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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로렌 (Ralph Lauren)

2014-04-25 오후 3:52:03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40


 



 



‘랄프 로렌’ 제국이 세워진지 반세기가 다 되어 간다. 넥타이라는 단일 품목으로 시작 된 ‘랄프 로렌’은 이후 ‘폴로’라는 브랜드명과 함께 ‘폴로 바이 랄프 로렌’으로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을 론칭했다.

점차 스포츠웨어, 안경, 신발, 속옷, 가죽 제품, 향수, 데님, 수영복, 아동복, 홈 컬렉션까지 그 분야를 확장해갔으며, 다양한 가격대의 하위 브랜드들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랄프 로렌’에 대한 환상과 욕망을 실현 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디자이너에게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랄프 로렌’은 위대한 사업가로 추앙 받기도, 또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너무나 상업적인 패션디자이너로 무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섞여 만들어진 사회인 미국에서 ‘랄프 로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선호되고 사랑 받는 것을 성공하지 못한 디자이너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랄프 로렌’이 국민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랄프 로렌’에도 미국의 위대한 유산이 녹아 있는 것일까?

완전한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보여지는 랄프 로렌의 본명은 랄프 리프시츠(Lifshitz)로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WASP는 현대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전까지는 정계·재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까지 미국 200대 기업의 대부분이 이들 소유였으며 미국의 정치 권력도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이들의 독점체제로 이어졌다.

그들은 보수성이 강하며 예의범절을 중요시하고 엄격한 교육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클럽 활동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다른 인종과 달리 같은 백인이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에 대해 더 배타적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대공황으로 이들 출신 대자본가들이 무너짐에 따라 유대인 등 신진세력에 의해 재계 판도가 바뀌는 현상이 일어났고, 정치에서는 아일랜드계 가톨릭교도인 케네디와 아일랜드계 신교도인 레이건이 집권하게 된다.

그가 태어난 1939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해로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그의 어린 시절도 그리 풍족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교인으로서의 차별도 받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던 어린 랄프의 목표는 경제적 성공이었다.

열등감은 사람을 한없이 주눅들게도 하지만, 반대로 잘 이용하면 인생을 단단하게도 만들어준다. 태생이 WASP가 아니었던 랄프 리프시츠는 이름까지 랄프 로렌으로 바꾸면서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겪은 감정을 고스란히 이후 자신이 만든 브랜드에 녹여냈다.

WASP가 정, 재계의 전통적인 주류라고 해도, 대다수의 미국인을 구성하는 것은 그에 속하지 못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랄프 로렌은 그러한 대중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담동 며느리 룩을 표방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많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 많은 쇼핑몰은 브랜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문화를 아우르려 하기 보다는 표피적인 패션 스타일만, 그것도 진짜가 아닌 이상화 된 이미지만 끊임없이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랄프 로렌은 상류 계층의 문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브랜딩 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꾸미고 프레피 룩을 즐겼던 랄프 로렌은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다. 경영학을 공부했던 그는 패션 관련 판매직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가 실무로 일을 배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1818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유서 깊은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은 ‘브룩스 브라더스’가 현대 복식에 남긴 발자취는 현대 남성복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은 어느 브랜드에서나 볼 수 있는 사선무늬 넥타이나 폴로 경기복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폴로 버튼다운 셔츠, 다림질이 필요 없는 셔츠 등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유산이다. 현재 ‘브룩스 브라더스’의 최고급 라인인 ‘블랙 플리스’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고 있는 톰 브라운을 영입해 디자인을 하고 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브랜드 ‘랄프 로렌’이 그토록 원했던 이미지는 이미 ‘브룩스 브라더스’에 의해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에서부터 정, 재계 인사들이 즐겨 입는다는 ‘브룩스 브라더스’는 실제 WASP를 주 고객층으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랄프 로렌’은 어떻게 ‘브룩스 브라더스’를 뛰어넘는 제국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일까?

랄프 로렌은 WASP의 라이프 스타일과 이미지를 원래 향유하던 계층이 아닌 그 이외의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대중화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확실히 ‘브룩스 브라더스’의 제품들은 ‘랄프 로렌’보다 전통적인 업타운의 격식을 갖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무리 캐주얼한 옷차림에도 셔츠와 가디건을 같이 매치한다.

그에 비해 ‘랄프 로렌’은 뉴욕의 다운타운 스타일뿐 아니라, 카우보이, 인디안, 미국의 농가에서 입을 법한 작업복의 이미지들을 고급스럽고도 자유분방하게 변주하여 컬렉션에서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 스페인, 러시아, 남아메리카 등을 연상케 하는 복식들도 다양하게 가져와 ‘랄프 로렌’화 시켰다.

브룩스 브라더스’의 고급스러운 스타일은 ‘랄프 로렌’이 추구하는 이미지의 한 가지에 불과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이미지까지 품은 것이 ‘랄프 로렌’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숨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브룩스 브라더스’를 거쳐 한 넥타이 제조 업체의 판매원으로 일하게 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좁은 폭의 넥타이가 아닌 넓은 폭에 자수가 들어간 넥타이를 디자인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다. 1967년, 그의 나이 28살 때였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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