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네이터를 착용한 김건희 여사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96세의 일기로 서거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참배하고자 전 세계 정상들이 지난 19일부터 모여들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 입헌군주로서 70년간 재위한 여왕을 추모하는 장례식은 200여 개국에 생중계된 방송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 주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남편과 함께 ‘조문외교’를 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갔다. 그런데 현지의 교통 통제로 예정했던 첫날 참배를 취소하면서 비판이 쏟아졌을 뿐 아니라 김 여사가 쓴 베일 달린 패시네이터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장례식에 패션쇼를 하러 갔느냐는 비아냥들도 이어졌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영국 왕족 여성만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써야 했으니 조문 예절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영국 귀족의 예의범절에 대해 써 놓은 ‘더브렛’(Debrett‘’s)에 따르면, 왕실 여성은 국장에서 검은 무릎길이의 드레스나 코트, 검은 모자를 쓰고 베일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어 왕실 장례식 ‘애도 베일’(mourning veil)도 보편화되었다. 이번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에서 에마뉘엘 마크론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이나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부인,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부인 역시 베일 달린 패시네이터를 착용했다. 대통령실은 베일 착용이 영국 왕실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 패시네이터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김건희 여사의 패시네이터 착용을 비판하는 것은 상식적이 않다. 단지 머리에 장식하는 패션 소품에 불과한 패시네이터 착용을 마치 불경이나 저지른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건전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거짓 패션 정보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애꿎은 패션만 주홍글씨로 만드는 꼴이다. 시적인 미니-햇으로 불리는 '패시네이터'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와 영국 에티켓에서의 역할에 대한 패션사적인 고찰을 통해 팩트를 체크해 본다.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 |
먼저 패시네이터(Fascinator)라는 명칭은 1960년대에 처음 붙여졌고 1970년대 후반에는 높아진 예술성으로 인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결국 오늘날에는 왕족과 패션 리더들이 착용하는 장식적인 모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패시네이터 기원은 변덕스러운 마리 앙트와네트가 그녀의 포마드를 바른 헤어에 타조나 공작 깃털을 꽂았던 17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멀리 거슬러서 고대로 올라가면, 최초의 여성 유인원들이 양치류 잎이나 나비 날개 등을 머리에 장식했다는 증거가 있다. 거의 모든 문명의 여성들이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장식물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깃털을 사용했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금박을 입힌 가발을 썼고 고대 히브리인들은 금가루를 머리에 뿌렸다.
그러나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새로운 파워 드레싱 시대가 열렸고, 머리 장식은 단지 의식적이거나 영적인 목적에서 벗어났다. 상인들은 모자와 헤어피스를 포함한 시크한 액세서리를 만들어 법원이나 도시의 시장에서 판매했다. 갑자기 '패션'이라는 단어가 언어 전반에 걸쳐 쓰이게 되었고, 부가 늘면서 셀프 이미지는 기능성이 떨어지고 경박해졌다.
영국 튜더 왕조(1485~1603년) 시대에는 패션 규제를 통해 영국과 웨일스 여성들에게 베일, 두건, 필박스 모자, 곱슬머리로 장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많은 헤드피스들은 매우 정교하고 비쌌기 때문에 튜더 모자는 진주, 레이스, 깃털, 유리보석, 금실로 장식한 부와 신분의 상징이었다. 1500년대 초반에 멋을 낸 두건이 인기를 끌면서 여성용 모자를 만드는 디자이너를 일컫는 '밀리너(milliner)'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밀리너는 아틀리에 노동자들처럼 수작업으로 모자를 만들었으며, 이는 각각의 모자가 독창적인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 복잡하고 사치스러운 패시네이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오랫동안 비싼 액세서리로 대접받았다.
