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의 보이후드> 고전을 읽는 패션 캠페인, ‘로에베’
가+
가-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2018-07-11 오후 3:55:12




옷과 장신구를 돋보이게 하고 사람들에게 환상을 불어 넣는 ‘이미지’는 패션의 필수 요소이다. 수많은 패션 하우스가 새 시즌에 맞춰 ‘캠페인 광고’를 공개한다. 아름다운 모델과 이미지로 구성한 캠페인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함축한다. 일종의 ‘얼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종이 잡지가 득세한 시절에는 패션 잡지의 가장 중요한 광고판을 패션 캠페인이 맡았다. 봄과 가을이 시작되는 3월과 9월호는 유독 두툼한 두께를 자랑했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광고를 위해 세계적인 사진가와 슈퍼 모델, 유명인사가 모델로 나섰다. 미국 ‘보그’의 안나 윈투어를 대중에게 각인한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가 유독 ‘9월호’를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도 패션 캠페인을 둘러싼 산업 구조와 관련 있다.

보통 잡지는 인쇄한 달의 숫자보다 한 달 먼저 가판대에 깔린다. 9월호 잡지가 8월이면 나오는 식이다. 봄/여름 시즌이 시작하는 3월에도 새로운 캠페인이 쏟아지지만, 기본적으로 가을과 겨울에 입는 코트나 가죽, 모피 제품처럼 소비자 가격이 훨씬 높은 9월이 대목이다. 광고주들, 즉 패션 하우스들은 연말 홀리데이 시즌까지 이어지는 성수기를 위해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인 캠페인 광고를 내보낸다.

요즘 굳이 잡지를 사서 보는 이는 드물다. 연령이 20대로 내려가면, 패션이나 시각디자인처럼 관련 전공 학생조차 잡지를 사서 보지 않는 이가 많다. 실제로 패션 기업들은 종이 매체에 더는 예전처럼 돈을 쓰지 않고, 역량을 모바일 시장에 총동원하여 디지털 세대와 신흥 시장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패션 캠페인을 구성하는 ‘요소’가 소비 ‘매체’만큼 변하지는 않았다. 잡지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손가락으로 인스타그램 브랜드 계정 화면을 쓸어올린다고 해도, ‘모델’과 ‘사진가’가 있고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와 편집 디자인을 전담하는 ‘아트 디렉터’가 있다.

패션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심기 위해, 제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기어코 매장을 찾거나, 모바일 구매 링크를 누르도록 말이다.



‘로에베’, 시대를 역행하다
명망 있는 패션 하우스 중 다소 시대와 역행하는 방법으로 인상 깊은 캠페인 광고를 만드는 곳은 ‘로에베(LOEWE)’이다.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은 ‘유니클로’나 ‘컨버스’와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졌다.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2013년 이래, ‘로에베’는 유명 백화점 1층에서 위태로운 자리를 차지하던 과거와 달리 우아하고 세련된 가죽 제품과 독창적인 기성복 컬렉션, 브랜드의 뿌리가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지역성을 녹인 캠페인 광고로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조너선 앤더슨과 함께 캠페인을 지휘하는 프랑스 출신 아트 디렉터 듀오, 엠엠 파리(M/M Paris)는 과거 ‘로에베’ 서체와 로고를 재정립하여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 B/I를 완성했다. 이들은 시즌 특징을 정직하게 촬영한 가죽 제품 캠페인, 특별한 상황을 설정하고 기성복과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모델 캠페인, 그리고 로에베가 디자인한 책으로 과거 고전과 예술가 협업 시리즈를 담은 출판물 캠페인을 동시에 진행한다.


