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로 오랜만에 컬렉션을 보면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벌칙쯤으로 생각되던 스타킹을 뒤집어 쓴 모델이 후드 바이 에어의 런웨이에 등장한 것이다. 어떤 완벽한 미남, 미녀도 스타킹을 쓰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굴욕감을 피할 수 없는데, 심지어 구멍을 뚫어 입을 더 튀어 나오게 하거나, 스타킹 위로 눈썹, 구레나룻을 덧그려 한층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했다.
누가 봐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과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혼란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름다움, 그리고 그 반대의 의미인 ‘추’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한다. 고전주의 시대에서 카논(canon)이라는 용어로 사용될 때 ‘미’는 선(善)이자, 중심, 규범을 뜻하며, 추는 혼성적이고 무질서한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시대부터 17세기까지 고전미학은 추를 금지한다.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은 것의 권력 지배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18세기 말 낭만주의 운동으로 억압되던 추의 지위가 상승하는 시대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로테스크를 재발견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이 ‘노틀담의 꼽추’인데, 저자 빅토르 위고는 추를 옹호하며 콰지모도를 연민의 대상으로 그려냈으며, ‘레 미제라블’에서는 위법자인 장발장과 법을 극단적으로 지키려는 경감 자베르를 대립시켜 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모더니즘에 이르러서 예술이 선이 아닌 진(眞)을 찾는 영역이 되면서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추를 새로운 진리의 주제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미 패션계에도 기괴함, 이상함으로 새로움을 찾아내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나쁜 취향’, 즉 기존의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꼼 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는 일부러 추한 패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깨뜨리고자 한다.
‘후드 바이 에어’의 디자이너 셰인 올리버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 방식을 택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동성 결혼 합헌 판결을 내리는 등 기존의 견고하던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과거의 규범이, 선이, 아름다움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일상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것,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혐오가 추의 범위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추함을 규정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나는 아름답고, 정상이며,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고 싶은 걸까?
고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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