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세계무대에 여성복 함께 펼칠 파트너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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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의 ‘아름다운 만남’- 송지오 디자이너

2013-03-07 오전 10:40:04

파리컬렉션 11번 참가한 남성복, ‘동양적 아방가르드’로 호평받아



동일한 리듬이 반복되는 일렉트로닉 트랜스 뮤직이 흐른다. 66㎡(20평) 공간의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물감이, 책꽂이엔 외국서 발행된 화집들이 즐비하다. 이 곳의 주인공은 파리 멘즈 컬렉션에 11번째 참가해 주목받고 있는 남성복 디자이너 송지오(53). 「송지오옴므」 대표다.
앞으로 여성복도 준비해 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공략하려는 그를 서울 성수동 쇼룸에서 만났다.


◇창작의 산실인 서울 성수동의 쇼룸
서울숲과 한강을 이웃한 그의 방은 얼핏 화가의 공간 같다.
대부분 디자이너의 쇼룸이 서울 강남에 있는데, 그의 297㎡(90평) 쇼룸은 뜻밖에 서울 성수동에 있다. 쇼룸 속 20평 정도의 방에는 벽과 책상 위의 메모지들이 아니었으면, 패션 디자이너의 방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입구쪽 테이블 위에는 갖가지 색상의 물감이 놓여 있었고, 벽면엔 다채로운 화가들의 화집이 꽂혀 있다.


방안의 100호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는 남불 해안 도시 니스의 아름다운 파도를 연상시키는 스카이와 아쿠아 블루, 투톤의 물감을 나이프로 바르고 짓이겨 작업한 'Nice 1987'(2012년작)이 놓여있다. 또다른 편엔 회색톤의 'Nice 1987' 연작이 놓여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래 기다리셨죠?" 하며 들어온 그는 방송인 윤종신과 비슷한 외모다. 물론 그는 비슷하다는 걸 싫어한다.


방 안의 미술 작품의 정체를 묻자 "컬렉션에 쓸 원단의 프린트 위한 밑그림 작업들"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컬렉션마다 3~4개의 밑그림을 그려서 시즌 프린트를 한다.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꿨던 그는, 매 시즌 발표할 컬렉션의 원단 프린트 밑그림을 화가의 신작처럼 준비한다. 국내에선 중견디자이너지만, 파리에선 신진 남성복 디자이너로 주목받는다. 좀 억울하지만 갈길이 멀기에 받아들인다.


얼마전 파리에서 2013 F/W 파리멘즈컬렉션을 마치고 왔지만, 벌써 올 가을 파리서 열릴 2014 S/S 파리멘즈컬렉션을 준비중이다. 



◇추억은 패션 컬렉션의 자양분
그가 내민 카달로그에는 영어와 한글로 된 한 페이지 짜리 글이 적혀 있다.


 제목은 'Nice 1987'.
‘그곳은 바람도 냄새도 없었다. 오직 뜨거운 햇살과 거대한 에메랄드 광맥 같은 블루만 있었다.
바치발리볼을 즐기는 핑크 유두의 토플리스 미녀들의 웃음소리도, 잘 씻기어진 조약돌 해변의 파도소리조차도 그토록 파란 물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도령은 카페에 자리잡고 망망한 바다를, 하늘을 즐기고 있었다...(중략)...그 모두를 대대하여 도령만이 혼자 그 대상들 앞에 맞서 있었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곧 도령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 왔다. -1987년 7월 21일 오후. 내일은 튜니스로 떠나는 날이다.'


누구라도 그 글의 주인공 '도령'이 곧 송지오 디자이너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랬다. 그에게 과거는 곧 창작의 보물이다. 27세 처음 찾았던 프랑스 니스는 매력적이었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칸느와 달리 자갈밭이었지만 지중해의 거대한 에메랄드빛 바다는 환상이었다. 내리쬐는 따가운 태양과 맨발을 누르는 자갈의 따가움을 행복한 추억으로 느낄 만큼.


그리고 그 추억은 25년만인 지난해 ‘니스의 바다’를 주제로 화폭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2013 S/S 컬렉션의 주제로 되살아났다. 니스 해안의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어 현대판 도령의 옷이 되었다.



