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으로 다시 태어난 섬유산업 강국 스위스 - 아크리스 (Ak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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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55

2014-09-03 오후 3:31:59




 




유럽은 종교개혁을 통해 두 부류의 나라로 나뉘게 되었다. 구교를 믿는 나라와 신교를 믿는 나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게 그거 아닌가 싶겠지만, 조금만 파고들어가면 각 나라마다 패션의 특성이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교를 선택했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패션은 화려하다. 화려할 뿐 아니라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예술은 일상이다.

반면에 신교들을 탄압했던 프랑스에서 탈출했던 위그노(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들)들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은 도덕적인 순수성을 추구하고 낭비와 사치를 배격하고, 근면을 강조하였던 칼뱅의 가르침에 따랐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의 패션은 실용성, 검소함, 절제의 미가 특징이다.

종교개혁은 중세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일괄적으로 믿어야 했던 가톨릭(구교)에 반기를 들었던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 종교 개혁으로 각 국가는 구교와 신교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 영향력은 현대의 각 유럽 국가의 패션까지도 미치고 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티켓인 면죄부를 팔 만큼 타락했던 당시의 구교, 가톨릭을 개혁하자는 것이 종교개혁의 골자이다. 특히 스위스에서 나타난 유명한 종교 개혁가가 둘 있는데, 서쪽 제네바 지방의 장 칼뱅과 동쪽 취리히 지방의 울리히 츠빙글리다.

시기적으로 먼저 나타난 츠빙글리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종교 개혁가였다. 그는 허례허식이 가득한 가톨릭을 배척하고자 했는데, 이에 찬성했던 스위스 사람들도 갈수록 츠빙글리의 요구가 심해지자 두 편으로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

츠빙글리는 여관업이나 직업 군인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니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였다. 그러나 알프스 중턱에 자리 잡은 스위스의 일부 지방은 산악 지방이라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알프스 산맥을 넘어다니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여관업이나 식당을 경영할 수 밖에 없었다.

또는 돈을 받고 전쟁에 나가 대신 싸우던 용병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스위스는 산악 지방의 구교파와 취리히 등의 평지 지방의 신교파로 나뉘어 전쟁을 하게 된다. 이 때 먹고 사는 문제로 궁지에 몰린 구교파가 승리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패션적으로는 신교의 특징이 더 강한 스위스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후에 나타난 장 칼뱅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장 칼뱅은 마틴 루터의 영향을 받아 열렬한 신교도가 되었으나 프랑스에서 신교도를 몹시 탄압하여 신교가 많은 스위스로 가 활동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거쳐 그는 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인이자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 온건한 루터와 과격했던 츠빙글리를 절충한 칼뱅의 신교는 온 유럽에 크게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종교와 정치뿐 아니라 경제 문제에도 손을 댔다. 그는 스위스가 농업이 아니라 공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투성이인 스위스에서 농사에 의지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돈 받고 전쟁에 싸우러 가는 용병들을 공업에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칼뱅의 명령으로 제네바 지방에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섬유 공업과 시계 공업이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 위그노들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미국 등지로 대탈출을 감행한다. 네덜란드로 탈출한 위그노가 6만5000여명, 독일 3만여명, 스위스 2만2000여명 등이었고, 프랑스에 남겨진 위그노의 수는 1500명도 되지 않았다.

위그노는 방직, 제철, 염료, 화학 등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스위스로 탈출한 위그노들은 정밀기술 산업을 가지고 와 샤프하우젠과 쥐라 지방에 정착해 그곳에서 시계를 만들었다.

스위스인들은 위그노들이 갖고 있는 시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17세기가 되자 주네브에 시계를 거래하는 조합이 탄생하고, 1845년부터는 시계산업이 기계화되면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다. 이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계를 유럽의 각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의 섬유 산업 또한 이렇게 이주한 위그노에 의해 발전해 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19세기에 또 한번의 도약을 하게 된다. 앞서 영국으로 이주한 위그노들은 증기기관의 기반 기술과 면방직 공업의 기틀을 마련해 주어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었다.

스위스는 영국에 양털 또는 옷감, 시계 등을 수출하고 면화와 같은 원료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으로 스위스에서 가장 큰 공업인 방직 공업이 영국과의 거래가 끊겨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영국산 기계를 수입해 쓰던 스위스 인들은 이로 인해 스스로 직접 기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과거 영국산 기계에 의존하던 스위스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나면서 영국에 갈 수 없자 스위스에 별도로 기기제작 공장을 세웠다. 방적기, 방직기 개발에 성공하고, 자수 기계 또한 점차 발전하였으며, 염색 산업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스위스 섬유 산업의 간략한 전말이다.

이렇듯 16세기 종교개혁과 장 칼뱅으로부터 시작된 스위스의 섬유 산업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아크리스’가 스위스의 패션 브랜드로서 그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크리스’의 FW 컬렉션에는 빠지지 않고 칼뱅의 사제복을 연상시키는 의상들이 등장한다. 검정색으로는 검소함을 강조하지만 모피와 가죽 등의 최고급 소재를 사용하여 척박했던 스위스에 부를 가져다 준 칼뱅을 기리기 위한 의식처럼 보인다.



 









고학수 전문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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