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도 탐내는 ‘뉴 앙팡 테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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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희「MOON YOUNG HEE」디자이너

2013-04-08 오전 11:57:16

2013 F/W파리컬렉션에 이어 서울컬렉션까지 마치고 오랫만에 망중한의 여유를 가진 문영희 디자이너.

 


한국적 미감과 현대 감각 융합된 「MOON YOUNG HEE」


한국적 문화가 흐르는 패션으로 세계 패션의 심장부 파리에서 당당히 그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디자이너 문영희. 그의 브랜드 「MOON YOUNG HEE」가 지난달 27일  2013 F/W 서울컬렉션 무대에서 선보이자 객석에서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프랑스 정부훈장을 받을 정도로 독창적인 패션 세계를 인정받은 「MOON YOUNG HEE」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를 만나러 가보자.


◇ 흑과 백의 대비가 뚜렷한 아방가르드 룩
 「MOON YOUNG HEE」에는 한국의 전통적 미감과 현대 감각, 유럽의 문화가 느껴진다. 한복의 유려한 선이 흐르는가 하면 컨템포러리한 패션 감각이 가미된다. 한복의 유려한 선, 여인네의 속치마와 일 바지(몸뻬)가 보이는가 하면, 승마복의 활동미, 샹송이 흐르는 파리 스트리트 카페의 향기가 느껴진다. 시대를 오르내리는 동서양의 문화가 서로 융합되면서 「MOON YOUNG HEE」만의 독특한 패션세계가 구축되어 왔다.


 흑과 백의 대비가 뚜렷한 아방가르드 룩은 문영희의 전매 특허.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형화되지 않은 실루엣의 시적인 룩으로 런웨이를 압도했다.
특히 2013 F/W 컬렉션에서는 우리 동양의 무위자연 사상이 깃든 듯 편안해 보이고 라인이 길면서 부담없이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이는 느낌을 주었다. 마치 옷 속에 공기가 한가득 들어있는 듯 가벼워 보였다.


깔끔한 화이트 셔츠 같은 롱 코트, 통이 넓은 복고풍의 통바지, 발목을 거의 덮을 듯한 셔츠풍의 롱코트, 바지 뒤에 단 레이어드 스커트, 칼라에 섬세하게 표현한 그래픽 요소, 담대하고 자유롭게 표현한 볼륨 등이 이번 컬렉션에서 눈길을 끌었다. 소재의 우수함도 눈에 띄었다. 반짝이는 파이에트 등 소수의 옷 외에는 미끄러질 듯한 실크에서 거칠고 두텁기까지 한 실크 등이 돋보였다. 모델 김원중이 입은 「MOON YOUNG HEE」는 여성복임에도 확실한 캐릭터와 뛰어난 패턴 실루엣을 보여주었다.


◇ 17년째 36회, 파리 프레타포르테 참가
어느덧 이순의 중반을 넘어선 나이임에도 그녀는 반쯤은 소녀 같고, 반쯤은 도인 같은 형형한 눈빛이다. 쇼 당일 서울컬렉션 쇼가 끝나고 무대 앞으로 나온 그는 모델들 보다 한참 작고 갸녀린 육체로 느릿하게 걸어나와 수줍게 인사하고 들어갔다.


그를 바라보면서 1996년 파리컬렉션 프레타포르테 무대에 선다며 그와 인사를 했던 때가 떠올랐다. 국내 활동도 모두 접었다. 개인적으로 90년대 초반 서울 압구정동의 「MOON YOUNG HEE」 할인매장에 들러 그의 심플한 옷을 좋아라 하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곧 서울 매장은 모두 없어졌다. 알고보니 내가 찾아갔던 압구정동 할인매장은 그의 친구가 운영하던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꾸준함과 끈기다. 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진출한 한국 디자이너들이 안타깝게 진출한지 몇해 안돼 그만둔 반면, 그는 36회에 걸쳐 쇼를 진행해왔다. 아무말 없이 꾸준히 매번 40개 이상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MOON YOUNG HEE」 를 알린 덕에 2008년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 수상자로 불림을 받기도 했다.


보통 독한 마음이 아니면 안 됐을 것이다. 먼 이국 땅에서 갸냘픈 여인이 홀로 17년째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로 승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본인의 철학도 굳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가 힘들어서 파리 프레타포르테 무대를 뒤로 했을 때도, IMF라는 괴물이 들이닥쳤을 때도 문영희는 파리를 지켰다.


