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절대 왕정이나 강력한 황제의 시대처럼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는 시기에는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을 온갖 건축, 가구, 미술, 의상 등에 주렁주렁 다는 것이 시대 미학이었다.
중세 유럽처럼 신의 말씀이 사람들을 지배하던 시기에는 엄숙하고 화려한 제식을 진행할 거대한 교회 건축물과 신의 성스러움을 표현해 줄 스테인드 글라스, 종교화 등으로 신의 섭리를 표현했다. 이렇듯 화려함을 아름다움의 우선 가치로 꼽을 수 있는 시대는 풍족한 시대이다. 장식을 주문할 수요와 자금, 그 수요에 부응할 공예나 예술가 집단이 뒷받침 되는 것이다.
반면에 실존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라면, 예컨대 전쟁 때문에 모든 기반시설이 무너지고, 당장 먹고 입을 것이 없는 시대라면, 최소한의 기능을 만족시키는 것이 최우선적 가치가 된다.
음식으로 치면 다양한 식감과 맛, 색을 고려한 화려한 형태, 에티켓을 위해 순서를 지켜야 하는 포크, 나이프 같은 건 필요 없어지고 단순히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욕구만 충족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기능주의’는 비극적인 시대에 탄생되었다. 이 단어가 아름다움의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는 역사적으로 그리 풍족한 시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사회를 다시 재건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최고의 가치로 추앙 받게 된 것이었다.
20세기 초는 혼란의 시대였다. 특히 독일은 1871년 뒤늦은 통일로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전쟁의 후발 주자로 주변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욕심이 생긴 도이치 제국은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패배하였으며, 또 다시 가난의 시대에 접어든다. 그 지점에 독일에는 바우하우스와 질 샌더가 탄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 후인 1919년, 전쟁터에서 돌아온 35살의 젊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한 바우하우스를 창설하였다.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도치시킨 것이라는 말과, 중세 고딕 시대의 대규모의 성당 건설에 종사했던 기술자들에 의해 형성된 바우휴테(Bauhutte)의 이상적인 모습을 의식했다는 설이 있다.
바우하우스의 목적은 모든 미술 작업의 총합인 새로운 건축을 만들고자 하였다. 19세기 말 독일은 선진산업국가인 영국을 뒤따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이러한 국가적인 정책과 관심에 힘입어 1907년 가을, 독일 우량 제품 진흥의 중심기관이라 할 수 있는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이 결성되었다. 그로피우스도 멤버로 활약한 이 연맹의 목적은 미술, 공업, 수공예가 협력해 더욱 향상된 공업제품을 생산해냄으로써 다른 국가들과의 산업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바우하우스’하면, 기하학적이고 장식을 배제한 채 기능만 남긴 건축물을 연상한다. 하지만 실상은 산업 후발 주자이자, 전쟁으로 무너져버린 독일 사회에 싸게, 빨리, 많이 건물을 재건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기능주의적 형태란 생존을 위해 취할 수 밖에 없는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유산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싸게, 빨리, 많이 만들어 내는 건축 양식인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을 탄생시켰고, 그 정신은 6.25 전쟁 이후 빠른 시일에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촌으로 현대에 계승되고 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2년 전인 1943년, 질 샌더는 가장 힘든 시절의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알려주는 자료는 많지 않다. 본격적으로 패션을 공부하기 전에 그녀는 어린 시절과 10대를 어떻게 보냈을지 상상해 보자.
그녀는 베셀부렌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독일 최북단에 위치한 주인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에 속하며 독일 중심부보다는 덴마크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하지만 성장은 유럽 교통의 요지이며, 상업적으로 발달된 한자자유동맹에 속하는 함부르크에서 했는데, 이곳은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수도 베를린 다음가는 제2의 도시이다. 이곳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다행히도 서독에 속하게 되었다.
서독을 형성하는 지역은 종전 후 포츠담협정에 의해 결정된 미국·영국·프랑스 3국의 점령지구였다. 1947년 마셜플랜에 의해 서독이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아 이를 뒷받침으로 하여 통화개혁이 실시되었는데, 그 개혁은 서독 경제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서독 지역을 흐르는 라인강의 기적은 미국의 반공산주의 정책과 서독 국민들의 전후 복구 노력 등을 통해 1990년대 말까지 연 8%의 경이로운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전쟁의 폐허와 빠른 시간에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성장을 경험한 질 샌더의 패션 세계가 미니멀리즘으로 귀결된 것은 철학적인 고민의 결과다. 그녀는 명백히 자신의 패션이 바우하우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바우하우스에는 건축의 인테리어를 위한 텍스타일 공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수평, 수직의 디자인적 개념뿐 아니라, 재료로는 셀로판을 첨가한 직물원료, 합성재료와 양모, 면사, 실크, 금속과 유리 등의 재료를 실험하고, 다양한 표현 효과를 나타냈다. 질 샌더도 새로운 컬렉션에는 새로운 재료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실용적이고 기능에 충실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는 ‘좋은 소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그녀가 옷의 재료가 되는 섬유공학부터 기초를 쌓았기 때문에 추구할 수 있었던 미학이었다. 비극적인 시절로 말미암아 탄생된 기능주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도 공감되는 아름다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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