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 없는 「구찌」는 어떤 모습일까?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마침내 2005 봄/여름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 드러났다.
「구찌」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약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격한 디자이너 존 레이가 지휘한 「구찌」 남성복 컬렉션은 오랫동안 톰 포드와 함께 일한 경력 때문인지 ‘급격한 변동 없이 무난하다’는 평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을 졸업한 존 레이는 1996년 「구찌」에 입사, 톰 포드와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 실제 디자인은 그가 하고 톰 포드가 ‘피니싱 터치’만 가미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구찌」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짧은 스위밍 트렁크와 황금색 「구찌」 G 버클, 레더 트림 등은 톰 포드 체제의 「구찌」에서 익숙한 아이템이며, 에스닉한 올림피안 스타일의 로브와 스쿱넥 실크 블라우스는 기존의 「구찌」 스타일보다 ‘소녀적’인 느낌을 준다. 섹시함이 느껴지는 아이보리·네이비 수트는 톰 포드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나비 문양이 새겨진 실크 블라우스는 등장하지 않아 보다 심플해진 느낌이다.
참석자들은 존 레이가 무난한 컬렉션을 진행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톰 포드 특유의 섹시함과 자신감, 엔터테이너적인 카리스마가 빠진 「구찌」에 아쉬움을 표출했다. 톰 포드가 지배하던 혈기왕성한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
그러나 온갖 부담을 업고 「구찌」 남성컬렉션을 진행한 존 레이는 슬림한 실크 턱시도와 벨벳 백, 참(charm:늘어지는 장식)이 달린 골드 목걸이, 핑크 링 등을 통해 젊고 경쾌한 이미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존 레이는 톰 포드의 뒤를 잇는 부담감을 인정하면서도 「구찌」의 전통과 그의 ‘정서’를 뒤섞은 컬렉션을 진행할 포부를 밝혔다.
다행스러운 점은 존 레이가 「구찌」의 코드를 착실히 밟으면서 개성적인 변화를 살짝 가미해 「구찌」의 디자인 방향에 조바심을 보여온 고객들을 안심시켰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수제 장식을 단 1970년대풍 카프탄은 에스닉한 예술작품의 품격을 갖추었고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니트 스웨터와 수도자 풍 로브는 절제된 섹시미가 느껴진다. 브론즈 페이즐리 턱시도와 레더·컨버스 슈즈는 세련된 업스케일 감각이 느껴진다는 평. 이렇듯 전체적인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막강했던 톰 포드의 마력을 이겨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한편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가 진행한 「이브생로랑리브고시」 역시 좋은 반응을 얻어 톰 포드 이후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주었다.
톰 포드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필라티는 1970년대 이브생로랑 룩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2005 S/S 컬렉션을 통해 세련되고 절제된 선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톰 포드가 「이브생로랑리브고시」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와 알력을 빚었던 것과 달리 필라티의 데뷔 쇼에는 베르제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톰 포드와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이브생로랑리브고시」가 새 바람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올해 38세인 스테파노 필라티는 호평에 자신감을 얻은 듯, 디자이너 개인의 스타성보다는 「이브생로랑」 라벨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이브생로랑리브고시」의 회장 마크리 또한 톰 포드의 액세서리처럼 치부되었던 「이브생로랑리브고시」가 부각되는 데 대해 만족해하면서 필라티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존 레이와 스테파노 필라티가 기대 이상의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톰 포드 이후 광풍에 휘말릴 것 같던 「구찌」에 대한 우려도 한 단계 가라앉는 분위기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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