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왕, 그리고 톰 포드는 미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다. 톰 포드는 10년간 ‘구찌’를, 마크 제이콥스는 16년 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으며, 알렉산더 왕은 현재 ‘발렌시아가’를 이끌어 가고 있다.
세 디자이너는 오랜 역사와 높은 품질로 대중들의 생활과는 유리된 고가품을 만들어 내던 브랜드였던 ‘구찌’ ‘루이비통’ 그리고 ‘발렌시아가’를 대중들도 갖고 싶어하는 명품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그들의 이름은 패션에 문외한인 이들도 알 수 있을 만큼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동일시하며 혼동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오랜 시간 명품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 ‘구찌’=톰 포드 ‘루이비통’=마크 제이콥스라고 생각한 결과 미국 디자이너들은 미국의 전통 문화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절대 아니다.
명품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를 구별해 컬렉션을 감상한다면 오해는 쉽게 풀린다. 오히려 마크 제이콥스나 알렉산더 왕은 미국의 문화를 담은 자신의 브랜드를 먼저 크게 성공시킴으로써 유럽의 브랜드에 영입됐으며, 톰 포드도 이제야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미국의 전통 문화가 녹아 든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루이비통’을 16년간 이끌었던 마크 제이콥스는 잘 알려진 대로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졸업 패션쇼를 통해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 로버트 더피를 만나게 된다. 그가 선보인 것은 옵아트로 유명한 예술가에서 영감을 받아 할머니가 떠준 손 맛이 나는 투박한 스웨터였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면서 특히 젊은 이들의 구미를 당기게 만들 줄 알았던 마크 제이콥스 디자인의 매력을 알아본 로버트 더피는 마크 제이콥스와 의기투합해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
로버트 더피의 안목은 정확했다. 새파랗게 젊은 20대 청년은 미국의 대표적인 여피 브랜드였던 ‘페리 앨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고, 대중 매체는 신데렐라의 탄생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냈다.
마크 제이콥스는 호평을 받으며 ‘패리 앨리스’를 이끌었으나, 여피 브랜드에서의 전설적인 그런지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보수적인 소비자와 임원들의 눈밖에 나 한 순간에 ‘패리 앨리스’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한편의 영화 같은 이러한 굴곡진 이야기는 오히려 언론의 관심을 더욱 끌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마크와 더피는 마크 제이콥스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마크 제이콥스’와 ‘루이비통’을 동일한 하나의 브랜드로 여겨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90년대에 마크 제이콥스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패션계를 뒤덮었다면, 2000년대에는 알렉산더 왕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마크 제이콥스가 졸업 패션쇼를 선보였던 1984년 태어난 알렉산더 왕은 심지어 파슨스 스쿨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 브랜드를 시작하고 사업을 성공시키면서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하게 된다.
그는 과거 패션계에서의 성공 공식인 유명 브랜드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이나 수상 경력 없이 처음부터 여러 매장에 자신의 제품을 팔면서 브랜드를 키웠다. 그래서 큰 자본금이나 재고에 대한 부담 없이 빠르게 브랜드의 규모를 늘릴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방식은 최근 신생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롤모델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 디자이너의 컬렉션에 녹아있는 미국의 전통 문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눈에 보이는 스타일적인 면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스타일로는 알렉산더 왕의 스포티즘, 마크 제이콥스의 할머니에게서 영향을 받은 룩, 톰 포드의 카우보이 스타일이 있다.
알렉산더 왕은 다양한 스포츠웨어를 도시 여성에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미국의 패션이 현대 스포츠웨어와 함께 발전해 온 점을 안다면 이러한 특징이 바로 미국의 전통 문화의 반영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마크 제이콥스는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것처럼 오래 묵은 듯한 복고풍의 패턴이나 빛바랜 색의 믹스 매치, 때로는 서부 개척 시대, 또는 유럽 이민자들이 유입되던 미국 건국 초기 시대인 과거 유럽 복식의 변형 된 의상들을 선보인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의 다양한 시대극을 통해 대중에게도 익숙한 의상들, 일종의 미국식 사극에서 영감을 받는 셈이다.
최근 자신의 컬렉션을 시작한 톰 포드의 경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튜디오 54 시절의 밤 문화나 자신이 나고 자란 남부지역의 카우보이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음악과 조명이 있는 화려한 클럽 문화가 녹아있는 의상들은 뉴욕에서 20대를 보낸 세 디자이너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바로 이 클럽 문화에서 비롯한 패션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이다.
특정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팝, 힙합, 록 등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전세계에서 사랑 받는 미국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변화한 의상들도 미국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유럽보다 역사가 짧아 전통이라고 할 것도 없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통 문화의 정의부터 재정의 해봐야 한다. 사람들은 전통 문화라고 하면 ‘한 민족이 공유하고 대대로 전래되어서 그 민족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전적으로도 ‘그 나라에서 발생하여 전해 내려오는 그 나라 고유의 문화’로 정의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명확한 나라, 국가, 국경선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오래 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많은 국가들 사이에서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을 정도로 국가란 유동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이다. 명품 브랜드라는 것이 100여 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역사로 수 백, 수 천 만원의 가치를 내고 있음에 주목해봐야 한다.


고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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