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40대 퍼스트레이디' 김건희 여사가 지난 10일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공식 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전문직 여자답게 활동하기 편안한 팬츠 슈트와 블랙과 화이트의 무채색을 선호하는 김 여사는 대통령의 배우자로 나선 첫 공식 행사에서 TPO에 맞춘 적절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현충원 참배 때 입은 블랙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김 여사가 이전에도 즐겨 입었던 옷을 재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킷 디자인과 디테일이 올해 2월 봉은사를 방문했던 날과 2019년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입은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구인사 방문 때는 블루 블레이저 재킷에 화이트 셔츠, 블랙 치마를 입었다. 재킷을 포인트로 한 군더더기 없은 미니멀 & 시크 룩이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의 핵심 스타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내외는 이날 오전 10시 5분쯤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김건희 여사는 식스 버튼의 블랙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블랙 스커트와 펌프스를 매치한 TPO 스타일을 선보였다. 여기에 작은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로 간결한 올 블랙 룩을 완성했다.
참배를 마친 후 환복한 김 여사는 오전 10시 45분쯤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단아한 올 화이트 룩을 입고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허리에 넓은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A라인의 랩 스타일 코트는 단연 압권이었다. 여기에 아이보리 원피스와 화이트 펌프스로 룩을 마무리했다.

김건희 여사는 단아함과 여성미를 강조하기 위해 의상 컨셉을 ‘나비’로 잡았다. 그 결과 허리 라인으로 여성미를 강조했으며 무릎 아래까지 직선으로 퍼지는 미디 길이로 단아함을 강조했다. 여기에 한복 동정을 연상시키는 브이넥 재킷 라인, 큼지막한 옷고름 형태의 리본 벨트를 더해 한국 저고리의 전통미를 연상시켰다.
SNS 계정과 김건희 여사의 최근 사진을 분석해 보면, 뉴룩을 연상시키는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가 아래로 갈수록 퍼지는 A라인 실루엣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현충원 참배와 취임식에서도 A라인 실루엣으로 여성스럽고 단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페미닌한 실루엣은 일할 때 입는 머스큘린 팬츠 슈트와는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올 화이트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퍼스트레이디와 여성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패션 코드로 알려져 있다. 검정, 회색, 네이비 등 어두운 남성 정장이 지배적인 가운데서 그 존재감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날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 올 화이트 스타일을 여성 참정권을 의미하는 영미권의 ‘서프러제트 화이트(suffragette white)’ 패션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윤 대통령 측은 김 여사의 올 화이트 의상은 ‘깨끗한 정치, 새 출발’이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경축 연회 때도 차이나칼라 디자인의 화이트 재킷형 원피스로 입었다. 이어진 취임식 마지막 일정인 취임 기념 만찬회에 참석한 김 여사는 아이보리 컬러의 실크 드레스를 입었다. 하지만 TPO에서 데이웨어와 볼 가운은 확연히 구분된다. 데이웨어의 미니멀 느낌을 고수하면서 소품과 장신구를 최대한 절제해서인지 특별한 날 만찬의 퍼스트레이디 드레스치고는 다소 빈약(?)한 느낌이들었다.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 날 만찬에서 신인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화이트 의상을 남다른 매력을 과시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개념 있는 재활용과 사치스럽지 않은 검소한 스타일도 좋지만, 어차피 TPO에 맞는 스타일을 연출할 것이라면 앞으로 국빈 만찬에서는 그에 걸맞는 패션 센스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배우자라면 럭셔리 브랜드 몇 벌을 사비로 충분히 살 수 있다. 그것을 사치라고 탓할 국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패션은 가치소비라는 개념이 바로 서야 K-패션의 세계화도 앞당겨 질 것이다. 필리핀 이멜다 여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미셸 오바마와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과 같은 개념있는 '퍼스트레이디'가 우리나라라고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럼 현충원 참배 때 입은 '블랙'과 취임식 때 입은 '화이트'가 의미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필자는 '흑묘백묘 패션'으로 정리해 본다. '흑묘백묘(黑猫白猫)'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사자성어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한 말이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자 내부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경제 문제만큼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실리를 챙기자는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의 시작이었다. 취임 후 첫 과제인 민생 해결을 외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숙제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화합과 소통이 시대정신인데, 대한민국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고질적인 이분법 정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좌빨 종북’ ‘꼴통 보수’ 등 이념적 갈라치기는 물론 정파나 계파를 노선이 아닌 ‘친(親), 반(反), 비(非)’의 접두어로 구분하는 정치 문화가 만연하고 있다. 지난 대선 이후 더 깊어진 모습이다. 한국 정치가 좌우 논리나 흑백 논리가 아니라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처럼 좌파 정책이든 우파 정책이든 혹은 이를 혼합하든 당면한 국정 과제를 풀 수 있는 생산적인 해법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검수완박’과 국무위원 ‘청문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야간 '협치'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좌우 날개가 조화를 이루어야 파란 하늘을 날아갈텐데 두 날개가 엇박자를 놓고 있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도 타협이나 소통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건희 여사가 보여준 흑묘백묘 패션은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할 획기적인 정치대연정을 위해 야권인 민주당에 보내는 윤석열 대통령의 우회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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