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F/W ‘발렌시아가’ 컬렉션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 것은 봉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스테이플러 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버금가는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마그리트 그림의 대표적인 방법인 데페이즈망 기법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과 사물의 결합이 주는 충격과 같았다.
어렸을 적 본 만화의 한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정작 어떤 만화였는지는 제목이 기억 나지 않지만 중학생이 보기에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주인공인 의사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서 응급 환자를 치료해야 했는데, 환자의 찢어진 부위를 소독한 뒤 스테이플러를 이용해 임시로 상처 부위를 봉합하는 장면이었다.
찡그리고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순발력과 창의성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해왔는데, 자료 조사 때문에 이제야 알았지만 실제로는 수술용 스테이플러가 존재 한다. 그 장면에서는 사무용 스테이플러를 사용했지만, 어쨌거나 종이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스테이플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스테이플러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8세기, 루이 15세 시대에 발명되었는데 왕을 위한 것이라 각각의 철심에는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들어 종이의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한꺼번에 많은 종이를 고정할 수요가 늘어나면서 스테이플러의 성능은 점차 개선되었다. 초기의 스테이플러는 한 번에 철심 하나만 장착할 수 있었으나, 1860년대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스테이플러가 잇달아 발명되었다.
스테이플러가 없던 더 먼 과거에는 실제로 바느질을 하거나 꼬챙이로 꿰거나, 풀로 붙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13세기 중세 학자들은 리본과 왁스를 이용해 여러 장의 종이를 묶었는데, 지금 우리가 스테이플러를 종이 왼쪽 위 모서리에 찍는 것처럼 바로 그 위치를 고정시켰다.
스테이플러를 통해 단숨에 무언가를 고정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스테이플러의 심은 현대에 들어 더 강력한 힘으로 종이 이상의 두껍고 단단한 것을 고정하는데 사용된다. 일명 타카로 불리는 이 공구를 통해 인테리어, 가구 심지어 구두를 만들 때도 빠른 작업이 가능해졌다. 두꺼운 종이 상자뿐만 아니라, 목재나 콘크리트, 가죽 등 다양한 소재에 사용 가능하다. 심의 모양 또한 ㄷ형 외에도 U형이 있다.
실제로 ‘발렌시아가’ 컬렉션에 사용된 것은 스테이플러였을지, 타카였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패션과 공구의 결합은 꽤 신선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 만화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였던 것 같다.
고학수 기자
marchberry@naver.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