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는 형태 공부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뒤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한바탕 진검승부를 내야 한다. 비례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조형적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아래에 직선이 하나 있다. 이것을 가장 비례감이 좋게 둘로 나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비례와 음악
현 위를 지쳐가는 활의 마찰이 바이올린의 선율을 직조해 내고, 건반과 손가락의 요동치는 만남이 피아노의 떨림을 울려낸다. 이처럼 음악은 대상들의 만남으로써만 소리를 건축해 가고, 더하고 뺄 수 있는 일체의 물물교환을 수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형은 다르다. 색과 형태의 물질적 투여가 형태 만듦의 본질이다. 좋은 형태, 좋은 색은 화면이라는 주어진 물질적 상태 그 자체로부터 생산될 수가 없다. 바깥으로 부터의 물질적 이동이 없으면 형태는 말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 면에서 조형은 물리학에 가깝고, 음악은 철학에 가깝다. 아마도 미술이 음악보다도 한참 뒤에 예술로 공증된 것은 이런 면에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 위에서 나는 음률처럼, 건반 안쪽에서 나는 소리의 율동처럼 물물교환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조형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국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례’이다. 비례는 음악처럼 관계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물질성을 초월하는 곳에 자리를 잡지만, 또한 형태의 물질성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서푼어치의 요소만 가지고도 백 냥, 천 냥짜리로 만들 수가 있다.
그래서 비례는 최소의 투여로 최대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조형경제학의 궁극의 자리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
디자이너들은 이런 비례를 회피하거나 건너뛸 수가 없다. 형태에 대한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뒤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한바탕 진검승부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비례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조형적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선분 나누기
다시 선분으로 돌아가자. <그림 1>의 선분을 어떤 식으로 나누어도 되지만, ‘보기에 좋다’라는 전제가 달리면 복잡한 문제가 된다. 보기에 좋다는 말은 대단히 주관적이지만 가장 적절한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은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비례의 문제가 조형의 원리 중에서도 쉽지가 않은 것은 이처럼 주관과 객관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롱다리, 숏다리에서 알 수 있었듯이 비례의 주관성 속에는 객관의 맹아를 잉태하고 있다. 주관적인 객관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그림 2>를 보면 <그림 1>의 선분이 다양한 크기로 나누어져 있다. 맨 앞의 것은 양쪽 선의 길이가 똑같아서 안정감은 있으나, 정적이고 변화가 없다. 가운데 것은 한쪽이 너무 작아서 다른 한쪽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세 번째의 것은 앞뒤가 길이에 변화는 있지만, 긴 쪽이 짧은 쪽을 일방적으로 압도하지는 않는다, 서로 변화를 가지면서도 적절히 균형을 잡고 있어서 가장 보기에 좋은 비례라고 할 수가 있다.
선분을 넘어서서, 면
선의 경우에는 길이만이 비례를 측정하는 요소지만, 선이 두께를 가지게 되면 비례의 요소는 하나 더 늘어난다.
<그림 2>의 세 번째 선을 가져와서 두께를 다양하게 해보자.
<그림 3>의 왼쪽은 길이에 비해 높이가 너무 낮다. 가운데 것은 높이가 너무 높아서 길이의 비례가 상대적으로 미미해졌다. 오른쪽의 경우는 길이의 비례에 대한 높이의 비례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서 적당하다.
좀더 나아가서 앞의 선과 뒤의 선을 서로 높이가 다르게 해주면, 길이와 높이라는 요소의 변주를 통해 더욱 다양한 비례관계를 만들수 있다. 아래의 <그림 4>를 보자.
왼쪽의 경우는 앞쪽의 형태가 뒤의 형태에 비해서 너무 미약해졌다. 오른쪽의 경우는 앞의 면과 뒤의 면이 서로 비슷한 비중을 가지면서 서로 조화되어 있다.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단순하고 조그마한 형태라 하더라도 이처럼 대단히 많은 비례를 만들 수가 있다. 거장들이 아주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서도 풍부한 표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비례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풍부한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심플하다고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례찾기
한 줄의 선을 가지고도 다양한 비례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조금 더 복잡한 형태일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비례의 체계가 만들어질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비례에 관한 공부가 힘들고 어려운 것은 하나의 형태가 이루는 비례의 체계가 보는 눈에 따라서 그물망처럼 엄청나게 복잡하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가나 디자이너를 감각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의 형태를 두고 능숙한 디자이너들은 슈퍼 컴퓨터를 능가하는 계산을 한다. 이렇게 하는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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