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렌드를 분석한 지 올해로 18년이다. 필자는 트렌드회사의 경영자라기보다는 직접 실물정보를 분석하는 분석가의 길을 걸어왔다. 18년 전과 지금의 패션계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 됐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을 형태의 기업이 생겨났고, 디자이너 한 두 명만 모여도 금새 브랜드 하나가 탄생하기도 한다.
패션 트렌드에 대한 정보도 무척 풍요로워졌다. 예전에는 트렌드회사를 통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웠을 내용들이 지금은 인터넷에 흔하게 넘쳐난다. 오히려 트렌드회사가 도무지 들을 수 없었던 고급 정보들을 인터넷의 패션마니아들을 통해 듣게 되기도 한다. 특히 신진 디자이너들과 ‘패피’라 불리는 요즘 멋쟁이들은 이렇게 풍요롭고 마이너한 정보에 기반해 새로운 패션의 동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은 국내뿐만이 아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전세계 패션 시장은 지금 신진 디자이너라는 거대한 개미군단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데 모은 온라인 셀렉트숍 ‘W컨셉’에 입점한 브랜드의 수만 해도 3000여 개에 달하고 신진 디자이너 수주 전시회인 인디브랜드페어는 매년 100여 개의 브랜드가 참가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도대체 어떤 옷이 예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이어들은 이 복잡한 리스트 중 누구의 옷을 바잉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혼란에 처한 사람들은 이미 이 개미군단의 시대에 편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즉 시장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한다.
한때 우리는 명품 시장과 국내 백화점 시장을 구분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명품을 꿈꾸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던 시대가 있었단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내셔널브랜드 시장과 명품 시장은 전혀 다른 시장임을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진디자이너들의 시장과 내셔널 브랜드의 시장 또한 전혀 다른 시장이다. 이처럼 패션 시장은 하나하나 쪼개지고 분리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지 우울한 소식은 신진들의 시장이 점차 커지고, 내셔널 브랜드 시장은 점차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즉 온라인에서 ‘스타일난다’나 ‘무신사’ 쇼핑을 즐기던 소비자는 백화점이 어떤 변화를 취해도 결코 반응하지 않겠지만, 반대로 백화점에서 옷을 사던 이들은 아마도 ‘스타일난다’와 ‘무신사’ 쪽으로 서서히 옮겨 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필자는 최근 ‘원데이원트렌드(
www.onedayonetrend.com)'라는 사이트를 오픈했다. 말 그대로 하루에 하나의 트렌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다. 그 동안 패션 정보는 일년에 일정 회비를 내고 방대한 데이터의 사용권을 얻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해 무료 정보를 제공한다.
신진 디자이너들은 일인다역을 하는 바쁜 젊은이들이다. 동시에 내셔널브랜드와는 달리 소품종을 생산해 온라인 기반으로 판매하며, PC 보다는 모바일 친화적인 밀레니얼 세대들이다. 이들에겐 트렌드회사가 제공하는 방대한 데이터는 필요가 없다. 시간을 내 PC 앞에 앉아 정보를 무한정 서칭할 시간도 없고 말이다.
이들에겐 더 짧고 효율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그저 출퇴근하거나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 모바일로 볼 수 있는 짤막한 정보, 그렇게 보다가 좋은 정보나 이미지가 있으면 저장을 해두고 기획에 들어갈 때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정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필자에게 왜 이 사이트를 무료로 운영하는지, 왜 힘들게 직접 운영하는지 물어보는 이가 많다. 먼저 사이트의 수익에 대해서는 지금 염려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회비중심의 사고를 탈피하고 조급한 마음을 버린다면, 수익은 차차 밀레니얼들의 방식으로 찾아갈 수 있다고 본다.
또 이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는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연간 4권의 매거진을 발행한다. 이를 만들기 위해 필자의 머리 속에 담아놓은 트렌드 정보가 1톤이라면, 책 4권에 담을 수 있는 정보는 1kg도 되지 않는다. 까다로운 편집과 번역, 지면상의 제약 등을 따르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뒷이야기나 일화 등을 모두 빼버린 중요하지만 지루한 이야기들뿐이라는 에디터로서의 모순, 필자는 거기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그 지식들은 모두 필자의 머리에 있으니 직접 꺼내지 않으면 누가 꺼내겠는가.
신진 디자이너 시장이 커지고, 패피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인터넷에는 별의 별 트렌드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필자는 이 공간을 무척 사랑한다. 스스로 몰랐던 것을 배우기도 하고 이 들이 무엇에 관심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어떤 정보들은 잘못 번역됐거나 분석자가 분석이 아닌 상상을 해서 쓴 것 같은 어이없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 책임감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다면 이 시장은 조금 더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단순한 생각으로 이런 젊은 바다에 배를 띄웠다. 지금으로선 즐거운 항해가 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원데이원트렌드’는 하루, 하나의 트렌드를 제안하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malcomebridg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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