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기고, 머리 좋고, 잘 노는 사기 캐릭터 톰 포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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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78 - 톰 포드 (Tom Ford)

2015-03-18 오후 2:53:20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나이가 들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때가 있다. TV를 보거나 길을 가다가 새롭게 등장한 괴상한 유행에 열광하는 10대, 20대를 보면서 ‘요즘 애들은…’, 또는 ‘우리 때는…’이라며 내가 젊었던 시절과 비교하며 혀를 차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랄 때이다. 누구보다도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던 내가, 우리를 보고 혀를 차던 ‘꼰대’들을 비판하던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똑같은 반응을 다시 어린 세대에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패션이나 음악, 문화 보다 나의 전성기 시절을 휩쓸었던 유행이 더 좋고 화려했었다는 우월감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세대에게나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던 다방 시절이든, 미러볼이 화려하게 돌아가던 디스코텍 시절이든, 나이트 클럽이나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연장 모두 이런 장소에 드나들 수 있는 나이는 누구에게나 다들 가장 예쁘고, 가장 잘 꾸밀 수 있고, 가장 잘 놀 수 있었던, 요즘 말로 ‘리즈시절’일 것이니 말이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말은 패션 디자이너에게도 잘 들어맞는다. 디자이너들에게 이 리즈시절은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스튜디오 54’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나이트 클럽은 당시 미국의 가장 잘 노는 젊은이들의 집합소였다. 마크 제이콥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할스톤, 캘빈 클라인, 그리고 톰 포드 같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도 이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스튜디오 54는 1977년부터 81년까지 뉴욕의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이었다. 맨해튼의, 54번가 거리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라디오와 TV 스튜디오를 거쳐 나이트클럽이 되었다. 새해 맞이 파티에서 4톤의 글리터를 뿌려 바닥에 4인치의 층이 생겼다는 스튜디오 54는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몰아넣을 줄 아는 화려함을 자랑했다.

앤디 워홀, 라이자 미넬리, 믹과 비앙카 재거 부부,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리 홀, 마이클 잭슨, 앨튼 존, 티나 터너, 다이아나 로스, 셰어, 살바도르 달리, 다이아나 브릴랜드, 존 트라볼타, 재키 케네디 오나시스, 브룩 쉴즈, 실베스타 스텔론, 리처드 기어, 잭 니콜슨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 가수, 예술가, 유명 인사 등이 모이는 장소였다.

당시 붐을 일으켰던 디스코 음악은 화려한 인테리어, 조명, 쇼, 참석한 사람들의 화려한 의상 등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성한 볼거리와 분위기로 더더욱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환상의 세계는 마약이나 문란한 성문화와 같은 불법적인 일들의 온상이 되면서 짧은 시간에 영화는 끝나고 말았다.

어두운 클럽과 현란한 조명 아래서 화려한 빛을 더하는 반짝이는 소재의 의상, 춤에 의해 율동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풍성한 모피털과 프린지, 강렬한 색과 패턴, 맨 정신에는 입을 수 없는 노출이 심한 의상 등은 디스코 클럽에서 놀면서 그 의상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디자이너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패션은 그 시절을 같이 공유하고 경험한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톰 포드’의 향락적이고 관능적인 패션 세계는 그렇게 스튜디오 54에서 만들어졌다.

톰과 포드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대중적인 이름이 연속되어 함께 불러졌을 때 내는 그 고급스럽고 묵직한 무게감은 디자이너 톰 포드의 종적을 함축하는 듯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항상 완벽한 차림과 매너를 보이는 톰 포드이기에 그의 고향을 모른다면 그가 유럽 태생이거나 지극히 화려한 미국의 대도시 출신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그는 1961년 미국 남부 문화가 살아있는 텍사스 주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남부 문화가 예의와 매너를 몸에 베게 했다고 한다.

그는 태생적으로 까다롭고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였다. 3~4살 무렵에 자신의 옷이 맘에 들지 않는다, 엄마 머리 스타일이 이상하다, 가구가 예쁘지 않다고 불평을 말하던 아이였다. 부모님이 외출 나간 사이에는 집 안의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했으며, 예닐곱 살 무렵에는 구두의 몇 미리 벗어난 박음질이 눈에 거슬렸던 소년이었다. 그에게 있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천성이었다. 그랬던 아이였기에 생애 처음으로 부모님을 졸라 갖게 된 ‘구찌’ 로퍼는 그에게 미적 만족을 충족시켜 주었다.

남부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년은 대학 진학을 통해 뉴욕으로 오게 된다. 의외로 톰 포드는 처음부터 패션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잘 생긴 외모 때문인지 그는 처음에는 연기자가 되려 했으나, 이내 적성이 아닌 것을 깨닫고 파슨스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20대 초중반의 나이가 당시 그가 스튜디오 54에서 화려한 밤을 보내던 시기였다. 파슨스 재학 시절 ‘끌로에’의 홍보 사무실에서의 인턴 생활을 계기로 패션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파슨스 재학, 스튜디오 54, 1980년대 초 뉴욕 생활 등 비슷한 시절을 보낸 마크 제이콥스가 25살의 젊은 나이로 ‘패리 앨리스’ 여성복 디자인을 맡게 되었을 때 톰 포드가 그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스튜디오 54 클럽 죽돌이였던 두 사람이 10여 년 후에 한 명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한 명은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패션계의 전설을 써내려 갈 것이라고 누가 과연 예상이나 했을까. 무엇보다 먼저 ‘구찌’의 대반전을 일으킨 것은 톰 포드였다. 그는 어떻게 뉴욕에서 이탈리아로 가게 된 것일까. 잘 생긴 디자이너의 머리도, 판단력도 좋았던 전설의 시작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자.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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