◇서예가 어머니, ‘도령’으로 키워
“송 대표가 도령이군요?”
“네. 저입니다.”
“어머니께서 어려서 도령으로 키우셨나 보네요.”
“네. 그렇게 부르시고, 옷도 도령으로 입히셨죠."


‘도령’은 송지오 디자인 세계의 상징이다. ‘도령’을 통해 서정과 동경의 디자인을 선보여왔던 그다. 니스의 바다를 즐긴 주인공은 한국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도령이다.


2년 전 별세하신 어머니는 서예가 이경패씨.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중견 서예가였다. 단아하시고 전통적인 미감과 부덕을 가졌던 어머니는 막내 아들인 송 대표의 정신적 지주였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미감과 전통 교육을 중시했던 어머니는 막둥이에게 여름에는 모시 적삼을 갖춰 입히던 멋쟁이셨다.


“그 도령은 자라서 과하지 않게 절제된 모습을 보이게 되지요.”
어머니의 손길은 2013 S/S 파리 컬렉션에서 「송지오옴므」 신작으로 연결됐고, 아들의 패션 창작세계를 길러냈다.


자상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는 송 대표의 눈가에 어머니를 향한 아른함이 떠올랐다.
“전주 이씨셨고, 자라신 배경에 대단히 자부심이 많으셨죠. 서예가로 활동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훌륭한 분이셨어요.”


늘 먹을 갈며 그림그리듯 글씨를 썼던 어머니를 보면서 어려서부터 아들은 그림을 좋아했다. 그림은 이후 그가 파리에스모드로 유학가서 홈식에 걸려 1989년 귀국할 때까지 그를 달래주는 소중한 취미가 됐다.


◇꿈 좇아 떠난 파리 유학과 그림 
하지만 그는 미대 진학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는 반대로 강직하고 개혁적인 성향이었던 부친은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무조건 공대를 권했다.
“당시에는 남자가 미술 전공하면 굶어죽기 딱 알맞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강했죠. 제 아버지도 마찬가지셨어요. 결국 공대 갔다가 그만 두고 파리로 공부하러 갔죠.”


사실 그는 미대를 가서 조각을, 그중에서도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오일과 안료로 매 시즌 크린트를 직접 개발한다. 그러기 위해 그려놓은 작품들이 전시를 할 만큼 된다.
어릴 때 가진 또다른 꿈이 의류사업가와 패션 디자이너였다.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양 장점에서 옷을 맞춰 주셨다. 가봉했던 기억도 있다. 외대 옆 이문동 기와집도 생각난다.


얼마나 멋을 부렸던지 부친이 6·25때 입던 공군 점퍼와 군복, 뱀가죽 벨트 등을 코디해서 입고 다녔다. 복고풍 멋쟁이였던 셈이다. 다른 형제들은 패션과 예술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특히 패션에 관심이 많았단다. 중고생때인 70년대 중후반 서울 명동의 멋쟁이들의 통기타 문화와 히피 문화는 그에게도 꽤 영향을 미쳤다. 교복은 학교갈 때만 입었고, 과외수업 갈 때는 양복점서 맞춘 양복에 더블 수트, V네크 니트, 자주색 살롱화를 신었다. 머리는 어쩔 수 없는 빡빡머리 짧은 스포츠형이었지만.


“하기 싫은 공대 공부를 2학년때 작파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었죠. 마침 정진숙 누님(에스모드서울 교수)이 에스모드파리를 막 졸업하고 돌아와 에스모드파리 유학을 추천했어요. 2달간 미싱과 스타일화 등을 배우고 유학가서 3년 과정을 2년만에 졸업했죠.”
우등생이었던 그는 파리 ‘Hela in Paris’란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2년간 일하다 향수병에 걸려버렸다. 몇 년만 한국서 일하다 다시 파리로 가야지 했는데 지금까지 한국서 일한다. 


에스모드 서울 디자인학과 교수로 4년간 제자를 기르면서 92년 「송지오옴므」를 론칭했고, 그 사이 LG패션 디자이너브랜드 「OMSK」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 서울컬렉션에 참가하기 시작하다. 2007년 6월에 파리 남성복컬렉션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컬렉션과 싱가포르 멘즈 패션위크 초청디자이너로도 활약하고 있다.


