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잉 60년대'의 핵심 인물이자 레전드 디자이너, 메리 콴트 |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문화 혁명 '스윙잉 60년대'의 핵심 인물이자 레전드 디자이너 메리 콴트가 지난 13일(현지시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34년 런던 남부에서 웨일스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콴트는 패션사에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하거나 혹은 그것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타이틀은 마리 콴트가 미니 스커트를 디자인하기 전에 이미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앙드레 꾸레주의 상징적인 의복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메리 콴트가 선견지명과 창의적인 재능으로 여성 패션 혁명의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초, 메리 콴트는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예술학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는데, 이 학과는 그녀의 부모님이 전망이 없다고 생각한 분야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미래 남편이자 자신의 경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동창 알렉산더 플런켓 그린을 만났다.
메리 콴트는 생전에 탁월한 선견지명과 창의적인 재능으로 여성 패션 혁명을 주도했다. |
1955년 두 사람은 친구인 사진작가 아치 맥네어와 함께 런던 킹스 로드에 바자(Bazaar)라고 불리는 매장을 오픈했다. 메리 콴트와 알렉산더 플런켓 그린은 각각 바잉과 마케팅을 담당했고 아치 맥네어는 법적인 부분을 포함한 비즈니스를 담당했다.
영국은 전후 긴축 재정에서 막 벗어나고 있었고 패션, 예술, 음악과 바를 결합한 아방가르드 콘셉트 매장은 발빠르게 패션 아티스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비틀즈, 오드리 헵번, 브리짓 바르도도 그곳에서 만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바자는 미니스커트가 발명되기 전 옷차림에 있어 좀 더 여유로운 접근을 했던 평범한 젊은 영국 여성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였다.
바자의 성공에 이어, 1957년에 부부는 두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이 매장은 해비타트 브랜드의 창업자인 테렌스 콘란이 1964년에 재단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비달 사순 머리를 한 메리 퀀트처럼 1960년대의 젊은 스타일과 창의성을 잘 표현했다.
1955년 메리 콴트와 남편 알렉산더 플런켓 그린, 아치 맥네어가 함께 오픈한 '바자' 매장 |
1960년대 중반까지 이들 3인방은 세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고, 메리 콴트는 짧은 오버롤 드레스와 화이트 칼라가 달린 빨간색 플라스틱 맥킨토시를 포함한 그녀의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60년대 말 그녀의 이름을 붙인 브랜드는 미국으로 수출되어 JC 페니 매장에서 판매되었다.
메리 콴트는 자신의 디자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를 원했고 특히 영국 시장을 위해 진저 그룹(Ginger Group)을 출시했는데, 이는 6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스타 모델 트위기가 착용해서 더 유명해졌다.
재료 선택 면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마케터이자 아방가르드주의자인 메리 퀀트는 DIY 패턴, PVC 신발, 라이크라 란제리와 양말 등을 선보이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1966년, 그녀는 꽃 로고가 있는 화장품 라인 데이지를 출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메리 콴트의 이름은 패션계에서는 사라졌지만 뷰티와 관련된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1966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메리 콴트가 남편 알렉산더 플런켓 그린(왼쪽)과 사진작가 아치 맥네어와 함께 촬영을 했다 |
60년대, 70년대 혹은 80년대 초반을 기억하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메리 퀀트 팔레트나 립스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 브랜드는 패션 관련 브랜드만큼이나 유스 메이크업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0년, 메리 콴트 메이크업 라인을 계속 운영하는 일본 회사가 '콴트(Quant)'라는 이름을 인수했다.
전 <보그> 영국판 편집장 알렉산드라 슐만은 자신의 트위터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녀는 패션 리더이자 여성 기업가 정신의 리더이자 멋진 헤어 스타일 이상의 선견지명을 소유한 훌륭한 선구자다"라는 글을 올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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