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44

소위 명품 브랜드로 분류되는 ‘루이뷔통’, ‘에르메스’, ‘구찌’는 20세기 초 여행의 확산과 함께 번성한 역사라는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튼튼한 가죽을 바탕으로 마구를 만들었던 이 브랜드들은 자동차가 등장하자 여행용 트렁크와 가방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여행은 여유 있는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여가였으므로, 자연스럽게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이 ‘여행’이라는 주제는 현재 명품 브랜드의 생존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당위성을 제공한다. 매 시즌 발표하는 컬렉션에서 아프리카나 동유럽, 북유럽, 심지어 아시아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발표하더라도, 헤리티지, 브랜드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립 초기부터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을 함께 했다는 역사를 증명할 수 있다.
‘버버리’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여행과는 조금 비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탐험 정신’이다.
한가로운 여행보다는 어딘가 개척정신이 더 느껴지는 ‘탐험’이라는 주제는 ‘버버리’가 다른 명품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시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20세기 초 극한 지역으로 떠난 탐험가들이나 새롭게 등장한 운송수단인 비행기로 바다를 건넌 비행사들과 함께 사진에 찍힌 ‘버버리’의 제품들은 ‘버버리’의 명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버버리’는 개버딘이라는 소재의 개발로 탄생한 브랜드이다. 가벼우면서도 방수성, 통기성, 보온성을 갖춘 이 개버딘 소재의 발명은 20세기의 고어텍스에 비견될 만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소재들은 사람들의 야외 활동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명품 브랜드 중 가장 재빨리 IT 기술을 패션과 접목한 것으로 이름난 ‘버버리’인 만큼 홈페이지도 잘 구축되어 있는데, 홈페이지를 통해 ‘버버리’의 역사와 유산들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브랜드가 만들어진 1856년부터 세계 곳곳에 설립된 최초의 ‘버버리’ 매장들 사진들을 보면 브랜드의 역사성이란 얼마나 큰 힘을 가진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흑백 사진으로 된 많은 탐험가들의 모습이다. 1897년, 북극권 지도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탐험가 잭슨 대령의 모습은 굉장히 낯선 복장을 하고 있다.
두리뭉실한 실루엣의 겉옷 아래로 수많은 옷과 털 제품을 껴입은 모습이다. 다만 가장 겉에 입은 외투는 개버딘으로 만들어진 옷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20세기 초반 극지방으로의 탐험 역사에서 ‘버버리’는 빠질 수 없는 파트너였다. 북극과 남극 탐험을 한 아문센과 그 탐험대에게 ‘버버리’는 옷과 텐트를 지원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남극 대륙으로 횡단을 떠난 어니스트 섀클턴 경도 ‘버버리’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사진이 남아있다.
개버딘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극한의 추위와 맞선 탐험가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이후 동계 올림픽을 위한 스키복이나 썰매를 탈 때 입는 스포츠웨어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천연소재인 면으로 만들어진 스키복의 질감과 디자인은 현재 바삭거리는 질감과 화려한 색감의 스키복에 익숙한 우리에게 너무도 낯설면서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또 하나 ‘버버리’ 초기의 역사에서 많이 보이는 것은 말, 모터사이클, 비행기 등 탈 것들과 함께한 ‘버버리’ 제품의 모습이다. 오토바이를 타본 사람이라면 온 몸으로 맞서야 하는 강력한 바람의 무서움을 알 것이다.
바람뿐인가, 비나 눈이라도 오면 자연 앞에 사람은 한없이 작아진다. 1918년에 ‘버버리’는 이미 모터바이크 재킷을 선보였는데, 물론 지금의 몸에 꼭 맞는 가죽으로 된 바이크 재킷과는 완전히 다른 펑퍼짐한 코트 형태였다.
오토바이 이전에 말을 타는 사람들에게도 기후는 무서운 존재였다. 특히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한 영국에서 기마경찰이 ‘버버리’ 제품을 공식 복장으로 지정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기마경찰뿐 아니다.
1926년 ‘버버리’의 그레이트 코트라 불린 망토 스타일의 코트는 왕실과 근위대 장교들의 정규 복장으로 지정된다.
1890년대 초 라이트 형제로부터 시작된 비행기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점차 발전을 거듭한다. 1919년, 비행기를 조종하여 최초로 72시간만에 무착륙 대서양 횡단 비행을 마친 존 앨콕 대위와 아서 휘튼 브라운 중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호주까지 단독 비행에 성공한 버트 힝클러 또한 ‘버버리’의 비행복을 입었다.
놀라운 점은 초기 비행기는 조종석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형태였는데, 이들은 ‘버버리’에서 제작한 비행복을 입고 체온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극한 지방의 기후에 맞선 탐험가, 대서양과 태평양 등을 비행기로 횡단한 최초의 비행가들, 또는 말이나 모터사이클 등 일상에서 외부 환경에 장시간 노출된 활동이 많은 군인이나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역사에 남은 ‘버버리’의 초기 모습들은 개버딘이라는 직물이 당시 외부 환경에 대한 방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현재 ‘버버리’의 컬렉션에서 하나의 큰 유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개버딘이라는 소재를 강조하기 보다는 다양한 탐험가적 정신, 아웃웨어로써 어느 곳에서든 당신의 외부 활동을 지원한다는 것을 디자인으로 은연 중에 드러낸다.
그러한 방법으로 아프리카로의 여행이나 군복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가죽 바이커 재킷과 결합된 트렌치 코트, 복고풍의 에비에이터 스타일의 재킷 등의 주제를 선보였다.
하지만 ‘버버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1990년대까지 ‘버버리’는 너무 오래되어 진부해진 트렌치 코트 디자인으로 그 브랜드의 명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버버리’의 부흥을 이끈 것은 현재 CCO이자 CEO로 등극한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역할이 컸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