소비자 혹은 지지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채널이 넘치는 시대이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한 요즘 아예 브랜드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담아내기 위한 매체로서 직접 책을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신인 시절부터 함께 작업한 스타일리스트 벤자민 브루노와 세계적인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이 참여하는 ‘출판물 시리즈’ 캠페인은 흥미롭다. 2017년도 가을/겨울 시즌 남성복 캠페인부터 가장 최근 2018년도 가을/겨울 여성복 컬렉션까지, 로에베는 시대를 관통한 고전 문학을 캠페인 안에 불어넣고 있다. 시작은 캠페인 광고가 아닌 2018년도 가을/겨울 시즌 런웨이 컬렉션이다. 보통 패션쇼 첫 줄에는 초대 손님 선물을 두기 마련인데, 작은 기념품이나 뷰티 제품이 일반적이다.


로에베는 엠엠파리가 새로 디자인한 양장본 책과 스티븐 마이젤이 찍은 사진으로 띠지를 만든 ‘고전’ 서적 네 개를 모든 좌석에 놓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까지 총 네 가지였었다. 조너선 앤더슨은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과 나눈 대화에서 “고전의 표지를 바꾸면 오늘날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패션은 ‘인스턴트’가 아니다
단지 새로 디자인한 고전을 손님들에게 나눠준 것이라든지, 럭셔리 브랜드의 한 철 장사 소품은 아니었다. 컬렉션을 선보임과 동시에, ‘로에베’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파리 곳곳에서 네 가지 고전을 읽는 여성들의 모습을 찍고, 해시태그 #Take TimeToRead와 #LOEWEclassics로 마치 독서를 장려하는 듯 했다.


책을 받은 건 아쉽게도 소수의 초대 손님들이지만, 컬렉션 전후 12일 동안 파리 전역에는 약 5000장의 ‘로에베’ 포스터가 거리에 붙었다. 당시 이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패션은 단순히 이미지를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다.


쉽게 보고 빨리 잊는 인스턴트 문화가 득세하는 시대, 오히려 문학처럼 사람의 생각과 삶을 담아낸 예술의 결정체를 신선하게 제안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패션이다.


시간이 흘러 지난 6월 중순, ‘로에베’는 2018년도 가을/겨울 캠페인을 공개했다. 스티븐 마이젤은 슈퍼 모델 스텔라 테넌트가 ‘돈키호테’를 읽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거의 모든 ‘로에베’ 캠페인은 스티븐 마이젤이 과거에 ‘찍은’ 사진을 다양하게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모델이 읽는 책의 띠지는 과거 ‘이탈리아 보그’에서 마이젤이 촬영한 사진을 넣었다. 가죽 촉감과 바늘땀이 느껴질 정도로 세밀하게 담아낸 ‘로에베’의 ‘게이트’ 핸드백 캠페인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장인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미지는 ‘확장’이며 ‘연결’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과거 잡지 시대의 패션 캠페인이란 잘 찍은 한 장의 지면 광고를 가판대와 거리, 잡지 안에 싣는 형식으로 완결성을 띄었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의 광고는 사진을 넘어서 동영상과 인스턴트 비디오로 확장하고 있다.


‘로에베’가 이번 시즌 선보인 캠페인은 런웨이 패션쇼, 인플루언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조화, 과거와 현재·미래를 아우르는 통합 형태로 시차를 두고 진행한 시리즈이다. ‘로에베’ 공식 웹사이트 아카이브 페이지는 지금껏 진행한 ‘로에베’ 캠페인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모든 캠페인 요소는 ‘로에베’의 다면적 정체성의 예시이자 정신이며, 단 하나의 성격과 관련 있습니다. 더불어 로에베의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태도를 전달합니다. 패션 주도적이며, 다른 접근 방식과 영감에 개방적이고,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합니다.
All the campaign elements are examples of LOEWE’s multi-faceted identity, related in spirit, singular in character. Together, they convey LOEWE’s uniquely modern stance: fashion-driven, open to different approaches and inspirations, using ideas to connect past, present and future.”


'로에베'의 2018 F/W 인스타그램 캠페인. 고전 문학을 읽는 모습을 담았다.



yourboyhood@gmail.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