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쿵, 쿵, 쿵, 쿵. 가슴을 두드리는 비트가 울리자 검은 대야 안에 담겨 있던 물이 튀어 오르고 조명이 번쩍인다. 자세히 보니 대접이 아니라 스피커 유닛이다. 간단해 보이는 장치인데 신기하면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무대 연출이다. 저 멀리 무대에는 폭포처럼 위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겐조’의 2014 S/S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패션 디자이너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많은 의상을 만들어 왔고, 패션쇼 무대에도 직접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러나 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흐른다’는 고유의 성질 때문에 패션쇼에 등장하기 어려운 자연물이었다.
하지만 유동적이라는 성질을 효과적으로만 활용한다면 그 시각적 충격은 훨씬 강렬해진다. 때때로 물과 함께 연출 된 공연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952년 작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는 뮤지컬로 재탄생 되었고, 태양의 서커스 공연 중 라스 베가스에서만 볼 수 있는 ‘O(오)’는 불어로 물이라는 뜻이다. 물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공연이다. 지금 서울에서 공연 중인 ‘푸에르자 부르타’에서도 물을 이용한 장면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물을 이용한 무대를 위해서는 많은 제작비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1회성으로 끝나는 패션쇼에서 물이 이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거대 명품 브랜드 ‘샤넬’의 2010 F/W 컬렉션에서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를 위해 진짜 빙하를 공수해 왔으며, 바닥에 찰랑이는 물을 깔아놓아 모델들의 걸음에 따라 부츠가 일부러 젖게 하는 효과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비나 강, 계곡, 바다뿐 아니라 수돗물 등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물에 대한 이미지가 무대에 올라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세심한 연출이 필요하다. 그래서 물과 조명, 소리를 다각적으로 활용한 ‘겐조’의 패션쇼는 가벼운 듯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은 무대와 함께 컬렉션에 등장한 의상들도 물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실제로 ‘겐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캐롤 림과 움베르트 레온은 물과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의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자란 그들은 물의 아름다움이 아닌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바다 환경을 파괴하는 남획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컬렉션을 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심각한 내용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한 옷들로 무대는 채워졌다.
감각적인 무대 연출로 먼저 시선을 끌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함께 그 의미와 스토리가 가득했던 명쾌한 컬렉션이었다. ‘겐조’가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이유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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