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본력, 조직력 결합돼야 세계적 패션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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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의 ‘아름다운 만남’ - 박항치「BAKANGCHI」디자이너

2013-05-09 오후 7:52:33

박항치 디자이너는 SFAA 원년멤버로 한번도 빠짐없이 23년간 46회의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브랜드「BAKANGCHI」는 30~4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어번캐주얼이다. 사진 임정국 기자 ljg@fi.co.kr

 


40년간 쉼 없이 달려 온 한국 패션계의 맏형


한국 남성 디자이너들의 맏형은 누굴까? 브랜드 「BAKANGCHI」 디자이너 박항치를 꼽는데 이견을 보이는 이는 패션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칠순을 훌쩍 넘겼음에도 패션계의 영원한 청년이라 할만큼 열정이 가득하다. 한국 패션계의 왕언니 진태옥씨와 함께 한국 패션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온 그를, 박윤수 이상봉 등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은 영원한 형이라 첫손 꼽는다. 따사로운 봄날 서울 청담동 패션거리 검은색 4층 「BAKANGCHI 玉東」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 컬렉션을 여전히 계속하는데, 힘들지 않나.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하지 않으면 굉장히 둔해진다. 결국은 자기 개발의 문제이다. 디자이너도 쇼가 끝난 후 커튼콜을 받고 뒤돌아오면서 다음 컬렉션을 고민하게 된다. 나도 ‘다음엔 또 뭘하지?’ 하며 나온다. 컬렉션한 후에 한두 달 쉬고 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하지 않고 상품만 하면 더 막막해지고 뒤떨어진다. 골프선수들을 보라. 한국 여성 프로골퍼들 얼마나 대단한가. 이들은 늘 골프에 몰입한다. 디자이너들도 그래야 한다.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해야 한다.”


- 컬렉션을 준비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무언가.
“역시 디자인이다. 패션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이 생명이다. 조용필 음악을 들으면 금방 조용필인지 알지 않나. 피카소나 샤넬, 마티스의 그림도 보면 그만의 개성과 특징이 한눈에 드러난다. 디자이너도 딱 보면 ‘누구 것’이라 할 만큼 정체성, 절대적인 독창적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매번 머리에서 쥐가 난다.”


 


2013 F/W 컬렉션


 


- 아이디어가 안 날 땐 어떻게 하나.
“컬렉션 준비하면서 아이디어가 안 나오면 옷장에 머리를 딱딱 박기도 한다(웃음). 그리곤 ‘내 머리가 돌머리인가’ 하는 자책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결국에 어느 순간 문제가 풀린다. 소비자가 값어치를 인정해줄 정도로 고급스럽게 마무리 해 완벽한 옷을 만들어야 한다.”


- 현역 남성 디자이너로는 제일 선배다.
“내 위로 고인이 된 앙드레김을 비롯, 허준 이용렬 등 열다섯 분이 더 계셨다. 그런데 백화점 시대가 열리면서 디자이너들간에 명암이 갈라졌다.”


- 디자이너 브랜드의 백화점 입점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안다.
“「BAKANGCHI」은 신세계백화점 계열로 열 군데 입점해 있다.  이 건물을 준공한 1984년도 이후 백화점 입점을 많이 축소했다. 롯데, 미도파, 뉴코아 등에서 철수하고 「BAKANGCHI」 본사에서만 하다가 식구는 늘고,고객은 줄어들어  다시 신세계에 들어갔다. 
요즘 백화점은 옷만 팔지 않고 문화 행사를 하고 조직적으로 고객을 관리하니까 디자이너 개인이 그 조직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또 주차 시설도 그렇고. 사람들이 일반 시장을 다니다가 대형 마트에서 원스톱 쇼핑을 하는 심리와 비교할 수 있을까. 고객도 30%는 단골이지만, 70%는 새로운 고객으로 계속 바뀐다. ”


 



 



- 한국 패션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영화산업도 CJ 등 대기업이 자본도 투자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시장도 커지고 작품들도 좋아졌다. 한국 패션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만 하고, 대기업들이 자금과 조직력을 투입해 윈윈하면 훨씬 더 세계적인 패션으로 진일보할 수 있다. 일본은 몇십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기업이 5~10년간 디자이너와 계약하고 투자를 한다. 파리컬렉션을 비롯한 세계 패션쇼에도 디자이너의 스폰서가 되어 뒷바라지를 해서 패션산업을 키우고 수익도 배분한다. 한국 기업들을 운동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나. 운동선수에게 하듯 디자이너들에게도 기회를 준다면 한국 패션은 세계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 「캘빈 클라인」 「베르사체」「디올」「샤넬」등도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영입하듯, 한국 패션도 글로벌화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장기적 안목에서 윈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패션의 미래는 어둡다.”


-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선배들 보다 시작이 참 어려운 것 같다.
“한국 디자이너들은 재능이 많다. 특히 선천적으로 우월한 인자를 가진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타고난 재능도 후천적인 노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세계적인 인재가 되려면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로부터 신인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두리정’처럼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후 한국에 거꾸로 들어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남성복만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꼭 여성복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남성들은 군대 다녀와서 20~30대 직장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옷에 투자하는 비율이 여성보다 떨어진다.”


