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레옹 탈리는 화려한 경력과 개성으로 패션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
미국의 패션 에디터 앙드레 레옹 탈리(André Leon Talley)가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홍보 대행사인 TAA PR에 의해 확인되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알 수없는 병으로 최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망했다.
약 40년 경력의 앙드레 레옹 탈리는 메이저 패션 미디어에서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인종 차별 문제가 보편화되기 훨씬 전에 이미 다양성의 리더가 되었다.
1972년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학계 쪽보다는 적성에 맞는 패션계로 뛰어 들었다. 1975년 앤디 워홀의 <인터뷰> 매거진의 정식 직원이 되었고 단 기간에 패션 에디터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패션 업계 바이블 <WWD>에서 패션 저널리즘에 입문했다. 이어 1977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패션 캐피탈의 수석 기자로서 패션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파리 지국장이 되었다.
앙드레 레옹 탈리는 우렁찬 목소리와 거대한 카프탄, 신체적인 존재감으로 인해 대중들은 곧바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이어 <배니티 페어>, <하우스 앤 가든>, 그리고 2013년까지 객원 에디터로 일했던 <보그>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 <보그>서 일하는 동안 그는 멧 갈라 레드 카펫에서 리한나와 인터뷰한 것부터 지면에서 미셸 오바마를 인터뷰 한 것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다. <보그>에서 패션 디렉터를 역임하고 글을 쓰기 위해 퇴사했지만 다시 입사해 객원 에디터로 활약하는 등 전설적인 보그 에디터로 깊은 인연을 유지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와 거대한 카프탄, 그리고 신체적인 존재감으로 인해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앙드레 레옹 탈리는 종종 비판적인 의견이 의도적으로 묵살되는 회사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48년 10월 16일에 태어난 앙드레 레옹 탈리는 썰렁한 아재 개그와 디자이너 관련 일화와 스토리에 대한 무궁무진한 제공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2020년에 출판된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더 시폰 트렌치'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쓴 패션 작가이기도 했다.
패션에서 그의 많은 역할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코스튬 연구소를 지원하는 일과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에게 그의 서사시 쇼 무대에 대해 조언을 한 것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흑인 출신의 모델과 에디터, 디자이너들을 옹호하는 역할이 아닐까 한다.
앙드레 레옹 탈리와 안나 윈투어 |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앙드레 레옹 탈리의 사망 소식이 보도된 후 곧바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앙드레 안녕. 당신보다 더 우아하고 매력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본 사람은 없을 거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과 함께 웃었다. 당신이 그리울 거다. 당신 덕분에 패션계는 훌륭했다.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거다. 천국에서 편하게 쉬길 바란다”고 애도의 글을 올렸다.
지난해 앙드레 레옹 탈리는 프랑스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문예공로훈장의 수상자가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앙드레 레옹 탈리는 <WWD> 인터뷰에서 "내가 이 세상에서 겪은 모든 교육과 경험 중에서 이것은 내 인종과 내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닮은 사람들이 정말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 나는 흑인 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자라 프랑스로부터 이 명망있는 영예를 받은 미국계 흑인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30년 전만 해도, 안드레 레온 탈리는 런던, 밀라노, 뉴욕, 파리에서 열리는 주요 패션 쇼에서 유일하게 앞 좌석에 앉은 유색 인종이었다. 오늘날 더 이상 그렇지 않다면, 그 변화의 많은 부분은 영웅적인 경력을 가진 안드레 레온 탈리의 덕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유재부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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