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디자이너 3인의 글로벌 시장 개척기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한 신진 디자이너 이정선, 김기호, 장소영(왼쪽부터)이 “이렇게 높은 산인줄 알았다면 도전도 안 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 뒤 환하게 웃어 보였다. |
◇ 해외 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김기호 디자이너 (이하 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고 독립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해외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동시대적인 트렌드를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정선 디자이너 (이하 이): 우연한 기회였다. 지인의 소개로 프랑스 에이전시 MC2와 인연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해외 유통을 시작했다.
장소영 디자이너 (이하 장): 자신의 브랜드로 해외 패션 트레이드쇼에 나가는 후배를 지켜보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꿈을 키워왔다. 국내는 아직 디자이너 레이블로 시작할 수 있는 시장 폭이 넓지 않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해외에서는 순수하게 옷만 갖고 평가하지만 국내는 어디 출신인지를 우선시하는 것 같다. 위탁 중심의 유통 구조도 문제다. 해외 트레이드쇼에서 만난 국내 바이어들은 현장에서 수주하지 않고 “한국에서 보자”고 한다. 위탁하려고 말이다. 옷을 유심히 보다 “어, 한국꺼네”하고 가버리는 바이어도 있다. 옷만 갖고 평가하는 마인드가 아닌 거다.
김: 동감한다. 한 번은 국내 패션 트레이드쇼에 참여했는데 백화점 바이어가 와서 “직원이 몇 명이냐”고 묻더라. 해외 트레이드쇼를 많이 다녀봤어도 이런 질문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회사의 규모를 궁금해했던 것 같다. 이와 달리 해외 바이어들은 옷만 보고 평가한다. 자기 숍에 대한 콘셉이 확실하니 쭉 훑어본 다음 필요한 옷만 찾아간다.
◇ 어떤 방법으로 해외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나?
장: 프랑스 패션 전시회인 후즈넥스트에 4번, 트라노이에 3번 연속 참가했다. 지난 시즌까지는 신규 바이어를 유치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고정 바이어 위주로 안착됐다. 특히 트라노이는 신진 디자이너관에서 메인 홀로 입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 트라노이에 4번 정도 참가했고 이번 시즌에는 미국 코트리에 나갔다. 다음 주에는 일본 플러그인에 참가할 예정이다. 플러그인은 룸스링크와 더불어 신진 디자이너 등용문으로 불리는 패션 트레이드쇼로 방문 바이어 수도 많다고 들어 기대가 크다.
이: 해외 유통망 확보는 에이전시에 일임하고 있다.
◇ 힘든 점은?
장: 각기 다른 나라별 사정으로 겪는 문제도 있다. 중동 바이어가 많은 편인데 최근 라마단 주기와 겹치며 일이 지연됐다. 또 최근 쿠웨이트의 숍과 첫 거래를 텄는데 거래 방식이 엄청 까다로워서 고생했다. 인보이스는 상공회의소에서, 원산지 증명 요구서는 대사관에서 일일이 증명받아야 한다. 배송비 자체도 비싸, 서울패션위크를 위해 방문하는 바이어에게 직접 물건을 전달키로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이 수하물 적재 용량을 초과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혼자 일하다보니 업무량이 많다는 문제도 있다. 해외 트레이드쇼에서 동분서주하고 돌아오면 오더 받은 물건의 생산과 배송 등을 처리하느라고 한숨을 돌리기도 어렵다. 유통망이 늘어날수록 점점 업무도 많아져 잘 조절하지 않으면 과부하 걸리기 일쑤다.
김: 힘든 일은 언제나 찾아온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싶은 봉변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온다. 하지만 참고 견디면 위기 관리 능력이 생긴다. 1년이 지나고 보면 비슷한 일이 닥쳐도 견딜 수 있도록 그 무게감은 가벼워진다. 문제는 다른 유형의 사건들이 계속해서 터진다는 거다.(웃음)
◇ 해외시장 진출을 꿈꾸는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뛰어들었으면 한다. 독립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게 뭐랄까. 결혼과 비슷한 것 같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러나 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길게 보고 가야한다. 나도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라 오늘은 안심했다가 내일은 큰 주먹 얻어맞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론칭 준비하며 주변의 반대가 많아 굳은 각오로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너무 자신감이 넘치면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다.
장: 옳은 말이다. 나는 매니큐어를 발라본지도 하이힐을 신어본지도 오래다. 미용실도 7개월만에 겨우 다녀왔다. 이렇듯 내가 선택한 것을 위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특히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두라고 충고하고 싶다. 내 경험상 20대에 형성해 놓은 인맥이 30대가 된 후에 사업적으로 도움될 때가 많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이: 「타이거인더레인」이 「H&M」과 콜래보레이션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성장시켜나가는 것이 목표다.
장: 사라지지 않는 나만의 라인을 남기는 것. 트렌드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김: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 및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고 싶다. 협동을 통해 소통하며 서로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 이는 브랜드 콘셉인 관계·소통·나눔과도 일맥상통하다.
최은시내 기자
cesn@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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