1600년대 내내 영국 여성들은 프랑스 패션의 영향을 받았다. 먼저 그들은 찰스 1세의 아내인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 헨리에타는 머리를 위로 납작하게 하고 옆으로 곱슬곱슬하게 감았다. 그 후 1660년 찰스 2세가 왕좌에 복귀했을 때, 화려함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관능적인 가발 사용은 사회를 사치스러운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여성들은 프랑스 퐁탕주 후작에 의해 유행된 퐁탕주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퐁탕주 헤어스타일은 머리 장식과 긴 헤어스타일의 조합이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곱슬곱슬한 컬은 꽃 부착물, 보우, 베일, 작은 모자로 장식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헤어 장식가로 기록된 마리 앙투아네트가 등장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름다움, 위신, 사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관심을 갈망한 요즘으로 치면 관종증 환자였다. 당시 프랑스의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그녀의 사치스러운 소비 습관은 부적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헤어스타일은 유럽 상류층의 패션 창의성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미니어처 풍경 정원, 동물, 깃털, 심지어 승리한 전함인 라 벨-풀의 축소 모형을 포함한 터무니없는 장신구로 머리를 장식했다.
모델 나오미 캠벨 |
비록 덜 사치스러운 수준이지만, 18세기 영국 여성들은 인기 있는 네덜란드 헤어스타일과 올림머리를 조합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올림머리는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폼폼(pompom)은 리본, 깃털, 나비, 보석으로 만들어졌고 머리 앞과 옆면에 고정되었다. 아마도 미학적으로 현대적인 패시네이터와 가장 흡사한 형태였다.
19세기 유럽은 전쟁, 혁명, 세계적인 불황에 시달렸다. 아울러 마리 앙투아네트의 극단적인 머리 장식은 곧바로 유행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여전히 보닛, 진주, 조개껍데기, 베일이 특별한 경우에 적절한 머리 액세서리로 여겨졌다. 1860년대까지 모자는 여성의 옷장에 다시 도입되었다. 깃털 달린 승마모자가 하늘로 솟구쳐 머리 옆쪽으로 기울이면 가장 멋있는 스타일로 여겨졌다.
1920년대에는 젊은 세대인 플래퍼들이 영국 패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규칙 위반자들은 머리 장식, 특히 한쪽에 깃털이 튀어나온 진주, 시퀸, 클로체 모자를 착용했다. 반면에 1940년대는 여성스러운 미니어처 모자인 '인형 모자(doll hat)'가 이마 앞쪽에 자리 잡거나 올림머리 안에 둥지를 틀었다. 유럽에서 이것들은 나치 점령에 저항하는 주요 상징물로 여겨졌다.
1950년대에 쿠튀리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코트나 가운의 오페라적인 볼륨과 손에 쥐어진 쪽지 같은 아주 작은 모자 장식물로 스타일의 균형을 잡았다. 패시네이터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셈이다. 이후 미국 모자 디자이너 존 P. 존이 등장했는데, 당시 그의 브랜드 '미스터 존'은 미국에서 크리스찬 디올과 같은 유명한 이름이었다.
영국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는 "60년대 초에 뉴욕의 미스터 존이 '패시네이터'라고 불리는 모자를 만들었다. 이 패시네이터는 베일로 만든 모자로 올림머리 위에 장식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작은 모자는 '클립 햇' 또는 '하프 햇'이라고 불렸지만, '패시네이터'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들렸다. 미스터 존의 마케팅 계략은 매우 영리했다."라고 말했다.
