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평양생산 경험에 비춰 북한은 한국 패션기업들에게 훌륭한 소싱기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동대문, 부산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북한 노동자들을 교육하면 생산성 높은 고급기술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든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중국,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봉제는 최고의 고용창출 업종이기 때문에 북한은 반드시 문을 열 것이고 패션그룹형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제2의 활로 개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6일 열린 '新남북경협 추진을 위한 패션의류업계 대응 포럼'에서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준비된 기업만이 이룰 수 있다"며 북한진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최 회장은 패션의류산업남북경협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직접 위원장을 맡아 한국패션산업연구원(원장 주상호)과 이번 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앞서 지난달 11일에는 홍의락 의원실, 서영교 의원실, 산업연구원이 공동 개최하고, 소상공인연구원과 개성공단기업협회, 한국의류산업협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이 후원해 국회의원회관에서 '남북 상생발전을 위한 섬유패션산업의 협력 전략 포럼'도 열렸다.
16일 '新남북경협 추진을 위한 패션의류업계 대응 포럼'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
북한생산, 무엇이 매력적인가
형지 등 북한생산 경험이 있는 패션기업의 기대감은 물론이고 최근 국내외 경제전문가들 역시 '패션(의류 봉제)'을 남북 경협 시 가장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으로 꼽는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사인 A.T.커니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북한의 패션(섬유 포함)산업 규모는 약 7억2,500만달러(한화 약 8,066억원)로 추산된다. 북한의 산업구조와 경제규모, 북한에 대한 강력한 UN 경제제재를 감안할 때, '패션'은 종사 노동자 수와 그 중요도가 상당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낮은 임금과 교육 수준이 높은 노동력을 보유해 베트남에 이어 세계적 소싱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위원 역시 "북한에서 섬유와 의류는 장마당이라는 소비재 시장의 주요 거래 품목이며 중국과의 최대 교역품목"이라면서 "북한 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이 외국자본에 대한 개혁, 개방 관련 법제화를 이룬다면 베트남 이상의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저급 기술을 요하는 섬유제조와 봉제 임가공처로서, 향후 소비시장으로서의 가치도 평가할 만 하다는 것이다.
현재 실현 가능성이 높은 남북경협 방안은 우선 개성공단 재개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가 폐쇄 전 입주기업(총 123개사)을 대상으로 진행한 개성공단 재입주 여부 설문조사에서는 응답 기업 101곳 중 95%가 '재입주 하겠다'고 했고, 신원의 경우 '재개 즉시 공장가동'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패션기업이 꼽는 개성공단 생산의 장점은 낮은 인건비 대비 숙련된 기술, 소통의 용이성, 원부자재가 국내산일 경우 '메이드 인 코리아'로 원산지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패션기업의 기회요소 VS 위험요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컨설팅을 해 온 김형덕 린경영컨설팅 대표는 "북한은 한국 패션기업들에게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봉제기지이자 나아가 섬유산업 버티칼 단지로 확장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 노동자들의 학력이 고졸이상 83%로 세계 최고 수준, 급여도 2016년 기준 8시간 기본급이 약 70달러로 고학력, 저임금 노동력을 가진 매력적 생산기지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 임가공 노동자 1인당 급여 수준은 월 300달러다.
20여 년 간 남북 민간사업을 진행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이성로 팀장은 "북한생산은 납기 리스크를 제외하면 우리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였고, 우리 기업들이 여타 해외사업과 마찬가지로 '투자 대비 효율'만 보고 들어간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 "명심할 것은 북측 유일 창구인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사업 파트너로서 신뢰를 쌓고, 우리 기업끼리 과당 경쟁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남북 경협이 시작된 26년 전부터 대북사업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북한 내부는 물론 국제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꼽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를 전제하더라도 '북한 직접 투자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도 다수가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북한 법 상 남한 기업의 직접투자는 금지되어 있다.
경영컨설턴트인 조익래 SUS연구소장은 "남북경협사업은 국내외 정치, 외교 상황이 매우 큰 변수이고, 남북 기업 간 분쟁해결 제도가 미비해 기업의 리스크가 크다"며 "사업구상 초기부터 글로벌 자본 유치와 경제자유구역을 통한 북한 소비재시장 진입을 염두에 두어야 안정성과 성장성을 일부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패션기업들이 북한을 보는 관점을 생산기지 또는 단일시장에서 동북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브릿지로 확대,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는 이미 북한 내에 상당한 생산 인프라를 선점한 '중국'이라는 벽을 넘어,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글로벌 기업들과 의 경쟁을 앞두고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다.
북중 수출입현황을 살펴보면 북한은 2016년 기준 2750만 달러 어치의 섬유패션제품을 중국에 수출했다. 특히 북한 접경지인 중국 단둥에는 시설과 원부자재를 북한에 내보내고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중국 기업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 |
납북 경협,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한의 개방수위와 국제 정세는 아직 안개 속이고, 북중 당국의 묵인 하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기업의 이후 영향력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재가동을 넘어 북한 전역에 있는 봉제단지를 한국 패션기업의 소싱기지로 활용할 방안을 세워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만들 곳도, 팔 곳도 줄어드는 우리 패션기업들에게 남북경협사업은 귀한 기회 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정부 지원과 보상에 기댄 '한 철 장사'가 아니라 '북한 생산=해외 소싱'이라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북한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이다.
김창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본부장은 "중장기적 남북협업 시나리오 구상이 필요한데 우리 패션기업들에게는 북한의 관련 정보가 전혀 없다"면서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북한을 봉제기지로 활용하고자 하는지, 북한의 섬유패션산업의 현재 상황과 임가공 실태는 어떠한지 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원 측은 앞으로 정부와 국회를 통해 평양, 남포, 신의주, 원산, 개성시 등 노동력과 봉제 기능 인프라가 갖춰진 대도시를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추진할 것으로 밝혔다. 봉제는 생활산업형 제조업이기 때문에 공단보다 장기적으로 대도시 주변 입지가 타당하고, 투자 유치와 운영 관리, 노동력 수급 또한 원활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패션기업의 소싱 인프라 구축 방향을 진단하고, 각 지역 별로 디자인, 봉제, 품질관리, 시설과 장비 등 지원시스템 세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낮은 인건비만을 기대한다면 아예 북한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개성공단의 예에서 보듯 기본급이 매우 낮고 야근과 특근 수당을 비정상적으로 누진 적용하는 불합리한 임금구조로는 생산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진단이다.
김형덕 대표는 "노동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고용환경과 인건비 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성공단 근무 북한 노동자들은 오버타임 수당에 의존, 결근률도 평균 7~12%에 이르렀다는 것. 때문에 앞으로 북한 생산은 저가격 제품은 지양하고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고가품과 첨단소재 개발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초점을 맞춰 그에 맞는 급여기준과 근무환경을 만들고 북한 측이 관리하도록 해야 안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新남북경협 추진을 위한 패션의류업계 대응 포럼'이 16일 서울 삼성동 소노펠리체컨벤션에서 열렸다. |
이채연 기자
leecy@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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