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요소가 하나일 때든 둘일 때든 항상 조형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조형요소들을 추가하게 되면 아무리 복잡한 형태라도 문제 없이 조화시켜 줄 수가 있다. 디자이너들이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원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조형과정과 속도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일화도 많다. 다카하타 겐죠가 프랑스에서 몹시 어렵게 살 때는 하루 저녁에도 스타일화를 300장씩 했다고 한다. 말이 300장이지 낙서를 300장 한다고 해도 어려운 일인데,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형태를 그렇게 빠른 시간에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능력이 아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겐죠처럼 빠른 시간에 많은 디자인을 그려낸다. 같은 일본인인 이세이 미야케, 지안프랑코 페레 같은 디자이너들은 스타일화(아이디어 스케치)로도 유명한 디자이너들이다.
하나의 디자인이 많은 형태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빨리 그린다는 것은 단지 선을 빨리 긋거나 색을 빨리 칠하는 기술만 뛰어난 것을 뜻하지 않는다. 빨리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조형요소들을 빠르게 한 덩어리로 조화시킬 수 있는 조형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겐죠와 같은 거장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직접 보게 된다면 마치 프린터에서 찍혀 나오는 것처럼 드로잉이 슥슥 그려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그림이 알아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전체의 형태가 동시에 그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손만 보고 감탄할 일이 아니다. 이런 디자이너들의 손이 비행기의 속도로 날아다닌다면 머리나 눈의 속도는 거의 광속을 달린다.
이들의 손끝을 통해서 쉼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림들은 사실 그리는 그 찰나에 이미 눈과 머리 속에서 모든 조형적 검토를 마친 것들이다. 어떤 형태를 어느 정도의 크기에, 어느 위치에, 어떤 색으로 할지를 그리기 전에 눈과 머리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안이 선택되어 손끝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많은 형태요소들은 이렇게 하나하나 검토되면서 비로소 전체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워낙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에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디자인을 자칫 감각의 산물로만 보기가 쉽다. 그래서 형태를 찾아가는 고단한 공부의 과정을 생략하고 뛰어난 디자이너의 흉내만 내다가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형태를 하나하나 조화시킨다는 것은 모양이 다른 벽돌로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이리도 맞추어보고 저리도 맞추어보면서 자기가 원하는 집의 형태가 만들어질 때까지 지루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 때로는 완전히 허물고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생긴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리지만 세월의 켜가 누적되면서 형태를 찾아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게 된다.
그런데 디자인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디자인을 하면 할수록 과정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지 과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속도만 따라가려다 보면 과정은 빼먹기가 쉽기 때문이다. 속도는 권장사항이지만 과정은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배워야 할 것은 과정이지 속도는 아니다.
형태의 추가
앞에서 배운 것처럼 삼각형과 육면체만 조화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세, 면적, 실루엣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그런데 삼각형과 육면체는 그나마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들이기 때문에 연결하기가 쉽지만, 좀더 복잡한 형태가 어울릴 때는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그림 1>의 형태들과는 전혀 동질감이 없는 별 모양을 <그림 1>에 첨가한다고 해보자. 문제는 조금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차분하게 동세의 연결이나, 실루엣의 단순화 등을 생각하면서 형태를 하나씩 정리해 들어가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가 있다.
<그림 3>은 정리된 두 개의 형태 위로 별 모양이 첨가된 경우이다. 삼각형 아랫변과 별 모양의 양쪽 팔의 동세와 형태가 연결되고 육면체와 삼각형이 모여서 만드는 뾰족한 각도 안에 별 모양의 왼쪽 팔이 거의 맞춘 듯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실루엣도 단순하고 세 가지 조형요소의 연결성도 좋다. 모든 조형요소들이 이렇게 두루두루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전체의 짜임새는 기대할 수가 없다.
이 상태에 또 다른 형태들이 같은 원리로 겹치게 되면 좀더 복잡한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조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 이처럼 조형요소가 하나일 때든 둘일 때든 항상 조형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조형요소들을 추가하게 되면 아무리 복잡한 형태라도 문제 없이 조화시켜 줄 수가
최경원 디자이너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