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양을 막론하고 숫자 3은 수많은 신화에 등장한다. 성서에서의 성부, 성자, 성령으로 3위일체를 말하며, 힌두 신화에는 브라마, 비슈누, 시바의 3대 주신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하늘을, 하데스가 지하 세계를, 포세이돈이 바다를 다스리며 세계를 3 등분하며 다스린다.
동양권에서는 양과 남성을 상징하는 숫자인 1과 음과 여성의 숫자인 2가 조화를 이루는 수로 3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래서 고대부터 청동 세 발솥 정(鼎)은 제사 때 귀하게 쓰였으며, 다리 세 개 달린 까마귀 3족오(三足烏)는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동물이다.
3권분립, 3두정치, 조선시대의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의 3정승 체제에서 알 수 있듯, 정치에서도 3은 중요하게 나타난다. 독점적이거나 양분된 권력보다 좀 더 발전 된 정치 형태로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3이라는 수의 장점은 비단 신화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된다.
패션에서는 어떨까? 모델 3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패션쇼는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3명이 등장하면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0 S/S 시즌 샤넬의 패션쇼가 그랬다. 칼 라거펠트는 맨발로 자유분방하게 등장한 모델들로 하여금 다양한 사랑 방식을 암시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남녀 커플뿐 아니라, 서양에서 레즈비언으로 인정되는 제스처인 여성끼리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은 여성 모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압권은 마치 일부다처제를 암시하는 듯 양팔에 각각 여성 모델을 끼고 나타난 남자 모델이었다.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 세 명의 모델이 등장했을 때의 효과는 2명이 등장할 때보다 극대화 된다. 마치 조금씩 다른 무늬를 하고 시각적 혼란을 주기 위해 얼룩말 무리가 무리 지어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같은 소재면서 색으로 변화를 주거나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는 의상들을 보고 있으면 디자이너의 고민과 즐거움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주에 잠깐 소개했듯이 아르마니의 패션쇼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의상을 입은 두 명의 모델이 짝을 지어 매번 등장한다. 그런데 2-3년 전부터는 빠지지 않고 세 명의 모델을 한꺼번에 등장시킨다.
과거 아르마니를 표현하는 단어가 ‘부드러운 남성, 강인한 여성’, ‘성공한 사람들의 옷차림’ 등이었다면, 최근 그의 컬렉션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동양성’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움’, ‘편안함’이라는 디자인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동양성에 매력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아르마니 컬렉션에서 3명의 모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 또한 3을 신성하게 여긴 동양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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