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의 아크네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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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네 스튜디오 (ACNE STUDIOS)

2014-11-06 오후 6:44:37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63








21세기 들어 세계 패션시장을 제패한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H&M’은 의외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100km가량 떨어진 공업도시 베스테로스에서 1948년 여성의류를 제조해 판매까지 하는 전문업체 ‘헨네스(Hennes)’는 20년 후인 1968년 스톡홀름의 ‘마우리츠(Mauritz)’라는 사냥용품 업체를 인수하여 헨네스 마우리츠, 즉 지금의 ‘H&M’이 되었다.

‘H&M’은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의류 기획, 디자인, 생산에서 유통, 판매까지 일원화하고, 백화점이 아닌 대형 직영매장에서 판매하여 비용을 절감시켰다. 무엇보다 고객의 수요나 시장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으로 21세기 빨라진 유행 변화 주기를 즉각 반영할 수 있어, 현재 전세계 40여 개 국에 23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초대형 패션 브랜드로 급성장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편적인 유행 제품을 공급하는 ‘H&M’을 제외하면, ‘칩먼데이’ ‘누디진’ ‘아크네’까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스웨덴 브랜드들은 대부분 청바지로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웨덴과 청바지? 둘의 연관성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스웨덴 청바지 브랜드로 이름을 알린 ‘칩먼데이’를 설립했던 외르얀 안데르손의 주장에 따르면 세 브랜드의 설립자 모두 1990년대에 ‘JC (Jeans Company)’라는 스웨덴의 데님 브랜드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 시절, 청바지는 미국 브랜드 전성시대였다. ‘리바이스’ ‘리’ ‘렝글러’ 같은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님 브랜드부터 ‘캘빈 클라인’이나 ‘게스’ 같은 도시적인 분위기까지 미국산 데님 브랜드는 전세계 젊은이들의 옷장에 스며들어가 있었다.


 







21세기가 되자 이번에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프리미엄 진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몇 십 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진은 새로운 욕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높은 가격은 많은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차별화를 줄 수 있는 방편이었다.

당시 편집숍을 운영하던 외르얀은 고객들의 이러한 불만을 듣고 합리적인 가격의 멋진 디자인, 데님의 역사를 담은 튼튼한 청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직접 생산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스웨덴의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렇게 ‘칩먼데이’를 선보였고, 이어서 스웨덴산 청바지 브랜드들이 줄줄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 한 가지 더 가설을 더해보고자 한다. 혹시 스웨덴의 자연 환경이 다양한 청바지 브랜드들이 만들어지는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을까?  

‘리바이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각광 받은 이유는, 무겁고 거친 짐을 끊임없이 옮겨야 했던 항구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사막지대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튼튼하고 질긴 성질, 즉 오래도록 헤지지 않고 입을 수 있어 실용성을 만족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청바지의 본질은 천혜의 환경에서 느린 삶을 즐기며 아웃도어 활동이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이어 받아 발전시키기에 좋은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청바지와 점퍼를 입고 회사에 간다는 사회적 환경까지 더해서 말이다.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도 청바지에서 시작하여 토털 브랜드로 확장하게 된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이다. 눈과 호수, 드넓은 숲, 긴 겨울과 짧은 여름, 백야 등의 독특한 자연 환경을 가진 이 북유럽의 패션 브랜드에는 당연히 이러한 기후의 영향을 받은 패션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우선 ‘아크네 스튜디오’의 시작을 살펴보자. 아크네(Acne), 여드름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물론 그 표면적 의미를 브랜드 명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1996년 스톡홀름의 원대한 야망을 품은 네 명의 젊은이들은 그래픽 디자인과 영상, 광고, 컨설팅을 아우르는 다양한 창조 활동을 하는 창작 집단을 꿈꾸며, ACNE(Ambition to Create Novel Expression)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어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드름이라는 의미는 최근 급성장한 패션 브랜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뒤에 STUDIOS를 붙이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환기 시키려 하고 있다. 

네 명중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요니 요한슨은 원래 스웨덴 북부도시에서 음악을 하던 젊은이였다. 단지 네 명 중에 가장 패셔너블하며 컴퓨터 작업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는 패션 분야를 맡게 되었고, 1997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빨간 스티치가 들어간 청바지 100벌을 만들어 스톡홀름의 감각 있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스키니 라인이었던 이 청바지는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팔 바지와 힙합 스타일의 데님을 입을 때 등장하며 그 시대를 규정하는 새로운 실루엣으로 등극했다. 특히 ‘아크네’의 데님을 21세기 패션 아이콘 케이트 모스나 시에나 밀러가 입으면서 뉴욕의 오프닝 세레모니와 파리 꼴레뜨 등 세계적인 편집매장에서 ‘아크네’의 데님을 판매하게 된 것도 그들에게 큰 행운으로 작용했다.

요니 요한슨은 야망 있는 젊은이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주목 받은 ‘아크네’의 긴 미래를 위해 2000년 초반 전문 경영인을 합류시키고, 나머지 멤버들의 지분을 사들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창조성을 내보이고 싶었던 처음의 바람대로 요니 요한슨은 ‘아크네’와 아티스트와의 협업 가구를 선보이거나, 데님을 이용한 캡슐 컬렉션, 아크네 페이퍼라는 브랜드 매거진 발간 등 꾸준히 창조 집단으로서의 ‘아크네’를 디자인계에 알렸다. 그리고 2010년 마침내 런던 컬렉션 입성, 그리고 2012년 파리 컬렉션까지 진출하며 패션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비록 시작은 데님이었지만, ‘아크네’ 컬렉션에는 앞서 말한 북유럽의 혹독한 자연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긴 겨울의 하얀 눈, 햇살이 반짝이며 거울처럼 자연을 비춰내는 호수, 춥지만 야외 활동을 위한 넉넉한 실루엣의 아웃도어 의상, 북유럽의 사우나를 연상시키는 의상 등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크네’의 패션이 신드롬을 일으킨 데에는 이전까지 보지 못한 신선한 실루엣이나 라인을 선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스웨덴식 사고방식인 라곰과 얀테의 법칙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학수 전문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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