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파헤치는 수도사의 이야기이다. 종교가 이성을 지배하던 시대, 모두들 수도사의 연쇄적인 죽음이 요한 계시록의 예언에 따른 죽음이라고 단정할 때 주인공은 곳곳에 남아있는 단서들로 추리를 시작해 나간다.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내용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내용을 수도사들이 번역해내자 그러한 사실을 후세에 전하고 싶지 않았던 늙은 수도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권력과 신으로부터의 절대 복종이 부른 비극임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보다 ‘웃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이었다. 신을 믿게 하기 위해 웃음을 금지한 중세 시대의 세계관은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웃음을 금지 했는가?
‘웃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웃음이 나온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는 것이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 굳이 수도원에 돈을 바치고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의 사람들은 비탄과 슬픔에 빠져있거나 공포에 떨고 있고 감정은 차갑게 식어 있어야만 했다.
웃음이 사라진 것은 패션쇼도 마찬가지다. 불과 90년대 패션쇼만 하더라도 모델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무대를 걸어나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패션쇼가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 시작했을까? 90년대 패션쇼 영상을 살펴보면 카메라 맨들은 모델이 걷는 런웨이 양쪽으로 포진해 있다. 지금처럼 패션쇼 무대가 객석과 구별되기 전에는 모델이 걷는 길과 카메라는 거의 같은 길에 있었던 것이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수퍼 모델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카메라 맨의 플래시 세례를 이끌어 내야 했다.
하지만 컬렉션 북에서 인터넷 사이트로 패션쇼를 볼 수 있는 매체가 바뀌고, 패션쇼 무대가 자본의 개입으로 화려해지고 커지면서 모델은 런웨이 위로, 카메라 맨은 무대 끝 일정한 공간 안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포토그래퍼들이 있던 무대 양쪽은 연예인들이 자리하는 프런트로로 제2의 무대가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카메라 맨이 남자였다.
디자이너들은 젊고 예쁜 모델들이 웃으면 카메라 맨의 시선이 옷이 아닌 모델의 얼굴로 갈 것을 염려했다. 패션쇼의 주제가 무거운 철학적인 내용을 담게 된 것도 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 시선이 가는 것은 본능이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했다. 이를 다시 이용하는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 웃음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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