미스터 존은 역사적 용어를 다시 사용했고, 10년 후인 197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모자 비즈니스를 바꿨다. 그는 패시네이터를 현대적 현상인 컨셉추얼하고 환상적인 현상으로 진화시킨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로얄 결혼식에서 독특한 패시네이터를 착용한 베아트리체 공주 |
모자 디자이너 존스 P. 존은 "나는 항상 작은 모자를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자 디자이너로 교육받은 것은 화려한 패션쇼가 아니라 나이트클럽을 통해서였다. 런던의 블리츠든 뉴욕의 스튜디오 54든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출 때 큰 모자를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작은 모자를 썼다. 그리고 그 모자는 훨씬 더 기발하거나 매혹적이었다. 댄스 플로어나 리무진 뒤편에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에 영국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와 필립 트레이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패시네이터를 엘리트 계층들 사이에서 대중화시켰다. 스티븐 존스의 매장 ‘코벤트 가든 살롱’은 다이애나 비, 그레이스 존스, 이자벨라 블로우와 같은 로얄 고객들과 유명 인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스티븐 존스와 필립 트레이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모자 디자이너다. 스티븐 존스는 마크 제이콥스의 2017년 가을 런웨이 쇼에서 모자를 디자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2년 6월 5일간의 행사인 로얄 애스콧의 드레스 코드가 변경되었을 때, 패시네이터는 약간의 타격을 입었다. 너무 많은 미니스커트와 스파게티 스트랩이 등장하자 올바른 격식을 차리는 것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드레스 코드는 관람석에서 모자, 헤드피스 또는 패시네이터를 요구했지만, 왕실 구역에서는 패시네이터 뿐 아니라 4인치 이하의 베이스가 있는 헤드피스 착용 조차 금지했다. 즉 일반인들과 달리 왕족은 패시네이터를 쓸 수 없었다. 따라서 패셔네이터는 왕족만 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는 "패시네이터는 사실 왕실 모자가 아니다. 낮 시간 동안 왕족들은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때문에 맞춤복에 더 적합한 챙이 있는 커다란 모자를 착용하는 경향이 있다.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왕족들은 실내에 있을 때나 저녁 시간에 착용하는 그들만의 패시네이터는 바로 수백만 파운드의 티아라였다"라고 설명했다. 영국을 모자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는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는 "모자는 영국 사회에서 특별한 행사를 위한 소셜 패브릭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모던한 21세기형 패시네이터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영국 패션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도피주의의 한 형태든, 상류층을 위한 액세서리든, 또는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든 작은 모자는 역사적으로 영국 안팎의 정치적 풍토와 관련이 있다. 비록 오늘날의 패시네이터는 정치적인 비난을 덜 받지만, 가장 보수적이고 절제된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 날에는 여전히 패셔너블한 반란으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한 영국 정착민들이 경마 스포츠와 독특한 문화를 미국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패시네이터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다양한 경마장에 등장한 것은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패시네이터는 최소한의 기능적 목적(있는 경우)만 제공하지만 몇 가지 바람직한 특성도 있다. 우선 이 액세서리는 키에 대한 착각을 더함으로써 당신의 실루엣을 길게 연장시킬 수 있다. 머리 옆이나 앞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통이 넓은 모자와는 달리 멋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맞춤 제작을 한다면, 패시네이터는 진정한 예술 작품이자 개성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형 패시네이터는 정치적 의도가 없는 헤어 액세서리 소품에 불과하다. |
일명 '패시네이터'가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 2011년 많은 하객들이 머리에 화려한 패시네이터를 착용하고 참석한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로얄 결혼식에서 베아트리체 공주가 착용한 옅은 분홍색 바로크풍 생물 형태의 패시네이터가 눈길을 끌었다. 이 패시네이터는 나중에 이베이 자선 경매에 나와 약 1억 9천만 원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경매에 나온 모자 중 가장 비싼 금액이다.
베아트리체 공주의 빈티지 로즈 새틴 헤드피스(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하객을 위해 그가 만든 36개 넘버 중 하나)를 만든 아일랜드 출신의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는 "패시네이터는 머리에 꽂는 빗, 철사, 클립으로 부착하는 머리를 위한 작은 장식품이다. 챙이 없으면 크라운도 없다. 오늘날 이 용어는 클립, 머리띠, 빗에 부착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라고 말했다.
뉴욕의 모자 디자이너이자 콘데 나스트의 기록 보관 담당자 그레첸 펜스턴은 "모자를 패시네이터로 만든다는 것은 머리 장식(trim)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베이스는 보통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패시네이터는 말 털이나 베일, 튤, 깃털, 꽃들뿐이다. 즉 패시네이터는 모자가 없는 장식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부인 재클린이 지방시가 디자인한 반소매의 상복에 검은 베일의 패시네이터를 쓴 채 서 있는 모습은 20세기 세계인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이 모습만 보더라도 이미 1960년대에 영국 왕족이 아닌 미국 영부인도 장례식에서 패시네이터를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건희 여사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장에서의 패시네이터 착용은 결례가 아닌 것이 에티켓이다. 패션은 정체된 정치가 아닌 흐르는 역사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패션을 바라보는 보다 진보적인 시각이 필요한 때다. 패션은 더 이상 정치권을 위한 주홍글씨가 되어서는 안 될 듯하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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