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남부지역을 여행한 관광객들이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적으로 남는 이미지는 아마도 ‘고딕 대성당’일 것이다.
짧은 기간에 주요 도시를 메뚜기 뛰듯 돌아본 관광객들도 어느 도시에나 대표적으로 서있는 거대한 고딕 성당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만다. 하늘로 높이 솟은 육중한 규모와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장식들, 실내의 고요하면서 엄숙한 분위기는 비단 관광객을 홀릴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유럽인들의 의식에도 깊은 문화적 연대감이 형성한다.
고딕 성당에 관해서는 매력적인 신화가 있다. 남부 유럽을 침략한 튜턴족이 평생을 보낸 고향의 숲을 그대로 본따 뾰족한 첨탑과 높은 기둥의 고딕 성당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어느 문명의 문화든 자연환경에 적응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특히 의, 식, 주는 자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 고딕 성당도 북유럽의 대자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일까?
고딕 양식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지금의 벨기에와 그리 멀지 않은 북프랑스 지역이었다. 12-13세기에 걸쳐 북프랑스의 여러 도시에 고딕 대성당이 차례로 건축되었다.
이보다 약간 앞선 11세기 초, 이곳의 자연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명 ‘숲 대개간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000년경, 이 일대의 자연환경은 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한 숲이었다. 원시림과 평지림은 끝도없이 펼쳐졌다. 평지림은 무섭다. 멀리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걸어도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숲에서는 언제 어디서 나타나 나를 위협하는 존재, 즉 야생동물, 강도, 무법자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다. ‘빨간 망토’를 걸친 공주가 할머니 댁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숲이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헤쳐 나가야 하는 숲들이 사람에게 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다듬어지지 않은 평지의 숲 때문이다. (사진 1)


특히 이 곳의 나무들은 평균 25~45m에 달하는 키다리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등으로 잎이 울창할 때는 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이나, 한겨울에 잎이 다 떨어지면 쓸쓸한 죽음의 분위기를 풍긴다. 11세기 초 북프랑스에서는 도시나 농촌 모두 거대한 숲을 사이에 두고 고립되었다. 자연 환경은 인간을 위축시켰고, 활력을 잃게 했다. (사진 2)
사람들이 대자연 속에서 의욕을 상실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바로 계속된 이민족의 침입 때문이었다. 남쪽에서는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사라센인이, 북쪽 바다에서는 바이킹이, 동쪽으로는 기마민족인 마자르족이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했다. 특히 수도원들은 재물과 음식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입자들의 가장 좋은 표적이었다.
수도사들은 이런 불행한 상황을 ‘요한계식록’의 종말사상과 결부시켜 해석하며 희망을 얻으려고 했다.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그림과 조각은 9세기부터 수도원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그 후 고딕 대성당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11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온난화라는 기후 조건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은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울창한 숲의 나무를 베고 농지를 만드는 작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수도사들에게 자연은 인간과 함께 신이 창조한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지성처럼 신적인 영혼은 없는 하등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위하거나 신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그것이 그때 기독교의 기본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자연을 숭배하는 민간신앙이 뿌리깊게 남아있었다.
개간운동이 시작되었을 시기, 유럽의 90%에 달하는 농민들에게 기독교는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혹 기독교에 귀의한 경우에도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실제 생활 속에서는 민간의 신앙과 풍습이 여전히 존재했다. 실제로 유럽이 기독교화된 시기는 16세기 이후부터다.
16세기 초반에도 불완전하여, 미사를 올리거나 고해성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신앙 속에 미신이나 마술의 각인도 남아있었다. 농민들에게는 추상적이며 하늘에 있다는 ‘신’보다는 실제로 자신들에게 풍요를 주는 동시에 두려움을 주는 ‘숲’이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숲의 ‘대개간’으로 경작지가 늘면서 식량이 풍부해졌지만, 동시에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기간 수확량은 2배 가량, 인구는 3배로 늘었다.
개선된 농법의 보급과 농기구의 개선으로 농업의 효율이 늘어 농촌은 불어난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남는 인력은 도시로 이주하여 다른 직업을 찾거나, 숲을 개간해 농경지를 늘렸다. 결국 숲에 대한 대대적인 개간은 ‘도시화’로 연결되며, 도시는 곧 돈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 자본으로 인해 ‘대성당’이라는 이전에 없던 거대한 건축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치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절 안에 토속신앙과 결합된 칠성각 같은 건축물이 나타난 것처럼, 대성당을 건립할 때도 ‘숲’에 대한 뿌리깊은 사랑은 여전히 남아 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성당 내부에 좌우로 줄지어 서 있는 높이20m 정도의 돌기둥들은 대개간 운동 때 사라진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다. 돌기둥 꼭대기 천장에 걸쳐 방사선으로 뻗은 교차 리브나 횡단하고 있는 아치의 곡선은 거대한 나무에서 뻗어 늘어진 가지의 부드러운 곡선을 나타낸다. (사진 3)
나뭇잎은 기둥 아래쪽의 기둥머리에 새겨져 있다. 고딕의 나뭇잎은 북프랑스 숲의 깊이와 그 왕성한 생명력을 반영했다. 성당내의 어슴푸레하고 무서우며 신비로운 분위기는 한낮의 숲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 준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온 빛은 숲 속의 나무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빛이며 생명력에 비유할 수 있다. (사진 4)
이렇게 태어난 유럽의 고딕 성당은 숲에 대한 중세 사람들의 깊은 애착과 감수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앤 드뮐미스터의 패션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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