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부모님께 빌린 1000만원으로 ‘91.2’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옷 세 벌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업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24살 때는 빚이 억 단위로 있었죠.”
이구원 디자이너는 복고 스트리트 바람의 한 가운데에 있는 ‘91.2’와 세컨 브랜드 ‘9by912’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다. 22살의 젊은 나이에 브랜드를 론칭한 그는 일주일에 2~3개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만큼 업계와 매체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제 또래에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쏟아지는 관심과 달리 브랜드는 수익을 내지 못했어요. 해외유통을 에이전시에 전담시켰는데 수수료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빚은 쌓여갔고 면목이 안 섰죠.”
그러나 이 디자이너는 긍정적이고 판단이 빨랐다. 그는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세컨 라인인 ‘9by912’를 기획했다. 키치한 여성복 ‘91.2’를 기반으로 ‘9by912’는 좀 더 캐주얼하고 90년대 스트리트 느낌을 강화시켰다. 또 록밴드나 인디밴드의 감성을 담으며 한층 인기를 높였다.
실제 이 디자이너는 너바나를 동경하고 쉴 때에는 베이스를 연주할 만큼 밴드를 좋아한다. 이러한 면들은 ‘9by912’ 룩북에 밴드 멤버들이 모델로 등장하거나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영상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9by912’ 특유의 감성과 무드에 열광했다. 특히 ‘9by912’는 론칭하자마자 가수 오혁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이름을 떨치며 혁오밴드의 인기와 함께 급성장했다.
“세컨 라인이 론칭한 지 이제 딱 1년이 됐는데 ‘SEOUL YOUTH’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서울의 젊음을 대표하는 유스컬처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 점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어요. 합리적인 가격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이었고요.”
세컨 라인이 잭팟을 터뜨려 이 디자이너는 그간의 빚을 모두 청산했고 지금은 매달 부모님께 용돈도 두둑이 드리고 있다고. 무엇보다 값진 것은 그가 ‘91.2’로 적자도 내고 ‘9by912’로 성공도 해보면서 사업에 대해 재미를 느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 디자이너는 브랜드를 전개하는 방식이 매우 적극적이다. 국내외 유통은 더 들어갈 곳이 없을 정도로 입점 제안이 오는대로 받아들였고 이번 해에만 5개가 넘는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했다. ‘오피셜홀리데이’ ‘비이커’ ‘분트X디즈니’부터 ‘쇼핑몰 AIN’ ‘YG 캐릭터 크렁크’ 등과의 콜래보까지 영역도 다양하다. 현재는 6번째 콜래보로 ‘참스’와 재미있는 작업을 구상 중이라고.
“패션은 사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팔리는 옷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브랜드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것 또한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열정적인 그에게 붙여진 타이틀은 ‘91.2’ ‘9by912’의 디자이너 외에도 FNC엔터테인먼트 스타일리스트, 외식업 공동대표 등이다. 이렇듯 그의 남다른 사업 전개 방식은 브랜드 론칭을 시작하던 대학시절에도 비슷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던 그는 예고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의상학과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그는 디자이너의 꿈을 이어갔지만 그가 상상하던 대학교의 모습은 현실과 괴리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브랜드를 잘 운영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졸업장 대신 사업자등록증을 먼저 손에 넣었어요. 교수님이신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남들과 다른 행보를 선택했던 이 디자이너는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브랜드를 준비했다. 인맥이 없었고 학업을 스스로 중단했기 때문에 패턴실은 포털 사이트 검색 첫 줄에 뜨는 곳을 찾아갔고 일러스트는 인터넷으로 배웠다.
그러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91.2’를 론칭하고 이 디자이너만의 방식으로 브랜드를 키워갔다. 해외 유통은 에이전시에 일임, 국내 유통은 위탁판매로 진행하면서 그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다음 시즌에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예전에는 재미로 사업을 했었는데 회사가 몸집이 커지고 공동 대표가 됐으니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죠. 그렇지만 디자이너로서, 사업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준 ‘91.2’ ‘9by912’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원색의 아이템들과 네온 조명이 돋보이는 ‘91.2’ ‘9by912’의 신사동 쇼룸 |
세컨 브랜드 ‘9by912’는 복고 스트리트와 밴드의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사진은 ‘9by912’의 2016 F/W 룩북 |
'91.2' 2016 F/W 룩북 |
강하나 기자
khn1@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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