약품을 애용하는 할리우드 연예인과 상류층 인사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대중문화 현실을 짤막한 슬로건으로 풍자하려 했을 뿐이었지만, 결국 찬반과 호오(好惡) 논란을 빚으며 소비자의 뇌리에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긍정적 부수 효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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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패션 위크 SS25 중 나밀리아 패션쇼에서 선보인 ‘I ♥ OZEMPIC’ 티셔츠(자료: 인스타그램)



때론 속옷으로 또 때론 단편 아이템으로서의 티셔츠, 이 겸허하고 심심하기 짝이 없는 만년 전천후 아이템의 위력은 스타일의 단순함과 메시지의 단도직입성에 있다.


메시지의 내용이 재미있는 농담이든, 정치적 선언이든, 혹은 개인적 신념과 철학을 담은 진중한 금언이든 티셔츠를 캔버스 삼은 슬로건 티셔츠는 관심을 끄는 문구, 눈길을 사로잡는 색상과 서체로 현란하고 이목을 끄는 거리의 미술 그래피티(Graffiti)에 못지않은 시각적 임팩트와 메시지 소통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올 초여름에 개봉한 테니스 영화 ‘챌린저(Challengers)’에서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젠데이아가 입고 등장한 ‘내가 말했지(I told ya)’라고 쓰인 회색 티셔츠는 개봉과 동시에 바이럴 선풍을 탔고 즉시 로에베(Loewe)가 유통시켰다. 셀럽과 PPL을 이용한 로에베의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 제대로 먹힌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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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 Save the Arctic Campaign by Andy Gotts MBE



◇ 티셔츠, 만만하지 않아요


이제 티셔츠는 패션 업계에서 더 이상 한 번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은 싸고 흔한 기본 아이템 그 이상의 독보적 존재 이유(raison d’etre)와 자립적 지위를 쟁취했다.


작년 여름, 방송인 김종국 씨가 자신의 쇼핑몰에서 직접 디자인한 슬로건 티셔츠를 출시했다가 고작 티셔츠를 고가에 판매한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소식이 보도됐지만, 현재 글로벌 패션 시장에는 장당 가격이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고가 명품 슬로건 티셔츠들이 대거 출시돼 있다.


일년 사이 글로벌 명품 업계는 럭셔리 슬로건 티셔츠를 출시하고 소비자들은 비싼 티셔츠를 사 입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어패럴 업체에 있어 슬로건 티셔츠 사업은 저가의 비용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손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유혹적이다. 하지만 모든 고가·고품질의 어패럴이 그러하듯, 티셔츠 또한 △우수한 원단, △높은 수준의 수공적 완성도와 세심한 디테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이콘적 디자인이 △소셜미디어 마케팅과 만났을 때 매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원칙은 변함없음을 브랜드들은 기억해야 한다. (참고 링크: https://www.jungle.co.kr/magazine/27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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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슬로건 티셔츠 유행을 이끈 패리스 힐튼. 세계 최대 티셔츠 매출 시장은 미국으로, 1인당 평균 27장을 소유하고 있다(자료: ZipDo).




박진아 칼럼니스트
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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