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성과 실용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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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52

2014-08-07 오전 10:17:06

빅터 앤 롤프 (Victor&Rolf)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시대였다. 16세기에 들어와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때에 근대 자본주의에 눈을 뜨게 된 시민들이 우상파괴 폭동사건과 네덜란드 종교개혁 등의 끈질긴 저항으로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1588년 공화국(국호는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정치와 종교가 안정이 되고 무역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황금기에 접어든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문화 강국인 벨기에의 앤트워프 지방에서 가톨릭 개종에 반대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가능케 했는데, 이주민 중에는 은행가와 예술인이 많았다. 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의 무역업을 바탕으로 상인 시민계급이 대두된 배경이다.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주식회사인 연합 동인도 회사(VOC)를 설립하여 세계 제일의 무역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주주들의 투자를 받아서 설립된 주식회사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남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에 인도네시아 등의 방대한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북미 대륙에도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을 세웠다.

오세아니아로 간 상인들은 뉴질랜드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네덜란드 인들이 끊임없이 외부 세계로 나간 이유는 네덜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작고, 자원도 부족하고 척박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프로테스탄트의 나라, 그 중에서도 칼벵교를 채택한 나라답게 네덜란드 사회는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한다.

예로부터 ‘부’를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칼뱅파는 주로 검은색 의상을 입었다. ‘빅터 앤 롤프’가 데뷔 무렵 선보인 엄숙하고 종교적인 이미지의 컬렉션은 이런 영향인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옷차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집이나 자동차를 살 때도 겉모습보다 실용적인 면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빅터 앤 롤프가 파리로 간 이유는 네덜란드에서는 패션으로 크게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의 황금기에 미술사적으로 알아둘 이가 바로 렘브란트이다. 개신교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에는 종교나 역사, 신화 주제의 대작을 주문할 교회나 궁정이 없었다. 미술품의 주요 수요자는 네덜란드의 시민, 즉 상인을 중심으로 한 중산 계급이었다.

활동 초기의 렘브란트는 이러한 고객의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렘브란트는 그때까지 그려지던 왕이나 귀족의 위세 초상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을 만들어 냈다. 즉, 새로운 계급, 부와 겸양을 갖춘 프로테스탄트 부르주아의 초상을 창조해 낸 것이다. (사진 1)
이 네덜란드 초상화의 특징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다른 귀족들의 초상화와 다르게 검약한 프로테스탄트를 표현하기 위해 흑,백의 의상을 입고 있으며, 화려한 장신구가 배제되어 있다.

‘빅터 앤 롤프’의 컬렉션에서도 흑백의 의상이 자주 등장하며, 귀고리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는 거의 매치 되지 않는다. 그것은 빅터 앤 롤프의 의상의 특징과도 관계가 있는데, 극단적으로 과장된 실루엣이나 겹겹이 겹쳐 입는 레이어링 스타일, 비대칭 라인 등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복잡한 의상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시각적 강약을 주기 위해서라고 판단된다.

한편 빅터 앤 롤프는 색을 좀 독특하게 쓴다. 때에 따라서는 색을 잘 쓰지 못하는 디자이너라고도 보이는데, 그것은 형태와도 관련이 있다. 워낙 옷에 레이어링 된 부분이 많고 디테일을 중시하다 보니, 그러한 부분들을 강조하기 위해 색도 대비가 강하게 사용하여 이질감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흑백의 대비에 색상, 명암 대비까지 들어가 무난해 보이기 보다는 각각의 색이 튀어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사진 2)





매번 완전히 다른 주제로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빅터 앤 롤프만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을만한 아이콘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리본과 장미 장식이다. (사진 3, 4)







빅터 앤 롤프는 네덜란드만의 전통을 패션에 녹여내기 보다는 글로벌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어느 문명권에서나 보편적으로 여성성을 나타낼 수 있는 장미와 리본을 선택해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1차원적이라고 할 만큼 장미와 리본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조적으로도, 새로운 재료로도 표현해내며 계속해서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빅터 앤 롤프의 강점은 ‘어린 아이 같은 무한한 상상력과 실현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5)








튤 소재의 드레스를 전기톱으로 잘라낸다거나, 대리석 같이 딱딱한 조각상을 부드러운 천으로 거꾸로 표현 한다던가, 겹겹이 겹쳐진 과장 된 실루엣의 의상들, 얼굴을 새까맣게, 또는 새빨갛게 칠한 모델들을 등장시키는 컬렉션 등 어른이라면 어쩐지 타인의 잣대로 고개를 저을 아이디어들을 그들은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낸다.

옷뿐 아니라 화려한 퍼포먼스도 빅터 앤 롤프를 규정하는 아이덴티티인데, 그들의 작업 방식은 가장 먼저 다가오는 시즌의 주제로 아이디어 게임을 시작하고, 그 다음 어떤 방식으로 쇼를 보여줄 것인가, 즉 퍼포먼스를 생각하며, 이 아이디어와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하는가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것은 단순하게 표현의 자유, 배설의 욕구에서 벗어나 패션계의 문제점 등을 직, 간접적으로 조롱하고 풍자하는 주제들로 패션쇼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빅터 앤 롤프의 오뜨 꾸뛰르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1992년 갓 대학교를 졸업했던 그들이 무작정 파리로 와 컬렉션이 아닌 전시를 통해 언론과 기자들에게 자신들을 노출시키고, 오뜨 꾸뛰르를 통해 기술적 지위를 확보하고, 이후 기성복 컬렉션 런칭, 향수 사업, 그리고 H&M으로 인한 대중성 확보까지의 그들이 거쳐온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단순히 예술성만으로 자신들의 패션세계를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특유의 실용성을 중시하는 상인정신이 함께 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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