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리즘’을 주제로 내건 ‘제31회 대한민국 패션대전’ 본선 무대가 열린 지난 5일. 형형색색의 작품들 가운데 오로지 검정색만을 사용한 작품이 있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이두성(27·SADI 3년 휴학)씨. 그는 이어진 수상자 발표에서 대상에 호명됐다.
“코리아리즘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땐 막연히 스트리트 패션으로 표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복 장인 김정아 선생님의 작품을 접할 기회를 얻어 한복을 구조적으로 보게 됐는데 ‘답호’의 입는 방식과 구조를 가져와 작품에 적용하게 됐어요.”
답호는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왕과 관리들이 상복 안에 입었던 옷이다. 밑단이 넓고 옆트임이 있어 하늘하늘한 것이 특징. 이두성씨는 답호의 형태를 세 벌의 의상으로 레이어드해 표현했다.
여기에 피어싱을 원단에 꽂아 주름을 만들었다. 원단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자수를 놓아 주름을 고정하는 방식인 스모킹 기법을 사용한 것. 본래 실을 사용해 주름을 만들지만 이두성씨는 실 대신 피어싱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꽂았다. 재킷 한 벌을 만드는데 피어싱 2000여개를 사용할 정도로 고도의 작업이었다.
“제가 직접 발품을 팔아 피어싱 도매상가에서 재료를 구매하고, 수천 개를 꽂다가 손에 물집도 생겼어요. 힘든 과정이었지만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정말 즐기면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검정색만을 사용한 것은 같은 색이라도 소재에 따라 톤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죽과 울을 사용해 레이어드한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죠. 주변에서는 컬러풀한 것이 눈에 띄지 않겠나며 만류했지만 제가 워낙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서 ‘대회 끝나면 내가 입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웃음)
이두성씨가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지는 3년째. 어린 시절부터 뜻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에 비해 조금 늦은 편이다. 하지만 패션 디자인은 그의 운명이었다. 안경학과를 졸업해 안경사로 일하던 중 안경 디자이너를 만나 과감하게 진로를 바꾸게 된 것.
“디자인을 하면 내면에 있는 것을 배출하는 것에 대한 쾌감을 느껴요. 그때 막연한 제 미래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디자인이 그 해결 방법이 된 것이죠.”
이두성씨는 미국의 아트오브패션(AOF)에도 본선에 진출했지만 대한민국 패션대전과 기간이 겹쳐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직접 의상을 만들어보게 됐는데, 올해부터 단계마다 테마가 바뀌어 한달 반 만에 작품을 내야하는 상황이 연속됐다. 하지만 패션대전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와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한걸음씩 꿈에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한민국 패션대전은 교수님이 한 번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셔서 마감 1시간 전에 지원서를 제출했어요. 또 학교 강사님을 통해서 김정아 선생님을 뵙게 돼 답호를 작품으로 풀어낼 수 있었고요. 대회 때에는 평소 존경하던 장광효 선생님의 팀이 돼 영광이었죠. 그동안 직장 생활로 제한된 느낌이 있었는데 장광효 선생님이 ‘니가 잘 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면서 믿어주고 격려해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저와 뜻이 같은 친구들을 알게 된 것도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점이고요. 부모님께서도 늦은 도전에 걱정은 많으셨지만 늘 든든하게 응원해주셨는데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이두성씨는 도쿄 뉴 디자이너 그랑프리의 본선에도 진출해 28일 현지에서 열리는 본선 패션쇼에 참석한다. 이 역시 우수한 실력의 예비 디자이너를 뽑는 대한민국 패션대전과 성격이 비슷한 대회로, 전 세계 지원자 중 25명이 본선에 뽑혔다. 이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부상으로 기회를 얻은 파리 에스모드 유학길에도 오를 예정이다.
“최종 목표는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앞으로도 계속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입니다. 또 계획이 있다면 저와 뜻이 같은 친구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지원해주고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어요.”
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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