“파리로 간 이후 참 감사하게도 한번도 쇼를 빼먹지 않았어요. 건강도 따라 줬어요. 파리에 법인체도 설립해서 아예 파리를 본사로 했어요. 한국이 오히려 출장지가 됐죠. 가족이야 이제 다 성인이 됐구요.”


문 디자이너는 세 자녀를 뒀는데 큰 딸과 큰 아들은 영국서 살고, 막내 아들인 김무홍 실장(31·「MOOHONG」 대표 디자이너)이 서울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어머니를 돕는다. 그 덕에 문 디자이너는 파리 컬렉션에 이어 서울컬렉션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①~④ 2013 F/W 서울컬렉션


 


◇ “창작력 샘솟으니, 나는 복많은 사람”
이번 시즌에는 마치 한복처럼 여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주하는 아우터와 넉넉한 와이드 팬츠. 고품위의 테일러링을 가감없이 보여준 H라인의 맥시 코트…. 그의 옷들은 인체에 적용되었을 때 비로소 본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편견을 뒤엎는 스타일링으로 통한다.


이번 서울 컬렉션은 ‘뉴 앙팡 테리블(New Enfant Terrible)’을 주제로 했다. 앙팡 테리블(entterrible)이란 프랑스 문학가 장 콕토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된 ‘무서운 아이'라는 뜻. 원래는 생각보다 태도나 행동이 영악하고 별난 짓을 잘하는 조숙한 아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에 ‘뉴’가 붙었으니 ‘새로 나타난 무서운 아이’쯤으로 해석된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니, 어쩌면 ‘문영희’라는 이름 석자는 프랑스 파리 패션·문화계에서 ‘뉴 앙팡 테리블’일 듯 싶다.


사람마다 창작의 샘은 그 크기가 다르다. 만약 그 샘의 크기를 잴 수 있다면, 문 디자이너의 샘은 무척 넓고 깊지 않을까. 파리 패션가에서는 그녀를 크레아트리스(창작자)라고 부르고, 유행을 이끄는 예술인으로 대접하는 이유일 것이다.


창작력에 대해선 그는 자랑할 것이 많다. 희안하게 머리 속에서 자꾸 생각이 났다고 한다. ‘창작력’은 타고나야지, 공부한다고, 성실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창작력 없이 창의적인 예술, 패션 창작을 하려면 괴로워서 못해낸다.


문 디자이너는 어려서부터 자꾸 뭘 만들고 싶고, 만들 것이 머릿속으로 자꾸 생각이 나고, 또 몸이 근질근질했다고 한다.
“여덟살 정도였는데, 뜨개질이 하고 싶은 거에요. 그런데 시작하기만 했는데 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엄지 손가락은 어떻게 해야할지 다 생각이 나는 거에요. 벙어리 장갑에 이어 다섯손가락 장갑까지 떴고, 좀더 커서는 스웨터까지 떠서 주위에 선물할 정도였죠.” 


◇ 50년간 패션 한길로
중학교 입학하면서 가정 교과서에 부인복 원형이 실렸는데, 배우기도 전에 플레어 스커트 패턴을 떠서 만들었다. 어머니가 시장간 사이 포플린을 다락방에서 찾아냈던 거였다. 하지만 결국 들켜 혼이 난 후엔 헌 와이셔츠로 블라우스를 만들기도 했다.
참으로 일찍부터 소질을 발견하고, 쭉 개발해온 셈이다. 50년은 족히 됐다.


그가 중학교 때부터 방학 때면 복장학원 다닌 것은 유명하다. 당시 초등학교 나와서 먹고 살기 위해 어른들이 어렵게 의상을 배우는 것이 복장학원 연습생들의 일반 풍경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디자인을 배웠고 패션이 곧 예술이 된다는 생각은 멀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서 열넷된 깡총한 단발머리의 여중생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이것이야 말로 내겐 예술이야”라며 복장학원을 다녔다니 참으로 조숙한 앙팡 테리블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에게도 일찍부터 패션과의 조우는 있었다. 문학 소녀 같은 어머니는 딸들을 데리고 조선호텔의 조세핀 조에 데리고 가서 옷을 맞춰줬다. 그리고 조세핀 조가 집으로 가봉을 하러 오곤했다. 외자를 도입해 기계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큰딸이 좋아하는 외국 잡지를 다양하게 사다줬다. 외국 패션 매거진도 그 중 일부였다.
 
