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이 미야케, 84세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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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터틀넥, 바오바오 백으로 유명한 패션 혁신가 겸 발명가

2022-08-11 오전 9:08:11

디자이너 이세이 비야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친 일본 출신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간세포암으로 투병 중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지난 9일 일본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패션의 레전드 이세이 미야케는 '발명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디자이너다. 그는 1999년 패션계를 은퇴하기까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고 개발하며 일본 패션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 획을 그었다.


기하학적인 '바오바오' 백과 스티브 잡스가 입은 하이테크 유니폼 '검은색 터틀넥'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고인은 지난 8월 5일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장례식은 본인의 뜻에 따라 친척들만 참여하는 가족장으로 이미 치러졌다.


이세이 미야케는 1970년대 중반부터 파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젊은 일본 디지이너들의 뉴웨이브를 주도했다. 그는 하에테크를 표방한 편안한 옷의 개척자였으며, 그가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불렀던 오트 쿠튀르에 웅장함을 불어넣었다.

1970년 도쿄에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면서 고급 여성복 패션업계에 뛰어든 이세이 마야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첫 파리 부티크를 오픈했다. 그는 히로시마의 참상을 목격한 후 '아름다움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레이 카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와 함께 일본 패션계의 거물이자 레전드인 다카다 겐조와 모리 하나에의 뒤를 이어 1970년대 중반부터 파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젊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다.


플리츠 플리츠 컬렉션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혁신적인 패션에는 1993년 발표한, 구김이 가지않는 영구적인 주름 아이템인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라인이 있다. 한 장의 천으로 몸을 감싸는 보편적인 여성복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가 창조한 '플리츠 플리츠'라인은 체형과 관계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세계 여성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기하학적인 미학의 바오바오(Bao Bao) 백은 미래적인 삼각형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카피되었다. 원단 위에 삼각형 모양의 반짝이는 소재를 결합해 이어붙여 만든 이 가방은 넣는 물건에 따라 가방의 형태가 바뀌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이세이 미야케는 절친이자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를 위해 100벌이 넘는 블랙 터틀넥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스티브 잡스가 터틀넥과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애플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사용해 옷 전체를 이음새없이 자르는 무봉제로 옷울 만드는 A-POC(A Piece Of Clothee) 컨셉으로 런웨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일본의 권위있는 '교토 프라이즈'를 수상한 지난 2006년, 고인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싫증이 나거나 주춤 거릴 때, 나는 '옷 한 벌'이라는 주제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늘 새롭고 거창한 것을 내놓으며 세상을 놀라게 한 이세이 미야케. 하지만 그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작품을 위한 옷이 아닌 삶을 위한 옷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바오바오백


지난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이세이 미야케는 1945년 8월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인 불과 7살이었다. 그는 3일 후 나가사키 폭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시킨 폭발에서 살아 남았다.


비록 폭격으로 인해 그는 평생 다리를 절뚝거렸지만,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뉴욕타임즈>의 핵군축을 촉구하는 자신의 글에서 침묵을 깼다.


그는 기고글에서 "눈을 감으면 아무도 경험해서 안되는 일들이 여전히 보인다. 밝은 붉은 빛, 곧이어 검은 구름,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3년 만에 어머니는 방사선 피폭으로 돌아가셨다"라고 썼다.


원폭 피해자인 이세이 미야케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요청했고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일본 정부가 준 기념품으로 미야케 사무소가 디자인한 손목시계와 만년필이 선택됐다.


패션쇼 피날레 장면


1965년 도쿄의 타마 예술 대학을 졸업한 이세이 미야케는 파리로 이주해, 엘리트 학교인 파리의상조합학교(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에서 공부했다.


젊은 디자이너로서 그는 기라로시와 지방시 밑에서 일했지만, 그의 세계관은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 시위로 촉발된 68운동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세이 미야케는 2016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프랑스 수도를 집어삼킨 학생 시위를 보면서 "세계가 소수의 오트 쿠튀르의 필요를 넘어 청바지와 티셔츠와 같은 단순하고 보편적인 요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이어 자신의 첫 파리 부티크를 연 후, 그는 혁신을 거듭했고 1980년대에는 플라스틱에서 금속 철사, 심지어 장인용 일본 종이까지 패션 소재로 실험했다.


디자이너 이세이 마야케


팀워크는 이세이 미야케에게 필수적이었는데, 그는 캣워크의 밝은 빛보다 섬유 과학자와 엔지니어로 가득한 연구소의 익명성을 더 선호했다. 그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이 창조적인 과정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할 때, 사람들은 항상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면서 파리 컬렉션 디자인에서 손을 뗐고 그 이후로 재능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큰 성공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브랜드를 감독했고, 원단부터 바느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캣워크 쇼 노트에 상세히 설명될 정도로 기술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이세이 미야케는 특히 프랑스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데, 전 문화부 장관 잭 랭이 2016년 도쿄로 직접 방문해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수년 전 구입한 이세이 미야케 작품을 지금도 입고 있는 잭 랭은 2021년 10월 디자이너를 "깊은 인간미를 가진 남자, 모든 것에 열려있는 남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세이 미야케는 연구자이자 발견자이며 지금까지 세계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소재와 질감을 고안하고 사용한 진정한 발명가"라고 말했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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