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구호 제일모직 상무
“초등학교 전학만 네 번 해서 그런지 남들보다 환경적응력이 뛰어나요.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편이죠.”
프런티어 정신이 충만해서일까? 디자이너 정구호라는 이름 앞에는 길고 화려한 수식어가 즐비하다. 영화 아트디렉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레스토랑 컨설턴트 등 맥가이버가 부럽지 않은 팔방미인이다.
그의 패션디자이너 이력은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97년 브랜드 「구호」를 성공적으로 런칭하면서부터.
그리고 그의 이름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데에는 영화 <정사>의 미니멀하고 인상적인 공간과 이미숙의 절제되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돋보여준 의상이 있었다. 이어서 <텔미썸씽>, <순애보> 그리고 최근의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아트디렉터나 영화 의상 작업을 통해 특별한 감각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제일모직이라는 대기업의 일원이 된 지 이제 일년, 「구호」의 두 번째 컬렉션을 성황리에 치룬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흔에 접어든 남자의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수줍은 소년과 같은 미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길어봐야 30분 간다’는 낙천주의적 성향을 가진 그가 짓는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그러나 디자이너 정구호의 프로필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뛰어난 감각의 순진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자신의 옷을 어떻게 많이 팔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하는 비즈니스적인 미덕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그는 하루나 반나절을 이용해 근교로 자주 떠나던 여행조차 뒤로 미룬 채 「구호」를 정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디자이너 정구호는 스스로 자신의 지난 삶이 ‘럭키’했다고 말한다. 패션계의 주목을 받으며 첫 데뷔쇼를 한 이래 지금까지 그는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쌓은 인맥을 통해 그의 감각은 이미 입소문이 난 상태였고 ‘살과 옷 사이에 공기가 존재해 움직임에 따라 편하게 움직여지는 옷’을 내세우는 그의 브랜드 「구호」는 H라인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청담동에 둥지를 튼 브랜드 「구호(KUHO)」는 열렬한 지지층을 거느린 마니아 브랜드가 되었다.
영화에 있어서도 그는 행운아였다. <정사>의 아트디렉터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로 그의 작업은 늘 신선한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했기에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를 선택할 때는 먼저 제가 ‘얼마만큼 그 영화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요. 스타일적 감성이 필요한 영화일 때 비로소 제가 작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죠. 폭력적인 영화는 보지 않고 휴머니즘이 담긴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를 선택할 때도 저의 스타일과 맞아야 결과물이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그 후에는 다른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이전의 영화들과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고 움직여요.”
특히 <정사>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구호스타일’을 각인시켰다.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성격까지 엿볼 수 있을 정도로 의상과 소품 하나에도 그의 손이 가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상과 소품을 모두 제작한 <스캔들>도 기존의 조선시대에 가지는 소박한 이미지의 전형을 깨는 화려함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려움은 찾아왔다. NSF와 파트너십을 맺고 개인숍 형태에서 내셔널브랜드로 대전환을 시도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한 시즌 만에 결별하게 되면서 자식과도 같은 「구호」에서 손을 떼야 했기 때문이다. 그 후 잡화 브랜드 「쌈지」와 손잡고, 천호균 사장과 공동 CEO로 일하면서 그는 패션경영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그에게는 다시금 행운이 찾아왔다. 제일모직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그를 영입하면서 브랜드 「구호」도 함께 인수해 재회의 감격을 맛봤던 것이다.
그윽한 국화차의 향기와 함께한 인터뷰 내내, 두 번째 「구호」쇼를 마친 디자이너 정구호에게 제일모직 상무로서의 위치는 한결 더 몸에 맞고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처음보다는 여유롭게 컬렉션을 준비했다는 그는, 이번 컬렉션에서 더 많은 대중을 겨냥해 여성스러움을 가미한 새로운 「구호」 스타일을 선보였다. “「구호」 마니아는 예전의 극도로 미니멀한 스타일을 그리워해요. 그러나 그때는 「구호」의 이미지를 정립하던 시기여서 하나의 이미지를 고수했던 부분도 있어요. 이제는 「구호」가 기업형 브랜드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감성을 잃지 않은 채 대중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시기죠. 흔히들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중화되면 그 아이덴
김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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