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프 시몬스가 「질 샌더」를 이끌었던 기간은 질 샌더가 「질 샌더」를 이끌었던 시기와 확실히 구별된다. 분명 ‘독일’스럽지 않은 「질 샌더」였다. 무엇이 두 시기의 구별을 만들어 낼까? 바로 독일과 벨기에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벨기에’. 패션 전공자라면 앤트워프 왕립학교가 떠오를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플이나 초콜릿, 맥주 같은 먹을 거리 정도를 생각하는, 심리적으로 우리와는 너무도 먼 나라이다. 서유럽에서도 소국에 속하는 벨기에는 아래로는 프랑스, 위로는 네델란드, 동쪽으로 독일, 서쪽에 북해와 영국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강대국들 사이에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델란드, 룩셈부르크)으로 묶여 자리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프랑스, 독일, 영국에 둘러싸여 있다. 현재 벨기에에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본부,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 말은 즉, 과거에는 외침(外侵)에 많이 시달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벨기에는 오랜 기간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프랑스에 차례로 지배를 받다가 1815년 네덜란드에 병합되었다. 이후 벨기에 혁명이 일어나 비로소 1850년에 독립했다.
산업과 경제가 일찍부터 발달된 나라로, 플란드르 지방은 중세 이래로 모직물 공업이 대단히 번창한 곳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풍부한 석탄을 바탕으로 하여 1950년대 초까지는 철강공업·금속공업·유리공업·섬유공업이 경제의 주축이었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영국을 제외하고 언어적으로 벨기에는 주위를 둘러싼 세 나라, 즉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어권 지역으로 나뉜다. 그 중 라프 시몬스는 1968년 네덜란드어권인 림뷔르흐(Limburg)주의 작은 도시 니어펠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패션이나 디자인 쪽으로 특별히 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가 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촌구석을 벗어나 도시로 가고 싶어했으며, 그 방편으로 앤트워프와 1시간 가량 떨어진 겐트(Gent)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며 산업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패션을 전공하지도 않았음에도 벨기에 시골 소년이 「질 샌더」를 거쳐 무려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을 만큼 인정받는 실력을 갖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라프시몬스는 앤트워프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당시의 여자 친구이자 현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베로니크 브란퀸호 등과 모여 헬무트랭이나, 앞서 파리로 진출한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마르틴 마르지엘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20대를 보냈다. 그는 가구 디자이너로 먼저 일을 시작했지만, 곧 벨기에 패션을 이끌게 되는 발터 반 베이렌동크의 스튜디오에 인턴으로 들어간다. 그곳을 통해 파리 패션 위크를 처음 보러 간 그는 마침 실험적인 마르틴 마르지엘라의 1991년 컬렉션 ‘all white show’ 를 보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완전히 마음을 굳히게 된다.
이후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한 그는 1995년 자신의 남성복 라벨을 론칭했다. 초기에는 프리젠테이션과 비디오로 선보였다.
1997년이 되서야 파리 컬렉션에서 패션쇼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만인 2006년 「질 샌더」의 여성복과 남성복 S/S 컬렉션에 등장하며 질 샌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마침내 2012년 「크리스챤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기 전까지, 7년간 「질 샌더」에서 그가 보여준 옷들은 벨기에의 전통 유산이 어렴풋이 보여진다.

부존자원이 많지 않았던 나라로 벨기에는 손으로 하는 정밀한 기술 산업이 많이 발달했는데, 세계 3대 레이스 국가에 꼽힐 만큼 벨기에는 레이스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벨기에 레이스 기술은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안트워프에서 시작돼 각지로 퍼졌으며, 19세기에는 15만명의 여성이 종사하는 거대한 산업이었다. 섬세한 레이스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옷깃이나 소매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웃 국가의 왕실에서도 인기를 끌어 영국 엘리자베스 1세가 옷깃이나, 프랑스 외제니 황후의 3000벌의 드레스에 장식되었다.
하지만 라프 시몬스가 직접적으로 레이스를 현대 패션에 적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레이스의 속성, 즉 덧댄 레이스 아래로 속이 비친다던가, 나아가 아주 섬세하고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패션으로 표현하였다. 독일적인 질 샌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감이었다. (사진 1, 2) 평범해 보이는 의상에 아주 미세한 변화를 주는 방식도 굵직굵직한 게르만인의 미감과는 구별된다. (사진 3)
또한 같은 벨기에 출신인 마르틴 마르지엘라처럼 옷을 해체하는 면모도 보인다. 다 만들어진 옷을 찢거나, 일부러 헤지게 보이는 의상들, 완성도가 아닌 구조를 드러내는 옷들은 검약한 질 샌더라면 상상도 못했을 짓이다. (사진 4)

무엇보다 라프 시몬스의 「질 샌더」는 질 샌더 때보다 훨씬 장식적이다. 즉,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디자인이 아니라, 쓸 데 없지만 아름다움을 위해 덧붙여지는 장식들이 옷을 꾸며준다. 그런데 이 장식은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프랑스적인 장식’과는 또 구별된다. 일종의 ‘새로운 장식 (사진 5)’이자 ‘초현실적인 장식(사진 6)’이다.
혹시 ‘아르누보’와 ‘초현실주의’가 발생한 지역이 벨기에인 것과 연관이 있을까?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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