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 향해 달리는 1세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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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의 ‘아름다운 만남’- 박윤수 디자이너

2013-04-25 오후 6:11:55

개성 강한 컬러감과 디자인을 선보여온 박윤수 디자이너는 "「빅박」 을 잘 키워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임정국 기자 ljg@fi.co.kr

 


2년전 「BIG PARK」 런던서 론칭,  창의성과 열정, 실행력이 재산



‘인생은 늘 열려있다.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창의성과 열정과 실행력이라는 세가지 재산을 꺼내쓰는 방법을 공부한다면, 부자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마크 빅터 한센(‘닭고기 스프’ 공저자).


디자이너 박윤수(수이스타 대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빅터 한센이 지적한 창의성과 열정, 실행력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 그리고 뛰어난 실천력으로 SFAA(Seoul Fashion Artist Association.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 출신 디자이너들이 인정하는 부자가 됐다.


그는 30대 후반에 벌써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맞은 편에 300평의 땅을 마련해서 지하 3층, 지상 5층의 건물을 올렸다. 두개의 건물이 ㄱ자처럼 이어진 그의 건물은 브랜드 매장과 작업 공간,  ‘갤러리 더 쇼’의 문화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앞의 파릇파릇한 잔디는 그의 경제적 여유와 정신적 풍요로움까지 보여준다.


◇ 33년째 활동해온 숙성된 디자이너


박 디자이너의 이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창의적으로 살아 왔나 알 수 있다. 실행력 또한 대단하다. 한국 패션컬렉션을 주도해 온 SFAA의 원년 멤버인 그가 서울패션위크 컬렉션에 참가한 횟수만 24년간 46회. 1980년 중앙디자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패션계에 데뷔해 1985년에 ‘올스타일 박윤수’를 설립, 33년째 자신의 패션 세계를 숙성시켜 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2년 전 갑자기 젊고 컨템포러리한 브랜드 2개를 론칭,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 8월 30일 런던에서 「빅박」(BIG PARK by PARKYOUNSOO)을 론칭쇼를 열고 그곳에 서 공식 데뷔했다. 이순을 넘긴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오히려 오래 묵은 와인이 매력적인 맛을 내듯, 한층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한 「빅박」은 30여년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온 ‘박윤수’란 이름 석자를 세계 패션계에 산뜻하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왜 파리나 뉴욕이 아닌 런던을 찜했나?”고 묻자 “딸이 영국에서 공부했다. 그곳은 십 수 년 전부터 자주 다닌 곳이어서 파리나 뉴욕에 비하자면 훨씬 편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빅박」을 론칭한 건 의미가 있다. 게다가 일반 쇼장도 아닌 마켓과 자동차 수리 공장에서 차례로 했다”고 답했다.


「BIG PARK」이란 브랜드명에서도 ‘세계 속의 큰 디자이너’로 거듭나겠다는 디자이너 그의 야망과 열정, 실행력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새로운 브랜드를 생각하게 됐을까.


“1989년부터 계속 서울패션위크 무대에서 컬렉션을 발표했다. ‘박윤수올스타일’의 고객들은 나이가 들고 내 옷은 자꾸만 젊어졌다. 그러니 갈등을 할 수밖에….”


그의 열정과 실행력은 곧 보상받게 됐다. 「빅박」 론칭쇼로 런던에 공식 데뷔한 후 현지 바이어들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은 것이다. 현지 협회 요청에 따라 2012년 2월부터 런던패션위크를 통해 지속적인 해외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됐다.