◇디자인 영감 트레이닝 30년
 2013 FW 컬렉션에서 송 대표는 윌리엄 포크너의 ‘성역’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 전체를 짓누르는 폐쇄와 억압, 충동 등의 강력한 이미지들을 컬렉션에 적용했다. ‘도령’의 양면성을 표현한 것이다.
파리 컬렉션 후 평가는 좋았다.  ‘아름다운 쇼였다’ ‘동양적인 선과 실루엣이 돋보인다’ ‘송지오는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다’는 등이 전반적인 평가.


“조금씩 현지 반응이 좋아지고 있어 기쁘다. 하지만 나 역시 거대한 트렌드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판매 브랜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니. 하지만 컬렉션만큼은 트렌드 보다 현재 시점에서 좋아하는 취향을 미래적으로 표현한다.”


디자인의 영감은 어떻게 얻을까.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긴 기간의 트레이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언제나 새로운 작업은 힘들다. 부족하지만 맞춰서 표현해야 된다. 스케줄에 맞춰야 된다. 해서 어느 정도 부족한 것은 다음을 위해 스스로를 봐준다. 그러나 역시 열심히 한 노력만큼 성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해서 노력하는 것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책, 화집 등을 열심히 보는 것이다. 지금은 100권의 책을 구해 보는 것. 마침 프랑스 유학중인 아들이 고교를 곧 마치고 귀국할 때 화물 편에 받기로 했다.


그의 하루는 오전 6시면 기상해서 조깅과 운동으로 하루를 열고, 음악과 벗삼아 작업을 한다. 가족을 외국에 두고 부친과 함께 생활하며 파리 컬렉션을 향해 에너지를 모은다. 창작하느라 하루 3~4시간밖에 못잘 때도 더러 있다.


◇파리컬렉션 참가는 예정된 수순
한때 아내와 함께 「지오에지아」란 브랜드를 론칭했던 그는, 대다수 패션디자이너처럼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힘든 시기를 지냈다. 결국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숙녀복을 접고, 남성복으로 선회하게 됐다.


“어느날 아내가 ‘어, 통장에 2만5000원밖에 없네?’ 하는 거에요.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러던 차에 디자인 실장이 남성복을 권했죠.”
패배의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1999년 서울 압구정동 뒤편에서 조용히 남성복 숍을 열었다. 바닥부터 다지자 다시 기회가 왔다. 로데오 옆골목에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배용준, 소지섭, 차승원 등 유명 연예인들이 고객이 됐다.


부티크 사이즈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2001년, 현대 홈쇼핑 판매 제안이 왔다. 이후 CJ오쇼핑으로옮겨 서브브랜드인 「지오송지오」를 라이센싱으로 판매하고 있다. 


「송지오옴므」는 완벽한 테일러링과 아방가르드한 디테일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파리, 밀라노, 런던, 베이징, 상하이, 홍콩, 모스코바, 시드니 등 세계 20여 개 유명 편집숍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올해 본격 미주 지역 진출을 앞두고 있다.


라이센싱으로 진행되는 서브브랜드 「지오송지오」는 좀더 저렴하고 대중적인 방향이다. 클래식+캐주얼 스타일의 실용성을 갖춘 댄디한 핏의 캐릭터 브랜드다. 전국 43개 매장에서 연간 260억 매출을 올린다. 올해 목표는 350억원. 최근 파리컬렉션 후에도 1억5000만원 상당의 오더를 받았다. 홈쇼핑은 시즌 핫 트렌디 라인의 여성복으로 전개한다.
「송지오골프」는 역시 라이센싱으로 진행되다 현재 법정관리중이다.


그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제 꿈은 좋은 파트너를 만나 여성복 컬렉션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5년 내에 여성복 캐릭터 컨셉쇼를 하고 그 이미지로 유통을 장악하고 싶어요. 아시아권만 감안해도 여성복 시장이 남성복 보다 큽니다. 한국 여성들은 옷만 좋으면 많이 구매합니다. 홈쇼핑은 150억원 볼륨만 하고, 해외 비즈니스 판매를 늘리고자 합니다. 지금 8명의 식구로 견고하게 핵을 잘 만들고자 합니다. 나머지 서브 브랜드들은 라이센싱으로 진행됩니다.”


열정으로 가득찬 송 대표는 서울컬렉션과 파리컬렉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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