어머니의 꿈은 큰 딸을 잘 키워서 우아한 귀부인처럼 살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큰 딸의 강한 꿈은 어머니의 소박한 희망을 뛰어넘었다.


“저도 어머니 의견에 따라 피아노며 테니스, 배드민턴까지 다 배웠어요. 제 친구들은 모두 겨울 방학이면 스케이트장에 스케이트 타러 가며 놀았지만, 저는 옷만드는 것이 너무 좋아서 돼지 저금통을 깨어서 학원비를 대고 복장학원을 다녔죠.”


그는 공부면 공부, 옷이면 옷 그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어 하교 후엔 학교 숙제를 하고, 늦게야 옷만들기를 시작해 매일 오전3~4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뭐든 앞서야 직성이 풀렸던 고집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두꺼비집까지 내리고 일을 못하게 했을까. 하루에 3~4시간밖에 못자는 딸이 안타까웠던 게다.


 



2009 S/S 파리컬렉션, 2009 F/W 파리컬렉션


 


◇ 1인 8역으로 프랑스 파리서 정착
완벽주의 소녀는 결국 그 고집대로 나중에 일을 냈다.
한창 잘나가던 90년대 당시 패션매장 18개를 운영하던 그는 ‘세계 패션 중심에서 디자이너답게 창작하고 싶다’는 꿈을 위해 파리로 떠났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준비를 15년 이상 준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중-고교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옷 만들기를 가르칠 정도가 됐다. 대학에서도 의상학이 아닌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파리갈 준비를 일찍 해둔 셈이다. 시장 조사, 상법 공부, 현지법인 설립 등도 이후 차근차근 준비했다.


자신감이 충만한 그는 “오래전부터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패턴, 봉제, 염색, 뜨개질, 편직, 니트, 원단짜기 등을 다 공부해서 프랑스 가서도 뒤질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어릴 때부터 법을 가르쳐서 법을 잘 이용해요. 1주에 45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면 50% 임금을 더 줘야 한다는 것도 현지에 가서야 알았죠. 그래서 처음엔 고생 많았습니다.”


그에게 패션의 영감을 물으니 “특별한 건 없고, 프랑스 친구네 10대 딸을 위해 가족들과 승마장을 피크닉처럼 다니면서 가벼운 공기, 들판의 광대함, 사람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느끼면서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늘 메모를 하고, 스케치를 하고 글도 써놓는데, 그런 것들이 모여 컬렉션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제법 오래 되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유럽의 일상, 느낌이 그의 패션에도 스며든다. 유럽인들의 사고와 희망 사항을 작품에 어떻게 풀지도 절로 익히게 됐다는 것이다.
“만약 파리에서 쇼만 하고 오는 식이었다면 지금까지 오랫동안 하지는 못했을 거에요. 컬렉션 쇼는 참 허무하기도 하고, 내가 계속해서 뭘 얻겠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해내야지 하는 충전을 하게 되죠.”


◇유명 디자이너 육성이 국격 높이는 길
유럽 디자이너들은 컬렉션 끝나기 전에 다음 시즌 원단을 발주해 한 컬렉션에 8개월을 소요한다. 하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이  그리 긴 준비를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상대적인 허약함일 수 있다.


그에게 꿈을 묻자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만이 창작할 수 있는 옷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란 답이 돌아왔다. 또 후진들에게 “기초부터 잘 터득해서 실력을 쌓을 것”을 조언했다. 베이직을 발전시켜야지, 베이직을 소흘히 하면 결국 따고 싶은 별을 못 딴다고 강조했다.


예전 「문부티크」 사옥을 새롭게 꾸민 「MOON YOUNG HEE」 매장에는 그의 옷과 그가 파리에서 모았던 앤티크 가구들이 전시돼있다. 프랑스 루이 13~16세기 작품도 많다. 그런 앤틱 작품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지난해에는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콜래보레이션전를 하기도 했다.


‘당분간 쉴 계획’이라는 그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 반포동 매장



이화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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