또 같은 해 론칭한 아웃도어 브랜드 'P+by  PARKYOUNSOO'는 현대홈쇼핑을 통해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 런던컬렉션 도전, MCM과도 협업


그는 지난해 MCM과 협업을 했다. 「빅박」 론칭을 지켜보던 MCM이 그에게 여성복 부문 협업을 요청한 것이다. 「MCM by BIGPARK」이란 이름으로 나온 MCM 여성복 은  홍콩 센트럴 엔터테인먼트 매장에서 선보였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MCM by BIGPARK」은 유럽, 미국, 두바이 등 전세계 매장에도 나가 있다. 이 브랜드는 「빅박」 컬렉션 중 25가지 스타일로 꽃, 용, 호랑이 등 생명력 있는 모티브를 한국적 요소의 결합과 해석한 룩이다. 입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점, 선, 면을 구체화하고 블루, 레드, 오렌지와 같은 팝 컬러를 사용했다.


“MCM과의 만남은 행운이었어요. MCM이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도 살리면서 해외 마켓도 공략할 수 있어 저로서도 멋진 계기가 됐죠.”


최근 그의 매장에 서울컬렉션 사이트를 본 두바이 여성 바이어들이 다녀갔다.  “이병헌 보다 잘 생겼다”며 컬렉션과 디자이너 촬영까지 해갔단다.  그외 바이어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 2013 S/S 컬렉션 수출은 몇천만원 규모. 하지만 앞으로 몇십억원으로 늘어나길 기대한단다.


이런 그의 행보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움직임은 아니다. 1989년 미국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하며 글로벌 시장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세계 시장을 둘러봤다.


“「빅박」 에 대한 피드백이 금방 되지 않더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좋은 브랜드를 만들겁니다. 저처럼 봉제밥을 먹은 사람들은 같은 옷을 만들어도 깊은 노하우가 있죠. 하이앤드 캐주얼도 럭셔리하면서도 대중적으로 만들어낼 실력이 있다 할까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한국 보다 외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구성감이 있으면서도 시크한 스타일’이라 자평하는 그는,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그러고 보면 디자이너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창의력과 열정으로 살면 나이도 멈추나 보다. TV 시사물 ‘남극의 눈물’ 속  펭귄을 생각하며 만든 펭귄 프린트의 셔츠에 청바지, 재킷 차림의 그는 실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젊어보인다. 비결을 묻자 “헬스와 자전거, 아이스하키로 그날그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대답했다.  


◇ 회사명을 '수이스타'에서 '윤소미'로


박 디자이너는 가족적이기로 유명하다. 평소 아내와 두 딸에 대한 가족애를 과시해온 그지만, 최근 그는 회사명을 ‘수이스타’에서 가족의 이름을 한 자씩 딴 ‘윤소미’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큰 딸의 영어명 ‘수이’를 쓴 ‘수이스타’에서, 자신의 이름 ‘윤’과 두 딸의 이름 첫자 ‘소’, 거기에 패션디자이너인 아내 김미경의 ‘미’를 따 ‘윤소미’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중앙디자인콘테스트 입상 커플 중 1호”라는 그는 “중앙디자인콘테스트는 패션뿐 아니라 제 인생도 열어주었어요. 늘 저를 받쳐준 아내를 만난 건 참으로 행운이었고 감사한 일”이라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했다. 덕분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는 그는, 자신들의 뒤를 이어 중앙디자인콘테스트 출신 커플로 강진영-윤한희 부부, 스티브 J & 요니 P를 들었다.
그의 아내는 한때 중앙복식디자인그룹(JDJ), 미 패션그룹 인터내서날(FGI)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컬렉션 1세대로서 해외 진출의 열정이 충만한 그는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디자인이 좋아서 일에 미쳐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됐다”면서 “패션디자이너는 인기 직업이 아니다. 참으로 고달프고 힘들지만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겸손을 보인 그는 “위로는 진태옥 선생님의 불타는 열정에 늘 감동해서 ‘저 분처럼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아래로는 ‘이상봉의 활발한 모습을 본받아야 겠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처럼 됐다”고 덧붙였다.


