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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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77 - 발렌티노 (Valentino)

2015-03-11 오후 9:03:15





이탈리아만큼 각 지방의 작은 도시들까지도 세계 관광객의 주요 목적지에 오르내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것은 작지만 하나의 온전한 국가였던 도시 국가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와 함께 현대에까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140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기에 존재했던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나폴리 왕국, 그리고 교황령 국가였던 로마의 출현은 중세 이후의 서유럽사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이탈리아는 이러한 도시 국가들의 영향에 따라 북부에 속한 밀라노, 중부에 있는 로마와 피렌체, 남부의 나폴리 등으로 지역색이 크게 달라지는데, 그것이 이탈리아 출신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칠리아 출신으로 남부 이탈리아의 정서를 패션에 녹여내는 ‘돌체 앤 가바나’와 북부에 위치한 밀라노의 세련된 도시 감성과 이탈리아의 다양한 문화를 함께 선보이는 ‘프라다’와 ‘아르마니’가 이탈리아의 남, 북 지역의 특성을 드러낸 브랜드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정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수인 피렌체와 수도인 로마는 어쩐지 패션의 도시로써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알고보면 유구한 이탈리아 전통 문화의 묵직한 무게를 잡으며 밀라노 컬렉션을 풍성하게 만들어 온 대다수의 브랜드들은 피렌체와 로마에 적을 두고 있다. 이탈리아의 가죽 제품 하면 떠오르는 ‘구찌’와 ‘페라가모’, 화려하고 매력적인 프린트가 특징인 ‘에밀리오 푸치’와 ‘로베르토 까발리’는 피렌체에, 혁신적인 모피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펜디’, 수제 남성용 정장을 만드는 ‘브리오니’, 그리고 ‘발렌티노’가 바로 로마에 본사를 두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났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로마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유적이 현대인의 삶과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기원전 8세기부터 1000여년을 이어온 로마 제국이 붕괴되면서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로 옮겨가고, 이탈리아 반도에 명맥을 유지하던 서로마마저 476년 멸망하면서 이후 1000여 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이탈리아 반도는 다양한 이민족들이 침략하고 물러 났다. 고트족, 반달족 등의 게르만 부족뿐만 아니라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 노르만, 스페인, 아랍 등의 침입을 받았다. 중세 시대이자 암흑기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는 십자군 전쟁으로 아랍의 문화와 물품들이 이탈리아 각 도시로 유입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신이 아닌 인간이 세상의 척도가 되는 인본주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끝나게 된다. 

고대 로마의 화려했던 전성기뿐만 아니라 이렇게 어두웠던 중세의 역사까지도 품고 있는 로마는 그 자체로 예술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제공한다. 각 시대에 따라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넘나들며 표현된 다양한 양식의 조각, 회화, 건축, 그리고 그 표면에 장식되는 온갖 부조들까지, 박물관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여겨진다. 

피렌체 또한 예술의 도시를 논할 때 빠지면 섭섭한 곳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태동한 도시이자 상업의 도시로 예술이 화려하게 꽃피운 곳이다. 피렌체의 막강한 상인 조합과 진취적인 자본가 계급의 후원을 받아 많은 예술 작품과 방대한 건축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피렌체는 세력이 강했던 주변의 피사, 시에나, 루카와 같은 다른 토스카나 지방 도시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 이후로 1200년대에 이르러서 금융과 옷감 직조 등의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1252년경에는 경제 성장에 힘입어 ‘플로린’이라는 금화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이 금화는 금세 유럽 전 지역에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고, 피렌체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1200년대 후반에는 파리, 런던, 밀라노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되었다. 이처럼 도시가 커지자 건축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지금과 같은 피렌체의 도시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피렌체의 경제 활동과 정치 활동은 모두 길드가 운영했다. 길드는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일은 달라도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것으로, 엄격한 규범 아래에서 일의 허가와 활동의 질서를 관장했다. 피렌체에서 7개의 길드가 도시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는데, 상인, 모직, 환전, 비단을 비롯한 의사와 약사, 모피, 판사와 공증인 길드는 고위층 자리에 대한 우선권이 있을만큼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다. 이 중 패션과 관련된 모직, 비단, 모피 길드들은 오늘날까지도 오랜 장인정신을 가진 공방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이탈리아 패션을 지탱해 주고 있다. 





‘발렌티노’의 듀오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춀리는 이 역사적인 도시 피렌체와 로마를 통해 그 인연을 시작했고 이어갔다. 20대였던 두 젊은이가 처음 만나 서로의 패션관과 사진, 영화 등 예술관에 대한 생각을 교감하게 된 곳이 꽃의 도시 피렌체였으며, 두 사람이 함께 커리어를 시작했던 곳은 바로 로마에 위치한 ‘펜디’와 ‘발렌티노’였다.


밀라노가 아닌 피렌체와 로마에서 패션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두 디자이너의 성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분명 역사와 예술가들의 장인정신, 오랜 역사적 유물들에서 매력을 느낄 것이다. 고전에서 방향을 찾는 것이 결국은 새로운 해결책이자 미래라는 것을 공감하는 사이일 것이다. 그들의 최근 작업들이 고대 그리스 회화에서 영감을 얻거나 고대 로마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활용했다는 점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장인 공방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줄 파트너들이다.


듀오 디자이너는 지난 5년간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통을 존중하면서 ‘발렌티노’ 세계관을 변화시킨 일이라고 밝혔다. 사실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이탈리아의 전통 유산을 직접적으로 활용한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아름다움 중에서 ‘우아함’이라는 속성을 뽑아내 수백, 수천 가지의 의상으로 풀어냈을 뿐이다. 그러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춀리는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의 문화 유산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탈리아로의 여행만큼이나 환호성을 지르며 바라보게 된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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