 - 요즘 패스트 패션인 SPA 공세가 만만치 않다. 앞으로 고객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 그러니 SPA가 인기인 거다. 하지만 여유있는 멋쟁이들은 고급 브랜드와 절충해서 입을 줄 안다. 자라, 유니클로, H&M의 소재는 고급스럽지가 않다. 고객의 취향은 다양하다. 패스트 패션과 슬로 패션, 내셔널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서로 공존할 것이다.”


- 한국에 패션 컬렉션 시대를 연 주역 중 1인인데, 숨은 이야기를 소개해달라.
“1985년 도쿄 컬렉션을 가보고 ‘한국에도 저런 컬렉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태옥 한혜자 설윤형 박윤수씨 등과 벤치마킹하러 다녔다. 당시 티켓을 사람수대로 못 구해서 부족한 티켓으로 몇 사람이 교대로 입장을 하곤 했던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또 그 2년 후 일본 히로코 코시노 디자이너 초청으로 진태옥 김동순씨와 함께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오사카컬렉션에 참가했다. 가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이야 서울컬렉션 운영방법이 세련되어 졌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네 쇼 방법은 전근대적이었다. 백스테이 등도 컬렉션 참가를 계기로 공부할 수 있었고 습득했다. 그리고 우리도 한국에서 패션컬렉션을 꼭 만들자고 다짐했다. 1989년에 12명이 모였고 SFAA 컬렉션을 발족했던 거다.”


 


연극계에서 활약하던 1969년 박정자씨(오른쪽), 고 추송웅씨(왼쪽)와 함께 한 박항치 디자이너.

 


-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었나?
“작년에 작고한 어머니가 참 대단한 분이셨다. 두 아들의 옷을 초등학교 때부터 재봉틀로 직접 만들어주셨다. 학교 설립을 하며 교육사업을 하셨던 아버지와 네 식구였는데, 당시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어머니 덕에 어릴 때부터 옷에 대한 안목이 높아 중고교, 대학 때도 옷을 잘 입고 다녔다. 영화계에서 일할 때는 신성일씨도 내 옷을 빌려 입을 정도였다. 1960년대는 군복을 염색해 입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외제품을 사 입고 다녔다. 나는 그때 벌써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다닐 정도로 패션에서는 앞서 있었다.”
70대에도 여전히 멋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젊은 ‘오빠’는 잠깐 어머니 생각에 빠졌다. 지금도 어머니의 손길이 들어간 음식들이 생각난다며 말을 흐렸다.


- 연극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
“참 인생이 희한하게 풀리더라. 연극영화 공부한 후 신성일 엄앵란 주연, 김승호 조연의 ‘동백아가씨’(1964, 김기 연출), 신영균 태현실 주연의 ‘성난 독수리’(1965, 김기 연출) 등 영화 30여편을 조연출했다. 이후 연극에 매료돼 소극장 운동의 효시인 ‘카페 떼아뜨르’에서 이병복, 추송웅 등과 함께 기획 담당으로 40여 작품을 올렸다.
극단 산울림 창단 공연작 ‘고도를 기다리며’(1969, 임영웅 연출), ‘밤으로의 긴 여로’(1969, 임영웅 연출)에도 관여했다. 1960년대에는 신성일 엄앵란 김지미 같은 대스타에게도 코디네이터가 없었고, 의상 통지서를 주면 본인이 챙겨가던 시절이었다.
특히 김지미는 본인이 설정한 옷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내게는 조언을 구했다. 당시 나는 배우들의 의상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20년 전에 김지미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기는 이 일로 성공할 줄 알았어’라고 하더라. 지금도 영화, 연극 의상을 종종 맡곤 한다.”


- 패션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연극판에서 가난하게 일하면서 ‘순수 예술로는 경제적으로 노후가 초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좀 벌고 싶었다. 그런 차에 김금지씨가 “항치씨는 양장점 해. 그러면 대성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처음엔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나중엔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유학파로 안목이 높은 자유극단 이병복씨에게 의견을 물어더니 ‘옷은 감각이 뛰어나야 하는 거잖아. 박항치씨는 해도 될 걸?”하며 용기를 심어줬다. 그렇게 주변의 권유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처음에 「옥동(玉東)」은 어떻게 작명했나?
“모두 영어로 브랜드명을 짓기에 나는 우리 것을 살려 짓고 싶었다. ‘동양의 옥 같은 존재가 되자’는 각오로 「옥동(玉東)」이라 지었다. 지금은 「BAKANGCHI」를 쓴다.”


- 꿈이 있다면?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전력투구하는 삶을 원해왔고, 그렇게 살고 있다. 어릴 때도 어른이 돼서 무슨 일을 하던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5 안에 드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었다.
마음먹고 노력한 만큼 되는 것 같다. 패션에 투신한 후에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패션만 생각했다. 하루 24시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못 이룰 꿈이 있겠나.”
지금도 영화, 연극 의상을 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벌써 다음 컬렉션을 생각한단다. “패션 트렌드가 모든 분야를 리드한다”는 그는, 내년 봄 여름 컬렉션을 생각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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