 


서울 청담동 수이스타 건물 내 박윤수 디자이너의 작업 공간

 


◇ 청담동 지킴이, SFAA  디자이너들


한국 패션컬렉션의 모태가 된 SFAA는 탄생 비화가 있다. 서울 명동에 숍을 냈던 진태옥 설윤형 박항치 디자이너들과 함께 1986년 1월 유럽 투어, 그 이듬해 파리컬렉션에 갔다가 일본 디자이너 히로코 코시노의 패션쇼를 보고 약속이나 한듯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컬렉션 관람 후 파리 카페에서 “우리도 저런 컬렉션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든 것이 1989년 SFAA 탄생의 배경이 됐다. 모두 12명의 디자이너가 창간 멤버였는데, 막내가 박윤수 디자이너였다.


“멘토이시던 박혜숙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개성이 강했던 김희진씨가 쇼를 그만두고, 이후 중앙 후배인 김철웅, 이상봉이 들어왔죠.”
그의 눈에 아련한 추억이 깃들었다.


“아, 청담동에 디자이너들이 모인 것도 얘기해드릴께요.”
SFAA의 역사를 얘기하던 그의 말이 빨라졌다. 외국에서도 청담동처럼 디자이너들이 자기 빌딩을 올려 공장까지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설명과 함께.


수이스타 공식홈페이지(www.parkyounsoo3.com)에는 숫자 3이 들어간다.
그에게 3은 행운의 숫자다. 1980년 성신여대 앞에 ‘이브’라는 3평의 부티크를 처음 내고 성공의 계단을 밟았기 때문이다.


손발을 호호 불어가며 일했지만 열심히 했다. 운도 따라서 1980년대 후반 그는 명동으로 진출했다. 그후 당시엔 장동건 이상의 스타였던 박항치 선배 디자이너를 따라 청담동으로 이전했다. 당시 함께 청담동으로 이전한 디자이너가 지춘희. 당시 청담동 지가는 평당 100만원 시절이었다. 지금도 SFAA 출신 디자이너 10명은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삼성, 신세계 등 공룡의 틈바구니에서 청담동을 패션의 거리로 지키고 있다.


“뿌리도 중요하다. 한국패션의 역사에 대해 후배들도 소중히 하고 잘 알았으면 좋겠다”는 그는 후배들에게 “디자이너의 인기는 금방 지나가니 튼튼하게 자신의 브랜드를 이끌고 갈 열정적 에너지와 실행력을 각자가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 S/S 서울컬렉션 무대에서 선보인 「빅박」 컬렉션. 가죽을 다양하게 매치한 젊고 컨템포러리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트렌드 주도하던 멋쟁이 고교생


 어린 시절의 박윤수는 그림을 잘 그리는 멋쟁이 학생이었다. 공부는 취미가 없었지만 ‘그림’과 '멋내기'는 일등이었다. 옷입는 것을 좋아해 남대문에서 군복을 사서 안팎을 뒤집어 입고, 바지도 카고 바지처럼 만들어 입었다. 그가 입으면 고교생들 사이에서 곧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서러움도 겪어야 했다. 그가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향해 한발 내딛자 주위의 친구들이 떠나갔다. '왜 하필 여자 옷을 만지냐'는 거였다. 한때 좋아했던 여학생과도 헤어졌다. ‘패션디자이너는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란 편견을 가졌던 거다.


“이를 악물었어요. ‘성공해서 보여주겠다’고요. 그리고 지금 성공했지요.”
꿈을 이뤘지만, 지금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숨막히게 빨리 돌아가는 패스트 패션의 바람 속에 디자이너 브랜드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하지만 그는 늦둥이 「빅박」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행복하단다. 딸 같은 20-30대들과 함께 패션 컬렉션 무대를 연출하고, 만들면서 또다른 희열을 느낀다. 40대 초반 멤버 20명과 아이스하키를 격렬하게 하면서 시원하게 고민을 날려버린다.


“좋은 아빠, 좋은 오너, 좋은 디자이너로 남고 싶어요. 생활 속에서 행복한 것이 중요하죠.”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이화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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