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다. 어른들은 나라를 잃었다고 슬퍼하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던 시절. 그는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었다. 영화 <청연>은 한국 최초의 민간인 여류 비행사인 박경원의 삶을 그리고 있다. 1901년에 태어나 33세에 꿈에도 그리던 귀국비행을 하던 중 추락사고로 요절한 조선의 신여성 박경원의 생애는 시대를 앞선 신여성의 삶, 그 자체였다.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조선 여성들이 새로운 사고와 문물, 그리고 세상을 배워가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서양 복식과 문화가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던 그 시절, ‘모단걸’ 박경원의 꿈과 희망을 투영한다.

푸른 하늘을 향한 날갯짓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던 박경원(장진영 분)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본 어린 꼬마 시절,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성년이 된 그는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학비를 모으기 4년째, 꿈에도 그리던 다치가와 비행학교 조정과에 입학한다. 택시 운전을 하던 그는 유학생 한지혁(김주혁 분)을 손님으로 만나고, 지혁은 경원에 대한 애틋한 연모의 정을 간직한 채 군에 입대한다. 몇 년 후, 2등 비행사 자격을 얻고 학교의 기대주로 성장한 경원은 자신처럼 조선에서 유학 온 이정희(한지민 분)와 친자매처럼 지내며, 제대 후 기상 장교로 다치가와에 돌아온 지혁과 다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경원은 전 일본 비행대회에서 랠리종목 학교 대표로 선발되지만 든든한 배경을 지닌 일본인 기베(유민 분)에게 밀려 대회 출전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경원은 연습 비행 중 사고를 당한 기베를 도와주고, 이후 기베는 물심양면으로 경원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뜻하지 않은 후배의 사고로 고도 상승 경기에 출전한 그는 위험한 비행 끝에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조국 비행의 꿈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경성 최고의 갑부이자 친일을 했던 한지혁의 아버지가 일본 군부대 내에서 조선적색단에게 살해당하면서 경원의 꿈과 사랑에 위기가 닥친다.
20세기 초 조선 패션을 선도했던 모단걸
박경원이 활동했던 1920년대는 근대화와 전쟁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특수한 시대였다. 영화 제작팀은 당시 일본의 거리와 비행학교, 복엽기를 재현하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마이크로필름 신문 자료 1만여 장과 시대 복식에 관한 서적 100여 권을 구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 도호 커스튬에서 700여 벌의 의상을 빌리고 한국 해인엔터테인먼트에서 100여 벌의 의상을 제작하는 등 의상 제작비만 2억5천만원을 투자했다. 이렇게 탄생한 박경원과 한지혁, 주변 인물들의 의상은 당시 지식인들, 근대화된 사고를 가졌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모던’은 새로운 혹은 근대적이라는 의미로 의복·언어·행동양식·사고방식이 깨인 사람들을 가리켰다. 동시에 경박하고 자유분방하며 천박스러운 유행으로 조소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이들은 거리의 유행을 이끄는 집단이며 근대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박경원이 보여주는 짧은 커트 머리와 바지 정장, 승마 부츠는 전통 사회가 강요하는 전근대적 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비상하는 모던 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유를 향한 페미니즘, 에이섹슈얼 룩(asexual look)
영화의 제목이 된 ‘청연(靑燕)’은 박경원의 꿈이 담긴 비행기 이름. 푸른 제비처럼 제비가 많은 고향 하늘을 날고 싶었던 박경원의 자유로운 꿈은 에이섹슈얼 룩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별이 없는’이라는 의미의 에이섹슈얼 룩은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를 보여주는 패션이다.
짧게 커트한 헤어 스타일, 블루 컬러와 화이트 컬러, 스트라이프 패턴의 헐렁한 셔츠 블라우스와 매치한 수트, 팬츠와 승마 부츠의 조화는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그래서 여성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싶어하는 박경원의 마음을 보여준다. 남녀차별,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 속에서 비행사의 꿈을 이뤄가는 그녀의 스타일은 그래서 여성스럽기보다는 남성스러움이 더 강하다. 다만 그 남성스러움이 부드러운 여성인 박경원에 의해 당당함으로 부각된다. 조종사가 되면서 보여주는 보머 재킷과 조종복은 한층 더 남녀의 구분을 허물어뜨리는 의상. 기베의 조종복이 타이트한 피트라면 박경원의 조종복은 헐렁한 피트
신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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