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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아펠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과감하면서도 재치 있는 스타일로 80세에 패션계 아이콘이 됐다 |
미국 사업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텍스타일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배우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이 지난 3월 1일(현지시각) 팜비치 자택에서 10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펠은 팔로어가 200만명이 넘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세계 최고령 10대’라고 소개했던 아이리스 아펠. 대형 올빼미 안경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뉴욕 퀸즈 자치구 출신의 100세 스타일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과감하면서도 재치 있는 스타일로 80~90년대에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화려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반세기 이상 파리 패션쇼 앞좌석의 단골 게스트였다.
짧게 자른 하얀 머리카락, 선명한 립스틱, 얼굴의 절반 크기인 커다란 뿔테 안경, 빨강·노랑·초록 등 원색이 도드라지는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 목과 팔에 감은 굵은 액세서리 등 개성 넘치는 스타일은 뉴욕 사교계 유명인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았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옷을 입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많을수록 좋고 적은 것은 지루하다"고 자신의 패션관을 밝히기도 했다. 아이리스 아펠은 20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10대'라고 소개했고, 종종 자신을 '나이 든 샛별(Geriatric Starlet)'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아이리스 아펠은 파크 애비뉴 아파트의 두 층을 수십 년 동안 수집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작품으로 가득 채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렉산더 왕부터 아이작 미즈라히까지 유명 디자이너와 패션계 유명 인사들은 보석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유명한 세계에서 가장 시크한 100세 할머니의 팬이라고 밝힐 정도로 뉴요커 디자이너들의 정신적 대모였다.
아이리스 아펠이 디자이너·사교계 명사에서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80대인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면서부터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05년에 그녀의 옷장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는데, 자신이 소장한 의상 82점과 액세서리 300점을 선보였다. 미술관 측은 아펠이 대단한 패션 수집가라는 소문을 듣고 전시회를 제안했는데, 이 전시회에는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였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칼 라거펠트가 참석하는 등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미술관에서 개인의 의상 컬렉션을 전시한 것은 아이리스 아펠이 처음이었다.
아이리스 아펠의 명성이 스타일 페이지를 넘어 널리 퍼진 데에는 2014년 앨버트 메이슬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리스>가 큰 도움이 되었다. 4년 후 그녀의 자서전 <아이리스 아펠: 우연의 아이콘(Iris Apfel: Accidental Icon)>이 서점가를 강타했다.
항상 사업가였던 아이리스 아펠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유명했는데, 자신의 모습을 본 뜬 바비인형이 만들고 홈쇼핑 네트워크 컬렉션을 출시했으며, 심지어 MAC 화장품과 메이크업 라인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아이리스 아펠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광고·패션잡지 모델로 활동하며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그녀는 97세이던 2019년 세계 최대 모델 에이전시 IMG와 계약을 맺었고, 지난해 101세의 나이로 화장품 브랜드 시아테런던의 광고 모델이 됐다.
그녀는 인생을 즐기는 비결에 대해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파리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자신을 기념하는 리셉션에서 손님들에게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최대한 개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며, 무리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100세까지 살았던 남편 칼 아펠과 함께 1950년부터 1992년까지 직물 복제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올드 월드 위버스(Old World Weavers)를 운영하면서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 화장품 회사 창업자 에스티 로더를 고객으로 두는 등 성공을 거뒀다. 또한 존 F. 케네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등 역대 미국 대통령 9명의 백악관 인테리어 공사를 맡아 명성을 떨쳤다
1921년 8월 29일 뉴욕 퀸즈에서 아이리스 배럴(Iris Barrel)로 태어난 아이리스 아펠은 위스콘신 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패션 전문지 <WWD>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컬러나 파격적인 실루엣을 주저하지 않았던 아이리스 아펠은 한 모임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스웨터, 부츠, 가죽 보머 재킷에 검은색 타이츠나 청바지를 입는 현대적인 유니폼을 버리라고 촉구했다. 대신 그녀는 "과감하게 변신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라. 어떤 옷을 입었는데, 잘 어울리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스타일 경찰이 당신을 체포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리스 아펠이 사망한 후 인터넷에서는 그녀의 폭넓은 팬층을 반영하듯 추모글이 쏟아졌다. 뮤지션 레니 크라비츠는 인스타그램에서 아이리스 아펠을 "삶의 예술을 마스터한 사람"이라고 묘사했고, 의류 매장 올드 네이비는 "영원한 아이콘"으로 그녀를 기억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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