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의 카우보이 톰 포드 (Tom 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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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79

2015-03-25 오후 5:00:16




 
‘에디톨로지’의 저자 김정운은 영어나 유럽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주변부 지식인으로 사는 삶의 애환으로 책을 시작한다. 자신만의 논리를 세우지 못한 채 영어권, 특히 미국에서 논의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힐끔대야만 비주류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변부 지식인의 슬픔이라는 것이다.

서양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19세기 이후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연구 분야의 학자들은 이렇게 ‘주변부 지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변부’ 논리는 패션계에도 적용된다. 트렌드는 언제나 세계 4대 도시로부터 오고 패션 변방국인 우리는 그것이 진리인양 수용한다.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컬렉션에 등장한 디자인들은 트렌드 분석기관에 의해 분석되어 이번 시즌의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패션계에 비싼 값에 퍼진다. 많은 경우 컬렉션에 등장한 옷 그대로 카피되어 대중에게 수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문장에 사명감을 느끼고 한복을, 또는 한국 전통 문화를 현대적인 패션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디자이너들도 있다.

그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등 일본 디자이너는 세계적으로 성공했는데 우리 나라는 아직 그러한 디자이너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오는 강박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디자이너들을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봐왔듯 수많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도 자신이 속한 문화를 패션에 집어 넣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에 대해 특별하다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았을 뿐이다.

이는 심지어 관능적이고 섹시한 패션의 대명사였던 톰 포드의 디자인에도 적용되고 있다. 톰 포드 하면 ‘구찌’와 ‘섹시함’을 연관 지어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마침내 ‘톰 포드’만의 개성이 녹아있는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는 데서 증명된다.

그 개성이란 것은 결국 톰 포드가 살아 온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것은 남부 미국인으로서의 삶, 뉴욕에서 보낸 젊고 화려했던 시절 등을 포함한다.







우선 미국 남부 출신의 그가 뉴욕을 거쳐 이탈리아로 가게 된 파란만장한 여정부터 살펴보자.

NYU로고로 잘 알려진 뉴욕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톰 포드는 영화배우를 꿈꾸며 상업 광고를 찍기도 했지만 이내 디자인 분야에 더 집중하기 위해 파슨스 스쿨에 입학해 인테리어와 건축 공부를 하게 된다. 이 때 그는 뉴욕과 파리에 있는 파슨스를 경험했으며, 이 파리에서 머물던 6개월의 시기에 ‘끌로에’의 홍보 사무실에서 일했다.

패션 디자인이 천직임을 깨달았지만 건축을 전공했기 때문에 패션계에서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한 달 동안이나 캐시 하드윅이라는 디자이너 사무실에 매일 찾아가 일을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마침내 하드윅의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2년을 보내고 1988년 페리 엘리스로 옮긴다. 그곳에서 2년을 보내면서 그는 미국의 패션계는 자신과 맞지 않음을 느끼고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하의 톰 포드도 미국에서는 자신이 패션의 주변부라고 느꼈던 것이다.

마침 ‘구찌’에서는 여성복에 강한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다. 당시 ‘구찌’는 누구도 갖고 싶어하지 않는 브랜드였다.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돈 멜로는 많은 디자이너에게 ‘구찌’의 여성복을 맡길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위험성을 무릎 쓰고 뉴욕에서 온 새파랗게 젊은 서른 언저리의 디자이너 톰 포드를 기용했다.

여성복을 맡은 톰 포드는 6개월 만에 남성복과 신발까지 맡게 되었으며 1992년에는 ‘구찌’의 레디 투 웨어에서 향수, 이미지, 광고, ‘구찌’ 매장 인테리어까지 11개의 제품 라인을 맡으면서 그는 하루에 18시간을 일하는 날들을 보내게 된다.

당시 흥미로운 일화로 ‘구찌’의 대표 마우리찌오 구찌는 모든 것을 둥그런 갈색 테두리로 마감하고 싶어했고, 톰 포드는 검정의 사각 테두리를 사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1994년 마침내 톰 포드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 첫 해에 그는1970년대 디스코 시대와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국 디자이너 할스톤 스타일의 벨벳 바지와 몸에 꼭 맞는 새틴 셔츠를 선보인다.

지금까지도 ‘구찌’ 스타일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프랑스 보그 편집장으로 잘 알려진 카린 로이펠트를 스타일리스트로, 마리오 테스티노를 포토그래퍼로 영입해 회사 광고 시리즈를 만들어 간다. 1995년과 1996년 사이 ‘구찌’의 매출은 90% 향상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다.

현재 톰 포드는 런던 컬렉션에서 그의 브랜드를 시작하고 있다. 그가 영국으로 간 이유는 미국 남자들이 패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와 영국 남자를 제외하면 남성들은 더 이상 패션을 입지 않는다고 평했다. 편안함을 위해 패션을 버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는 수많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는 미국 패션계가 싫어 유럽으로 옮겨갔지만, 오히려 다시 미국 스타일을 자신의 브랜드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미국 스타일이란 것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기인한다.

특히 2014 F/W에서 선보인 컬렉션에서는 카우보이 부츠나 판초, 프린지 장식의 의상들은 최고급 소재와 검정과 회색 등의 제한된 색으로 표현해 냈는데 그것이 카우보이의 스타일에서 온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새로워 보였다.

2015 F/W에서는 데님을 사용하여 좀 더 노골적으로 카우보이와 미국 남부 스타일을 선보였다. 

문화가, 게다가 전통까지 녹아있는 디자인이 사랑 받게 되기는 쉽지 않다. 지금 우리가 입고 살아가는 옷들이 탄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래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시도하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현대적인 색으로 여겨지는 검정색을 사용하는 것이다. 톰 포드가 그랬듯이. 
 



 



고학수 전문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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