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잊고 사는 세상의 진리가 있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의 제시로 변하기도 한다. 새로운 관점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쉬쉬하던 부당함이나 이름 지어지지 않던 불편함, 지금까지 당연히 그래왔던 것에 대한 의문 등에서 생겨난다.
패션도 마찬가지로 끊임 없이 변화한다. 유행은 매 시즌 새롭게 나타나지만,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헤게모니의 변화는 아주 느리게 일어난다. 패션계는 유독 ‘남과 다름’의 가치를 높이 산다. 그것이 새로움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과 다름으로 새로운 유행,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패션계에도 물론 철옹성처럼 굳건한 헤게모니들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모델들에 대한 인식이다. 글래머러스한가, 날씬한가, 마른가 하는 모델의 체형에 대한 선호도 변화의 문제가 아니다.
티 없이 젊은 백인 여성만이 모델로 적절하다는 더 큰 헤게모니가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패션 산업이 생겨난 이후로 백인 모델로만 채워졌던 패션쇼 무대와 잡지 표지, 화보 등에 흑인이나 아시아인 등의 다양한 유색인종이 등장하고 그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지기까지 거의 5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했다. 현대적 개념의 패션 산업이 탄생한 곳이 유럽과 미국 등의 서양이니 처음에는 백인이 모델인 것이 당연했다. 역사적으로도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복 국가와 식민지 국가의 차별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어느 국가, 민족이 다른 국가나 민족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차별하는 것은 거의 사라졌지만, 장애인, 이민자, 동성애자 등의 비주류에 대한 차별 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심지어는 과체중이나 저체중인 사람에 대한 외향적인 차별도 우리 사회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4대 컬렉션의 영향력이 전세계적이며 동시대적인 만큼 좀 더 다양한 모습의 모델들을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하는데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낯선 것에 대해 불편함, 불쾌감을 느끼는데, 그 아래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자리잡기 때문이다. 비주류라 불리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보이고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된다면 차별도 사라지지 않을까.
최근 패션쇼에 과체중의 여성, 백반증이 있는 모델, 목발을 짚고 나오는 모델, 동성애임을 암시하는 제스처 등이 아주 드물지만 조금씩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비주류에 대한 애정을 보여온 디자이너 장 폴 고띠에의 프레타 포르테 브랜드의 철수가 아쉽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