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된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
가+
가-
버버리 (Burberry)

2014-06-04 오후 6:57:46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 46


 




 



1856년 작은 옷가게로부터 시작된 브랜드 ‘버버리’는 무려 15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세계적인 명품 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이 ‘버버리’와 거의 비슷한 트렌치 코트로 포지셔닝되어 있는 브랜드가 있었다. 바로 ‘아쿠아스큐텀(Aquascutum)’이다.


사실 역사로 따지면 ‘아쿠아스큐텀’이 ‘버버리’보다 3년 더 일찍 시작되었으며, 라틴어로 물(Aqua)과 방패(Scutum)라는 뜻으로 즉, ‘방수원단’을 브랜드 이름으로 정할 만큼 ‘버버리’와 라이벌 관계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컬렉션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왜 비슷한 역사와 성장 배경을 가진 두 브랜드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경영적 차원에서 ‘아쿠아스큐텀’은 실적을 내지 못했고, 반면에 ‘버버리’는 같은 시기에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분석이다. 특히 확대된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두 브랜드의 성패를 갈랐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은 경영진의 문제일까? 디자이너의 역량 차이였을까?


1990년대 후반 까지만 해도 두 브랜드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특히 ‘버버리’의 이미지는 겉잡을 수 없이 쇠락해 가고 있었다. 두 브랜드는 안감의 무늬 차이만 있을 뿐 중후한 멋을 가진 비슷한 베이지 색의 트렌치코트로 과거의 이미지에 계속 묻혀있었다.


‘버버리’의 이미지는 1940년대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과 정재계 인사들에 의해 만들어져 과거를 그리워하는 중, 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화된 브랜드로 정착되었다.


많은 명품 브랜드가 그랬듯이 무분별한 라이센싱 사업과 ‘버버리’를 판매 하는 매장의 증가, 수많은 가짜 상품들까지 ‘버버리’의 추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등장한 ‘차브족’ 때문에 ‘버버리’의 브랜드 이미지는 오히려 더 떨어져 갔다. 차브족이란 큼직하고 번쩍이는 금속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힙합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버버리’의 체크모자나 ‘프라다’의 운동화처럼 한 눈에 봐도 브랜드 제품 로고나 패턴이 들어가 과시할 수 있는 비싼 명품 브랜드를 입었다.


마치 우리나라 청소년 사이에서 한동안 등골브레이커로 유행했던 값비싼 등산복같이, ‘버버리’ 체크무늬 모자는 그들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차브족의 패션은 건달 패션으로 낙인 찍혀 영국의 클럽과 펍에서는 “‘버버리’ 야구 모자 쓴 사람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걸릴 정도였다. 당연히 고급 브랜드 입장에서도 차브족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키기 때문에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소비층이었다.


1998년 ‘버버리’는 개혁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인 삭스핍스에비뉴의 사장이었던 로즈 마리 브라보를 새로운 CEO로 영입했고, 그녀는 수 십 년간 고인 물처럼 안주해있던 임원들을 싹 갈아 버린다. 그녀가 처음 ‘버버리’에서 했던 일은 이미지 쇄신이었다.


가장 빠르고 효과 좋은 방법은 광고였다. ‘랄프 로렌’이 광고를 통해 대중에게 미국의 이상적인 상류층 가족 이미지를 각인 시켰듯이 로즈 마리 브라보도 이 전략을 사용했다. 그녀는 노후 된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스텔라 테넌트나 케이트 모스 같은 영국 출신의 유명 모델과 세계적인 패션 사진가를 기용해 ‘버버리’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 브랜드 로고의 변화도 한 몫 했다. 과거에 사용하던 Burberry’s에서 s를 빼고 대문자 BURBERRY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버버리’가 지금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지위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역할이 컸다. ‘버버리’의 가장 최고급 라인이자 컬렉션 라인인 ‘버버리 프로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이제는 버버리의 CEO까지 겸하게 된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어떤 인물인가.


1971년 영국 출신으로 아직 우리나라 나이로 44살의 젊은 나이에 최고 경영자가 된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마칠 즈음 ‘도나 카란’에 발탁되어 뉴욕으로 건너가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에는 밀라노의 ‘구찌’에서 경험을 쌓았다.


아마도 이 두 브랜드에서의 경험은 그가 디자인뿐 아니라 경영적인 면도 살필 줄 아는 디자이너로 크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뉴욕의 브랜드들은 상업성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가 ‘구찌’에 있을 1990년대 후반 당시가 바로 톰 포드가 ‘구찌’를 기사회생 시키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를 명품 브랜드 반열로 올리기 위해서는 스타 디자이너의 중요성과, 디자이너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상업성을 적절히 조화 시켜야 한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그는 ‘버버리’의 부름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위와 같은 경험이 디자인에 어떻게 드러났는지 한번 살펴보자. ‘아쿠아스큐텀’의 마지막 컬렉션이 된 2012년의 SS 시즌과 FW 시즌의 컬렉션을 ‘버버리’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쿠아스큐텀’의 SS 컬렉션은 비닐 소재를 이용하고 검은 선을 디자인적 요소로 사용했다. FW 컬렉션은 각지고 경직된 어깨, 올리브 그린의 사용으로 밀리터리룩의 향기가 다소 난다. 그러나 옷 자체만 보아서는 트렌치코트를 만들던 브랜드라는 것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사실 옷 자체만으로 보면 디자인의 감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버버리’는 트렌치코트를 기본으로 하고, 다양한 소재, 색, 장식, 실루엣 등의 변화를 주었다. 트렌치코트라는 브랜드의 유산을 살리면서 그 안에서 오히려 무한대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디자인이다. 때때로 영국 귀족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소품을 사용하여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영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품은 브랜드라는 것을 소유하면서도 새롭고 혁신적인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전까지 명품 브랜드에서 경영인과 디자이너의 역할 분담은 확실했다. 하지만 일개 디자이너로 간택 되었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13년 만에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는 패션쇼를 선보인 이후 다음 컬렉션을 구상하기 전에 실제 판매된 디자인에 대한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했다고 한다. 그는 연봉 170억 원이 넘는 사나이가 되었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